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 1년, 성적표는?

道雨 2023. 5. 22. 15:46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 1년, 성적표는?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라는 제목의 연설로 마무리됐다.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와 전체주의 등으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며, 한국이 미국과 더불어 가치 외교의 선봉장이 될 것을 천명했다. 도덕적 외교 지도자로서의 지향점이 분명히 드러난 연설이었다.

연설 이후 대담에서 사회를 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물론 일반 청중도 윤 대통령의 가치 외교에 찬사를 보냈다.

 

유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클린턴 행정부에 참여하기도 했던 나이 교수는, 2020년 출간한 <미국 외교는 도덕적인가>(원제목 ‘Do Morals Matter?’)에서, 2차 세계대전 뒤 미국 역대 대통령의 도덕적 외교 리더십을 의도, 수단, 결과라는 세 가지 기준의 채점표로 평가한 바 있다.

 

첫째, 의도의 적실성이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도덕적 비전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더불어 이런 비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신중하게 처신했는가이다.

 

둘째,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무력을 얼마나 분별력 있고 비례성에 맞게 행사했는가이다. 그리고 무력행사에 있어서 국내외 법과 제도를 준수하고 타국의 권리를 존중했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적 합의와 수용, 타국의 이익에 대한 범세계적 고려, 그리고 진심 어린 설득의 논리로 대내외적 신뢰를 구축해왔는가를 외교정책의 결과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평가기준으로 볼 때, 윤석열 정부 지난 1년의 외교·안보정책 성적표는 어떤가?

이제 집권 1년을 갓 넘긴 정부에 나이 교수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윤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본 방향은 이미 설정돼 있고, 빠른 속도로 이행 중이다. 잠정적 평가가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의도의 적실성 여부를 살펴보자.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보편 가치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에 대한 강조가 이어졌다.

이런 가치 정향은 매력적이지만, 지도자의 신중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과 가치의 일체화를 추구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을 과도하게 적대시하거나 워싱턴보다 더 근본적인 비타협적 태도를 내세운다면, 현실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번영에 미치는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가치와 국익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신중함이라는 덕목에서 보면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

 

둘째, 수단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가짜 평화’로 규정하고, ‘힘에 의한 평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라 강조해왔다. 자체 억제력 증강과 함께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연습, 미 전략자산 전진 배치, 확장억제의 강화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반면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거나 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외교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북핵 위협에 한·미·일 공조 대응은 강조하고 있으나, 협상 재개를 위한 다자 외교 노력은 없었다. 외교정책의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무력의 과시 혹은 사용과 외교적 해법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있음을 시사한다.

 

나이 교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의 신탁을 받아 외교정책을 대행하는 자리이며, 따라서 국민적 합의가 필수라 말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지도자의 결단만 있고 국민적 합의를 수렴하는 과정은 없어 보인다. 야당을 포함한 정치사회와의 협의 실패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특히 ‘민주주의 연합’과 ‘권위주의 축’이라는 편가름 외교에서 한국이 중추적 역할을 하겠다는 대목은 크게 문제시된다. 그런 진영 논리는 세계와 지역 질서를 크게 해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일본과의 정상 외교가 보여주었듯, 대국민 설득 노력 부재와 일방적 행보, 잇단 메시지 관리 실수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정통성을 큰 폭으로 훼손했다.

 

나이 교수의 평가기준으로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년 외교·안보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당장 북한과 군사적 충돌에 이른 것은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아직은 명시적으로 적대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낙제점은 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가치와 국익을 슬기롭게 조화시키지 못하고, 위기 안정성과 예방 외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지 못한다면, 외교·안보정책의 실패는 자명해 보인다.

정교한 설득 노력과 국민적 합의 구축 없이 남북 관계가 악화하고 급격히 진영 외교의 늪으로 빠져들 경우, 그 후과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ㅣ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