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 대통령 신년 대담이 알려준 몇 가지 사실들

道雨 2024. 2. 14. 09:54

윤 대통령 신년 대담이 알려준 몇 가지 사실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8일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의 음악 영상 메시지는 ‘화제성’ 면에선 단연 성공적이었다. 비록 영상 댓글 중엔 “와이어로 대통령이 하늘로 날아가서 빛나는 태양이 되는 연출이었으면 백점 만점이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었으나, 대통령이 직접 연기와 노래까지 소화하는 기획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이벤트가 아니다.

이 흔치 않은 광경이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던 대통령실 로비에서 촬영됐다는 것은, 쌍방향 소통이 윤 대통령의 독무대로 대체된 현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의무인 기자회견을 일대일 대담으로 퉁친 담대함과도 일맥상통한다.

 

전날 방송된 한국방송(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역시 명절 밥상의 주요 메뉴가 됐다는 점에선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다.

대통령실 로비에서 어린이들이 공놀이하는 것만큼이나 뜬금없는 다큐식 구성, 대통령이 답하기 좋게 배려하느라 애처롭기까지 했던 질문, 명품백을 명품백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방송’ 논란에 더해, 이를 설날 아침에 재방송한 한국방송의 결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생산해냈다.

 

다만 ‘드디어’ 입장을 밝힌다고 홍보했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은 “매정하게 끊지 못해” 벌어진 일로 정리됐고, 대통령이 답했어야 할 민감한 현안은 테이블 위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저 100여분에 걸친 윤 대통령의 발언을 곱씹다 보면, 그의 의식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해명하면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이들이 문제라고 했다. 자신이라면 “26년간 사정업무에 종사했던 디엔에이(DNA)”로 단호히 대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정업무 디엔에이’가 각인돼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합당하다. 김 여사 앞에선 그 디엔에이마저 무력화된다는 점을 자인했다.

 

또한 정 많은 김 여사가 ‘매정하게 끊지 못한’ 인사가 명품백을 들고 온 최재영 목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김 여사가 ‘박절하지 못해’ 만난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에게 받은 선물은 무엇이고, 어떻게 처리됐는지 등 의구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관심법안’인 개식용금지법 외에도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많이 논의하느냐”는 물음에 “비교적 아내하고 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김 여사와 국정을 상의하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김 여사의 “남북 문제에 좀 나설 생각”이라는 발언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지 않는 이유로 “여당 지도부를 무시하는 게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지도부를 직접 만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집권 여당의 지도부와 당을 소홀히 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대부분 입법이 뒷받침돼야 힘을 얻는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1야당이 반대하면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데도, ‘여당 마음 상할까 봐’ 야당과 따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야당이 발목 잡아 일을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국정과제 추진이 그리 급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여야 먼저 만나고 오라는 것은, 스스로를 여야 지도부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

 

윤 대통령은 이번 대담을 준비하며 참모들이 건넨 예상 질문과 답변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국민 앞에 설 때 대통령실 참모진과 숙의해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준비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다.

그랬다면 적어도 명품백 수수 의혹을 배우자의 모질지 못한 처신 정도로 축소시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즉흥 대담은, 그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말고는 어떤 의미도 찾기 어렵다.

 

대통령실이 자평한 대로 “대통령으로서의 무게와 신뢰” “소탈하고 진솔한 모습”이 드러났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대통령의 노래에도, 대통령실 구석구석을 다닌 다큐 대담에도 막상 국민이 들어야 할 이야기는 빠져 있다.

소통 요구에 ‘쇼맨십’으로 답하는 것은 자신감 결여로 비칠 뿐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방송 대담이 끝이 아니고 그동안 검토했던 소통 방식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불통의 굴레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혜정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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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망신 다 시킨 KBS 박장범 앵커

 

 

'대통령 대담쇼'에서 공손한 태도·편안한 질문

물가·금리·어려운 서민경제엔 한가한 질문만

본질 비껴가기·두루뭉술 질문에 추가질문도 안해

반대 입장 언급없이 일방적 국정홍보 시간 할애

대통령 심기보좌하는 비서관 혹은 홍보맨 역할

 

 

한 때 청년들에게 선망의 직업이었던 기자가 멸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게 세월호 참사 때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에도 일부 언론과 기자들이 왜곡·조작보도와 출입처 갑질로 욕을 먹었지만, ‘기레기’라는 멸칭을 얻은 것은 세월호 때의 끔찍한 오보와 패륜 보도 때문이었다.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우리 주변에는 진실을 파헤치려는 선한 열정으로 가득하며, 시민 앞에 겸손하고 권력 앞에 당당한 기자들이 여전히 많다. 압수수색·고소고발 같은 권력의 탄압에 맞서고 있는 기자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취재하고 보도하는 기자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은 인내심을 발휘해 멸칭을 자제하고, 언론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이런 희망의 끈을 계속 붙잡고 있어도 될지 의문이 드는 사건이 또 벌어졌다. 공영방송 KBS의 윤석열 대통령 신년 특별대담 방송이다. 이 프로는 언론과 소통을 끊어온 대통령이 기자회견 대신 사전 기획과 사흘간의 편집을 거쳐 방영된 ‘대담쇼’라는 점에서 비웃음을 샀다.  100분 대담쇼의 대통령의 답변 역시 무성의·무책임한데다 대통령으로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답변으로 국민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오죽하면 극렬 ‘친윤 매체’들조차 이 방송을 보고 일제히 ‘아쉽다’ ‘안타깝다’라는 사설을 썼겠는가.

국민들이 실망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 때문'만'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공식석상에서조차 무책임·비논리·몰상식의 발언을 낸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대통령에게 묻는다’도 아니요 ‘대통령에게 듣는다’도 아닌, ‘대통령실을 가다’란 제목으로 방영된 ‘대담쇼’에서 국민들은 그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솔직하고 논리적이며 책임있는 답변을 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대담쇼가 놀라웠던 것은 질문자 역할을 맡은 KBS 박장범 앵커 때문이었다.

언론인이나 눈밝은 국민들이라면 방송을 보는 내내 박장범 앵커가 왜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밖에 하지 못할까 답답했을 것이다. 그의 태도와 질문은 '기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을 대신 질문하는 기자가 아니라, 공손하고 편안한 말로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대통령 비서실 직원이었다. 질문으로 핵심을 날카롭게 찌르는 기자가 아니라 홍보맨의 자세였다.

몇가지 예를 들어본다. 박장범 앵커는 윤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어스테핑 예전에 하시다가 이젠 중단하셨는데, 그 출근길에 기자들 안보시니까 어떠세요? 좀 마음이 편하세요? 아니면 섭섭하세요? 예전처럼 매일 하시는 거는 아니라도 가끔씩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기회를 그런 모습을 또 보고싶다, 이런 국민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고 기자와 소통을 끊은 지 1년이 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기자들의 난동’ 때문에 도어스테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이 예상되기도 했으나 이것도 실행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대통령의 ‘불통’을 비판하고 있는데, ‘마음이 편하세요, 아니면 섭섭하세요’라고 묻는 박장범 앵커의 질문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왜 기자들을 만나지 않는지,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기자들을 ‘난동부리는 자’라고 한 비서실장 말에 동의하는지 물었어야 했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관한 질문도 어처구니 없었다. ‘과일값이 굉장히 비싸다’라며 물가안정 대책을 물어보고 ‘싼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서비스가 추가로 나오는가’라며 고금리 대책을 묻는다. 서민들이 과일값이 비싸서 힘들어하고 싼 대출 서비스로 갈아타면 형편이 나아진단 말인가? 고물가·고금리로 인해 갈수록 어려워지는 서민경제의 해법을 마치 봉숭아학당 질문처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관한 질문은 너무나 가벼웠고,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답변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성의했다. 그런데도 박장범 앵커는 더 따져묻지 않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의대정원 확대, 늘봄학교, 중대재해처벌법 문제도 반대입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홍보에 시간을 할애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박장범 앵커의 다른 질문들에 포함된 표현을 몇가지 보자.

“윤석열 정부 초반에 한 특징으로 여소야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상황이 여러번 있었죠.”

“(윤 대통령이 ‘무슨 영수회담이라고 하는 거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없어진 지 꽤 된다’고 하자) 그런 용어도 이제 요즘은 안씁니다.”

“(윤 대통령이 9건의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말씀하신 대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 견제와 균형, 헌법상 민주주의 가치에 따라서 각각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

“일각에서는 검사출신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이재명 대표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꺼려한다, 이런 분석도 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갈등설과 봉합설에 대해 언급한 뒤) 한동훈 위원장 잘 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지지율이 잘 나오면 대통령도 신이 나실 텐데, 좀 국민들이 야속하세요? 열심히 노력하는 걸 못 알아주니까.”

“지난 정부에서 상당히 고초를 겪으실 때도..왜 저한테 지금 이러십니까라고 얘기하셨는데, 이 한마디가 진심이 느껴졌고, 속시원한 메시지고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라는 국민들이 많았거든요. 그 시원한 승부사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너무 조심하시는 거 아니에요?”

“(개식용금지법에 관해 길게 이야기하며) 강아지 좋아하시고 또 김건희 여사도 댁에서 같이 강아지를 많이 키우시고, 그런 개고기 식용금지법안 같은 법안을 애기할 때는 김건희 여사 좀 조언도 듣고 그러십니까?”

대부분의 질문은 이런 식이었다. 그냥 ‘대통령의 입장에서’ 질문하고, 심각하고 불편한 질문은 피해가는 방식이다.  윤 대통령에게 ‘답답한 상황’이고 윤 대통령의 생각대로 ‘영수회담이란 용어도 요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검사 출신 대통령’이 사법리스크가 있는 야당 대표를 만나는 게 꺼려질 것이라고 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갈등설이 대통령의 불법적인 ‘당무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은 하지 않고 왜 ‘한동훈 위원장이 잘 하고 있는 것 같은지’만을 물어보는가?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 ‘국민들이 야속한지’, 대통령 된 뒤 ‘너무 조심하는 것 아닌지’, 김건희 여사의 조언을 듣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문제일까? 박장범 앵커는 공중파 방송에서 마치 대통령의 심기보좌를 하듯 질문을 던졌다.

이런 의미없는, 아니 시청자 국민을 무시한 질문의 클라이맥스는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관련 질문이다.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조그마한 백이죠. 그 백을 어떤 방문자가 김건희 여사를 만나서 그 그 앞에 놓고 가는 영상이 공개가 됐습니다...어떻게 저렇게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더군다나 시계 몰래카메라를 착용한 전자기기를 가지고 대통령 부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이거는 의전과 경호의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사람들이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죠?”

이젠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전세계 유력 언론들이 다 소개한 ‘명품 디올백 수수’를 ‘파우치, 외국회사 그 조그만 백’이니 ‘몰래카메라 접근’이니 ‘의전과 경호의 문제’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죠?”라고 되묻는다. 국민의 과반 이상이 진실을 밝히길 원하는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의 김영란법 위반 사건을 ‘함정취재’ ‘경호’ 문제의 프레임으로 뒤집고 윤석열-김건희 두 사람을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원하는 딱 그대로를 물었다. 그걸 공영방송의 뉴스 앵커인 박장범 기자가 해낸 것이다. 

박장범 앵커는 이어진 질문에서 “여당에서는 이 사안을 정치공작이라고 부르면서 김건희 여사가 정치공작의 희생자가 됐다라고 얘기하거든요. 동의하십니까”라며 짐짓 다른 곳에서 ‘정치공작설’의 기원을 찾았다. 그러더니 ‘그 이슈(제2부속실 설치)가지고 부부싸움 하셨냐’고 물었다. 마치 억울하게 누명이라도 쓴 연예인 부부의 하소연을 들어주려는 황색잡지 기자의 질문 같다.

이후 외보안교, 남북관계, 대미·대중·대인 관계, 북핵 문제 등의 분야에서 질문이 나오지만, 대부분이 두루뭉술하고 새로울 것 없는 관점이었다. 윤 대통령의 답변도 그런 수준의 질문에 부합해서 구체성이 거의 없거나 과거 발언을 반복하는 정도였다. 최고통치자의 허점을 찌르고 혹시 모를 높은 콧대를 꺾을 질문은 귀를 씻고 들어봐도 없었다.

박장범 앵커가 ‘대담쇼’ 100분 동안 던진 질문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그저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 홍보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멍석을 깔았다.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은 논란의 대상이 된 몇몇 정책을 편안히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둘째, 정작 논란이 되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은 대부분 뺐다. 예컨대, 김건희 씨 주가조작,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고발사주, 해병대원 순직사건 개입, 당무개입 등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불법비리 의혹을 비롯해 경제와 민생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집값 안정 의지는 있는지, 부자감세는 계속 할 것인지, 재정악화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자세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넘어갔다. 셋째, 꼭 물어야할 질문을 하더라도 핵심과 본질을 의도적이고 교묘하게 비껴나갔다. 김건희 씨 명품 디올백 수수 스캔들 관련 질문이 그랬다. 넷째, 불편한 질문은 없었고 대통령에게 최대한 공손하고 편안한 질문만을 던졌고 표현도 그러했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에게 ‘독재자’란 표현을 쓰며 질문했던 5년전 KBS 기자와는 전혀 다르게 박장범 앵커는 그 흔한 ‘검찰독재’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 답변에 대해 다시 꼬치꼬치 캐묻는 추가질문도 없었다. 

 

                                *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 인터넷화면(2월13일 오전 1시 현재) 갈무리.

 

 

기자가 대통령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출 수는 있다. 그러나 기자라면 이렇게 질문하지는 않는다. 이럴 수 없다. 권력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자의 일임을 스스로 잘 알 것이다. 1년 이상 언론과 소통하지 않아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답답해하는 대통령에게, 경제와 민생이 지표와 체감 모두 악화되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에게, 본인과 부인과 장모가 여러 건의 불법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는 대통령에게 이렇게 한가하고 편안한 질문을 던질 수는 없다.

박장범 앵커는 1994년 KBS에 입사해 정치·경제·사회부 등 주요 부서를 거친 기자 출신이고 간판 뉴스인 9시뉴스의 메인 앵커를 맡고 있다. 이런 기자가 대통령 최고권력 앞에서 그의 공손한 비서관 혹은 홍보맨이 되었으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담배를 꼬나문 전두환과 대담을 나누며 머리를 조아려 굴욕의 전설로 남은 MBC 이진희 사장이 소환됐다. ‘기레기’ 멸칭도 SNS에서 다시 돌고 있다.

KBS는 이 대담쇼가 8%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며, 설날 재방송까지 했다. 공중파를 통해 이 엉터리 국정홍보 쇼를 봐야하는 국민들에게 KBS 구성원들은 부끄럽지 않았을까?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제 KBS가 국영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했다.

공영방송 기자 30년 경력의 박장범 앵커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KBS시청자청원 게시판에는 그에게 ‘앵커인가 비서인가’라고 묻는 사퇴 청원 게시글로 가득하다.

새해 초부터 기자 멸칭과 기자 망신을 불러온 일등공신은 조중동 친윤언론이 아니라 공영방송 기자였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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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담은 없었다…'59분 대통령'의 대담쇼

 

 

무책임·무논리·무성의에 수준낮은 답변까지

김건희 명품백엔 "박절하지 못해"…충격적

고물가·저출산·대중관계·전쟁불안·경제문제…

자기합리화하는 불통 대통령…나라 미래 암울

 

 

나도 30년 넘게 방송기자로 밥 먹고 살았다. 대담 프로 제작도 해보고 다큐도 제작해봤다. 대통령은 종이 한 장 없이 대담을 했고 사전 질문지도 없었다지만, 내 눈에도 보이는 게 있다.

꾹 참고 다시 봤다. 대통령으로서의 무게와 신뢰를 국민께 잘 보여줬다고 대통령실은 평가한다는데 담벼락에 쓴 한 장짜리 인상비평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대담은 인터뷰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게 궁금할 걸 물어보는 거다. 기획, 연출, 촬영, 편집 등 제작 관련 모든 일은 인터뷰어(기자 또는 언론사) 쪽에서 담당한다. 질문지도 인터뷰어 쪽에서 작성한다. 내 눈에 이번 대담은 기획과 연출, 대본 작성 모두 용산 대통령실이 맡은 걸로 보였다. 제작은 KBS가 아닌 외주사에 맡겼다는데 KBS에 맡기면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그랬을 것이다.

낙하산 사장 박민은 믿지만 KBS 종사자들은 못 믿겠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KBS가 맡은 역할은 주연(대통령)을 빛내줄 조연(대담 진행자)으로 KBS 메인뉴스 앵커를 보내주고 용산 대통령실이 제작한 ‘예능형 대담’을 송출하는 것뿐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담 타이틀에는 ‘반듯한 나라’, ‘역동적 경제’, ‘행복한 사회’, ‘담대한 미래’, ‘글로벌 중추국가’, ‘살기 좋은 지방사회’라는 글자가 차례로 나왔다 사라진다. 언론사의 인터뷰가 아니라 대선후보의 홍보물 같다. 타이틀은 ‘대통령에게 묻다’도 아니고 ‘대통령에게 듣는다’도 아닌 ‘대통령실을 가다’로 달았다. 통상적인 대담이 아니라는 것이고 대담쇼의 기획과 제작을 대통령실이 ‘총괄’했다는 방증이다.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화면 갈무리

 

 

 

‘대담쇼’ 제작의 총괄은 김건희 여사가 지휘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대담 사이 사이에 김건희 여사 사진도 나오고 질문-답변에도 나온다. 물론 좋은 이미지의 사진과 선의의 질문이다. 선의가 지나쳐 김건희 여사와 중요한 사안에 대해 많이 논의를 하느냐는 질문도 있고, 비교적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한다는 대통령의 답변도 있다. 다른 대통령들도 그랬을까?

 

연두 기자회견을 ‘대담쇼’로 변형시킨 원인은 대통령 부인이 받은 명품백 선물 때문이라는 걸 대한민국 국민은 다 안다. 그럼에도 KBS 박장범 앵커는 그 질문을 하기가 외람되어 그런지, 디올을 디올이라 하지 못하고 명품백을 명품백이라 하지 못한다. 김건희 옹위에 기자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팽개친 박장범 앵커의 입에서, 디올은 무명의 외국회사가 되고, 명품백은 쬐그만 빽으로 평가절하되고,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최재영 목사는 어떤 방문자로 격하되고, 선물을 받은 게 아니라 김 여사 앞에 두고 간 게 된다.

 

대통령의 답변은 더 가관이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누구한테나 박절하게 대하기 어렵다고 일반화하고 보편화하여 세계의 모든 대통령 부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고 아쉬운 부문이라며 '불법 행위'를 모질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고 인간적인 행동으로 치환한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도 없다. 무려 26년간 검사로 사정 업무에 종사하여 그 DNA가 남아 있다면서 박절하게 내치지 못하니까 자꾸 오겠다고 하더니 사실상 통보하고 밀고 들어오는 걸 어떻게 막느냐, 만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디올백 선물을 받은 아내를 두둔한다. 아내 사랑이 초법적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주기를 바라겠지만 그랬다가 부정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얼버무린다. 궁금하면 궁금하라는 답변, 아바타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정치공작이란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을 흐린다. 적반하장, 매를 들었다가 슬그머니 뒤로 감춘다. 재발 방지를 위해 뭘 하겠다는 건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박절하게 거절하지 못한 건 제2부속실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특별감찰관은 국회 추천이라 싫다는 기색이다. 궁금한 걸 묻고 답하는 게 인터뷰(대담)인데, 궁금증을 더 키운다. 혹 떼려다 혹을 붙인 것 같다. 

 

 

 

대담쇼 시청률 8.6%, 대통령실은 고무되었을 것이다. 요즘 8.6%의 시청률이면 꽤 높은 수치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순치되었다 해도 불편한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연두 기자회견 대신에 대담쇼 하기를 잘했다고, 기획 좋고 연출 좋고 다 좋았다고 환호했을 것이다.

 

나도 본방 시청을 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궁금한 게 많아서였다.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연루되었거나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타당한 사안이 많았다. 그래서 본방 시청을 했다. 무어라 하는지 직접 듣고 싶어서. 그러하니 많이 봤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나 같은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니. 대담쇼를 보고 돌아앉은 이들도 꽤 될 것 같다. 대통령의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 되나 싶어서.

 

다큐든 예능이든 대통령의 대담은 주요 현안을 국민에게 보고하고 설명하는 거다. 대통령실은 종이 한 장 없이 녹화를 했다고 하는데, 그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무성의했다는 것이고 국민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런 게 대담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보자.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 사진을 보낼 때만 면담 요청을 받아주었다는 게 최재영 목사의 증언이다. 그걸 대통령의 답변에 대입하면, 고가의 명품을 준다고 할 때만 ‘박절하게’ 면담 요청을 내치지 못했다는 것이고, 명품백 선물이라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가장 곤란한 질문을 상정하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또는 매를 가장 덜 맞는 모범답안을 고민했다면, ‘박절하게’와 ‘매정하게’라는 두 단어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만사 폐하고 ‘디올백 사태’를 덮을 완벽한 알리바이를 창조하기 위해 궁리하고 또 궁리했을 것이다. 국가기록물로 지정하여 봉인하자는 꾀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떠벌이기 좋아하는 ‘59분 대통령’의 입방정에 물거품이 되었고 불을 끄려다 불을 키운 꼴이 되었다.

 

 

직접 듣고 싶은 건 ‘디올백 선물’만이 아니었다.

김건희 ‘주가 조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도 직접 듣고 싶었다.

고발 사주 사건은 선거 개입이 목적이었고, 검찰의 조직적 범행이라 하고, 윗선의 묵인이나 승인이 있었을 것이라 하고, 그 당시의 검찰총장이 지금 대통령인데, 무어라 할지 궁금했다. 그 모두가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연루된 사건이다.

얼굴만 봐도 부하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보다 중시할 것 같은 ‘참 군인’의 기상이 느껴지는 해병대 박정훈 대령에게 항명죄의 낙인을 찍은 건 대통령의 ‘격노’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그 격노는 이른바 ‘핵관’의 범주에 들어가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궁금했다.

이태원 특별법에는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여,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도록 해달라는 유족들의 피맺힌 절규가 담겨 있다. 대통령은 그 법안이 국론을 분열하고 정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만 반대하지 않았다면 국론 분열도 정쟁도 없지 않았겠냐는 질문을 권력이 장악한 KBS의 앵커가 할 수 있을까, 기자로 밥 먹고 산 나는 그게 또한 궁금했다.

 

그랬는데, 기대했던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실에는 무조건 따르는 예스맨과 대통령 부부의 눈치나 보는 내시들만 있는 것 같다. 용산 대통령실의 사전에 진언이나 간언은 없는 것 같다. 삼류 쇼만도 못한 대담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대학생 때도 교수인 아버지에게 고무호스를 맞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전임 김대기 비서실장이 갑자기 경질된 이유를 알겠다. 인간 윤석열은 자기의 잘못이나 오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쓴소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통령 참모들의 일은 쓴소리가 아니라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대통령의 잘못이나 오류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포장지를 창작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를 보여준다. 주인공 윈스턴은 진실부 기록국에서 일한다. 기록국은 통치자 ‘빅 브라더’에 맞춰 모든 기록을 조작한다. 이를테면 빅 브라더가 실언을 하면 그 실언에 맞춰 모든 기록을 조작하는 거다. 빅브라더의 와이프가 부적절한 선물을 받으면 그걸 정당화, 합리화하는 논리를 만들고, 그 논리에 맞춰 기록을 조작하는 거다. 2024년의 ‘윤석열 대담쇼’를 보면서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올랐다.

 

대통령과의 대담은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거다. 대통령에겐 불편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독한 질문도 해야 하고, 노조와 시민단체 등 약자들의 편을 드는 질문도 해야 하고, 야당을 대신하여 질문도 해야 한다.

그런데 용산에 장악당한 KBS 앵커의 질문은 닭살을 돋게 하였다. 디올백을 디올백이라 하지 못하여 ‘외국회사의 쬐그만 백’이라 하고, 선물을 받았다 하지 못하여 앞에 놓고 갔다며 스스로 비굴해졌다.

 

물가고에 민심은 폭발 지경인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과는 애플사이고 그다음에 비싼 사과는 한국의 사과 어쩌구 하며 간사스러움을 드러냈다. 지지율이 낮은데 열심히 하는 걸 몰라주는 국민이 야속하지 않으냐며 질문 아닌 아부를 하고, 대통령의 답변에 한술 더 떠 국회를 비하하고 야당에 책임을 떠넘기며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였다.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궁금증이나 의혹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에게는 불편한 질문일수록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질문이다. 질문자인 앵커의 입에서 그런 질문은 나오지 않았고, 질문이 없으니 답변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인사에서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정부, 국민 앞에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겠다고 했었다. 그건 거짓이었다. 

 

도어 스테핑은 윤석열 정부의 업적이라 자랑했었다. 그랬는데 기자의 불편한 질문이 싫다고 어느 날 갑자기 없애버렸다. 출근길에 기자들을 안 봐도 되니 편하냐 섭섭하냐 묻는 질문은 어리석게 들렸고, 도어 스테핑을 했더니 각 부처와 메시지 전달에 착오가 생기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대통령의 답변은 엉뚱하게 들렸다.

 

교수였던 부친이 연구실에서 50년 넘게 사용한 책장을 버릴 수 없어 집무실로 가져왔다는 사연이 애틋하다. 그러나 거기까지, 통계학 교수였던 부친은 ‘한국경제의 불평등’에 관심이 많았다는데, 아들인 대통령은 부자 감세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게 의아했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은 없었다. 잠시 애틋함을 느낀 내가 민망하다.

 

한 시간의 대담에서 대통령의 말은 길을 잃고 좌충우돌하였다. ‘59분 대통령’이란 별명이 있는 대통령은 동문에 서답을 하고, 뒤의 말이 앞의 말을 부정하고, 자랑할 일이 아닌데 자랑을 하고, 실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책임을 느껴야 할 사안에는 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사과값이 너무 비싸다는 질문이 내 귀에는 물가고에 대한 질문으로 들렸는데, 대통령의 답변은 외국 과일을 싸게 수입할 수 있게 하겠다며 물가 아닌 과일값에서 그쳤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불안심리를 견디지 못하고 영끌 대출로 집을 샀다가 고금리에 허리가 끊어진다는 질문에, 고금리는 미국이 금리를 올린 탓이고 은행들의 독과점이 문제인데 관치금융으로 금리를 내리게 했다는 자화자찬을 한다.

 

저출산이 최우선 국정과제이고 국가의 지속 가능성이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 중에 정말 중요한 책무라면서 ‘좋은 정책을 쓴다고 해서 출산율이 꼭 느는 거는 아니라는 경험을 얻었고요. 저희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 그래서 우리 사회가 과도한 또 불필요한 이런 경쟁에 너무 많이 휘말려 있는 것이 아니냐, 조금 더 가정을 중시하고 좀 휴머니즘에 입각한 이런 가치를 가지고 살 수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59분 대통령’의 화법이구나 싶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묻는 질문은 기승전 ‘부자 감세’로 귀결된다.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어야 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도 생기고 국민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케케묵은 주장을 되풀이한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말을 빌리자면, 대통령이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상식이 있는가 할 의심이 들 정도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은 대통령이란 생각이 강화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2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음에도 준비를 하지 않은 기업이나 정부의 잘못은 말하지 않고, 또 유예하자는 제의를 거부한 야당을 악마화하고, 일본 기시다 총리에게 끌려다니는 굴종적 외교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시다에 대한 무한 신뢰를 드러내고, ‘천방지축’ 트럼프 재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오는데,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은 트럼프가 재선되어도 의회 구성은 그대로이고 한미동맹은 달라질 게 없다며 태평하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의 대표를 만나지 않는 건 여당 대표를 차별하는 거라는 무논리의 자기중심적인 억지 주장에 거침이 없고, 지난 대선에서 증오를 부추겨 당선된 대통령이 증오의 정치, 공격의 정치가 문제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을 통해서라도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데서 폭력이 나온다고 남 일처럼 말한다.

 

미국에 경도되고 중국에 적대적인 외교로 인하여 중국 수출이 급감하고 있고 경제에는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인데, 오죽하면 중국 혐오를 조장하며 중국을 벗어나니 세계가 보인다고 탈중국을 선동하던 조선일보조차 중국 시장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하는 형국인데, 대통령은 한중 교역관계에는 특별히 문제 되는 것이 없고 중국이나 우리나 대외관계의 철학과 기조가 같으니 걱정할 게 없다고 한다.

 

전쟁의 불안은 날로 커지는데, 휴전선에서의 우발적인 돌발상황이 국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고 그것이 국제사회에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고 작은 충돌이 있었어도 경제에는 아무 영향이 없었던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은 아무런 소득도 없는 정치쇼였다고 치부한다.

 

숨이 막힌다. 암울하다. 대학생 때도 아버지에게 고무호스로 맞았다는 무오류의 불통 대통령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세상과 괴리된 구중궁궐이라더니 용산궁은 완벽하게 밀폐된 원자로이거나 지구에서 수억 광년 떨어진 어느 별에 있는 것 같다.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국민의 의무가 된다는 법언(法言)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권력을 감시하지 않는 언론, 불의를 목격하고도 짖지 않는 언론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송요훈 전 MBC기자mindle@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