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포탄 미국에 다 내주고 ‘거덜 난 한국 안보’
우리 군이 유사시를 대비해 저장해놓은 전시 비축 탄약을 대량으로 미국에 대여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은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맞서 대화력전 임무를 수행하게 될 우리 군의 핵심 전력인 155㎜ 포탄을, 유럽으로 가져가는 걸 군 지도자들이 용인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국정감사 때마다 한국군의 전시 비축 탄약 부족, 특히 155㎜ 포탄 부족 문제는 단골 주제였다. 이 포탄은 미군 기준대로라면 적어도 전시 30일분을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 우리 군에는 일주일치밖에 저장돼 있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부족한 탄약은 동맹국으로부터 조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현재 미국에는 재고 포탄이 바닥났고, 심지어 지난해 말부터는 한국에 저장해놓은 미군 비축탄마저 우크라이나로 반출했다.
그렇다면 우리 군이 저장해놓은 비축탄은 전시를 대비하는 마지막 물량이기 때문에 하늘이 두 쪽 나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말부터 비축탄을 무려 33만발이나 긴급히 유럽으로 빼돌렸다면, 지금 육군 후방 탄약창 3곳의 탄약고가 비워졌다. 전시 초기에 사용할 일선 전투부대 저장량은 며칠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는 지상군이 유사시에 대화력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전쟁이 나면 북한의 장사정포로부터 대책 없이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 나라 안보 책임자들은 이를 모를 리 없지만, 포탄을 미국에 “수출”한 것이 아니라 “대여”한 것이므로, 한반도에 문제가 생기면 돌려받을 작정이었다고 둘러댈 것이다.
군사장비라면 몰라도 소모품인 포탄을 어떻게 돌려받겠다는 건가. 한마디로 안보가 거덜 날 판이다.
누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반드시 그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런 무모한 포탄 대여는 오직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행됐다.
지난해 9월부터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무기 지원을 요청한 바 있고, 올해 1월에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직접 서울을 방문해 포탄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전혀 응답하지 않던 정부가, 마치 개학을 앞둔 학생이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이 긴급히 포탄 지원에 나선 배경은, 4월 말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다.
포탄 지원은 단순히 우리 군사 대비태세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는 급격히 밀착되며 전략적 연대를 다지는 상황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면, 당연히 북한도 이 기회를 노려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지원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 냉전을 유럽에 수출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멀리 떨어진 유럽의 분쟁에 개입하는 신냉전 질서를 추종하게 되면, 더 가까이 있는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 점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우리를 예방적으로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서해에서 실탄 사격을 하는 중국군 군사훈련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동해에는 러시아 잠수함이 출몰하고, 서해에는 중국군의 총성이 들리는 낯선 주변 정세는, 대한민국이 동과 서로부터 동시에 압력을 받는 대압착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자체 안보에 내실을 도모하기는커녕, 가진 포탄을 다 내주며, 무모하게 강대국 정치의 판에 휘말리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이해해줄 나라는 없다. 포탄을 지원하더라도 주변을 살피고 안보 공백 대책을 세우든지 했어야 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코앞이라고 가진 것 다 내주는 삼류국가를 누가 존중해주겠는가.
지난 3월 우리는 호의를 기대했던 일본으로부터 차갑고 모멸적인 시선을 받은 바 있다. 우리와 독도 영토 분쟁까지 불사하며 동해에서 해양 세력권 구축에 나선 일본은, 한국을 협력 파트너라기보다 여전히 견제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미국은 한국이 포탄을 지원했다고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분야에서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파격적인 국빈 대우라는 이면에 영혼까지 털리는 대한민국의 외로운 처지만 더 선명해질 정상회담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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