시사, 상식

방미 대통령이 꼭 읽어야 할 ‘워싱턴 고별사’

道雨 2023. 4. 25. 09:01

방미 대통령이 꼭 읽어야 할 ‘워싱턴 고별사’

 

 

 

바둑에서 먼저 돌을 깔고 두는 걸 접바둑이라 부른다. 알파고와 겨뤘던 이세돌 9단은 “석점을 깔면 인공지능 아니라 신과 대국해도 아마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접바둑은 승패를 가르는 데 절대적이다.

 

보통 접바둑은 실력이 모자라는 하수(下手)에게 혜택을 주어 호각을 이루기 위한 대국 방식이다. 그런데 반대로 상수(上手)에게 미리 돌을 깔고 바둑을 두게 하면 어찌 될까.

26일(현지시각)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꼭 그런 접바둑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지난달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이번 한-미 회담에까지 영향을 끼쳐, 첫수를 이미 바이든에게 내준 거나 마찬가지다. 도쿄 회담에서 우리가 얻은 건 하나 없이 한-일 관계 개선과 이에 기반한 한·미·일 안보협력만 잔뜩 강조해놓았으니, 미국은 이걸 ‘기준’으로 삼아서 정상회담 성과를 내려 할 게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전선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고,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건드린 건 예고편으로 보인다.

 

반대급부로 윤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건 북핵 확산 억제를 위한 강력한 한-미 공동 대응일 것이다. 지난 17일 현대·기아차를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 미 재무부 발표에서 보듯, 세계적 차원의 중국 견제가 본질인 공급망 문제에서 미국이 한국에만 특별한 혜택을 주기란 쉽지 않다.

윤 정부는 한-미 동맹 70주년에 맞춘 미국의 극진한 환대를 부각하려 하겠지만, 국내에선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의전과 행사의 초점이 맞춰지며 논란을 부를 우려가 작지 않다.

가장 중요한 외교 일정인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대통령실의 의전·외교비서관이 줄줄이 날아간 건 그런 징조가 아닐까.

 

‘한국식 핵 공유’와 같은 대북 강경책은 양날의 칼이다. 북한의 거센 반발을 부르며 한반도 긴장을 높일 게 확실하다. 북한 반발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래서 윤 정부가 얻으려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게 문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격렬히 마주치는 동북아 최전선에 한국이 위태롭게 놓이는 게 윤 정부 외교의 목표인가.

 

미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문제를 우리가 먼저 나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덮어버린 건, 두번째 돌을 미국에 내준 거와 다를 게 없다.

미 국방부 유출 문건은 한국 대통령실 내부 동향의 출처를 ‘신호정보’(SIGINT)라고 명확히 적었다. ‘신호정보’는 도·감청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도·감청은 아니다” “악의를 가졌다는 정황은 없다”며, 오히려 미국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윤 정부에 자존심까지 기대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미국 압박에 대응할 카드로 이걸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과 긴밀한 동맹을 열망하는 윤 대통령은, (도청 문제로) 바이든 대통령과 외교적 대립을 하는 데엔 거의 관심이 없다”고 평했다. 이게 곧 미국 정부의 시각일 터이다.

그러니 두 수나 접고 두는 정상회담 바둑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

 

워싱턴 정상회담 전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를 한번 읽어보길 윤 대통령에게 권한다.

두번의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워싱턴은 고별사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나 열정적 애착 모두를 배제해야 합니다. 특정국에 대한 반감은 우발적 분쟁이 발생할 때 모욕과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악의와 분노로 자극받은 국가는 때때로 최선의 정책적인 계산과는 다르게 정부를 전쟁으로 몰아갑니다. 마찬가지로 특정국에 대한 열정적인 애착도 여러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런 정서는 실제로는 공동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마치 가상의 공동 이익이 있으리란 환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 나라의 적개심을 다른 나라에도 불어넣어 그 나라의 분쟁과 전쟁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이 글은 18세기 말 신생국 미국이 유럽 대륙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사조가 강한 시절에 쓰였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과 외교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윤 정부는 ‘신념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같다.

북한과 중국·러시아를 손쉽게 적으로 돌리고, 미국·일본과 공동 운명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가져올 현실의 어려움은, 미국이 베푸는 잠깐 동안의 환대로는 가릴 수 없다.

 

 

 

박찬수 |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