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 정부의 불안한 경제외교

道雨 2023. 4. 27. 09:23

윤 정부의 불안한 경제외교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외교는 디커플링 시대 우리 경제외교의 방향과 역량을 확인하는 시험대였다.

가치동맹의 외교를 선택할지, 실용적 외교를 선택할지 확인할 기회였다.

미국이 거칠게 중국을 압박하는 환경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을 가늠하는 기회였다.

 

그런데 출국 전 우크라이나 무기공급 가능성과 대만 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그 결과는 이미 드러났다. 실용 대신 가치동맹을 선택한 것이 분명해졌다.

그 와중에 미국은 자국산 반도체 수입을 중국이 제한할 경우 한국은 대중 반도체 수출을 늘리지 말라고 압박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가치동맹으로 동맹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동맹국 산업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대중 수출과 반도체 수출 급감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고 수준인 상황이다. 그 때문에 환율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정부의 경제외교 역량에 대한 국민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디커플링이라고 표현했지만, 지금 미국과 중국 경제가 두개로 분리된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 흔히 쓰는 표현일 뿐, 정확히는 결합해 있던 관계에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도 디커플링 대신 분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미 두 경제권이 분리(디커플링)됐다고 판단하면, 양자택일이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내에서 중국 수입품 비중은 감소했지만 이는 10여년 전부터 진행된 흐름으로, 디커플링 전략 때문이 아니라 베트남 등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커플링은 반도체와 첨단기술 일부 분야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의 공격에 아직 보복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미국이 전략적, 정치적 목적을 위해 디커플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동맹국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디커플링 전략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무엇보다 중국이 가진 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중국을 방문해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 공장을 짓겠다고 약속했고, 애플의 팀 쿡은 애플이 중국과 공생관계에 있다고 얘기했다.

미국 정부는 대중 상품 및 기술 수출 제한조치를 연이어 내놓지만, 기업들은 탈출구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로비하고, 정부 역시 많은 요구를 들어준다. 선거를 위해서라도 수출과 일자리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맹국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유럽은 미국의 가치동맹에 참여한다면서도 지난 몇달 동안 독일, 프랑스, 유럽연합(EU) 수장들이 연달아 중국을 방문해 관계 강화를 약속했다. 모두 중국 시장의 매력 때문이다.

세계 화학제품 시장에서 중국 비중은 43%, 자동차는 38%, 반도체는 36%, 건설장비와 기계류는 30%다.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의 상위 200대 기업의 중국 시장 매출액은 지난 5년 동안 4천억달러(520조원)에서 7천억달러(910조원) 규모로 70% 이상 증가했다. 이런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주변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 상황은 어떤가?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 이 지역 동맹 강화를 위해 13개국으로 구성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지금 이 협력체는 거의 유명무실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중국 배제는 아니라고 했지만, 미국의 의도를 알기에 참가국 대부분이 협력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도·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는 안보협의체 쿼드 역시, 인도가 사실상 다른 길을 가면서 힘을 잃었다.

 

모두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주변국은 다 떠나고 우리와 일본만 남은 느낌이다.

미국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전략경쟁 확대가 자칫 동맹 간 균열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것이 경제외교 역량이다.

 

연초 신년사에서 대통령은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에 놓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정반대에 가깝다.

쉽게 내주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법이다.

불과 1년 전 자신의 공급망 안정을 위해 우리 반도체에 도움을 요청했던 미국이, 이제는 우리 반도체를 자신의 적을 찌르는 데 사용하라고 요구하는 형국이지 않은가.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