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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조기 발주, 총선전략인가 재벌 특혜인가

道雨 2024. 2. 21. 14:00

핵발전소 조기 발주, 총선전략인가 재벌 특혜인가

 

 

 

작년에 한국수력원자력(주)은 신한울 3, 4호기 조기 발주를 위해, 두산에너빌리티에 2조 9천억 원 제작공급, 현대건설에 3조 1천억 원의 건설시공 계약을 체결했다.

건설인허가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제작, 시공 합쳐 총 공사금액의 절반 가량인 6조 원을 조기 발주한 것이다.

조기 발주란 사전에 건설 인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로, 정해진 준공일을 조기 달성하기 위해 사전 발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흔히 하던 방법이다.

준공일을 이미 정했기 때문에, 안전규제는 사업자 협조 차원으로 다루어지고, 무수한 시공 불량도 눈감아줬다. 특히 원전사업 초기 권위적인 군사정권 시절에, 최고 권력자에게 보고한 준공일을 맞추지 못한다면 목이 10개라도 부족할 판이니, ‘공기 준수’는 지상명령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기 발주는 그만큼 예비시간을 벌어 공기 단축까지 가능할 수 있게 했다. 품질은 둘째 문제고, 공기만 단축하면 각종 훈·포장이 쏟아졌던 시절이었다.

안전 도외시한 핵 발전소 건설 조기 발주의 위험성

‘공기 준수’는 어느덧 ‘공기 엄수’가 되어, 건설과 운영, 교체, 정비 등 전 분야에서 지고의 가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공기 준수를 위해 필요하면 수시로 24시간 돌관작업에 들어가는 등, 건설 현장에서 사생결단의 전투가 벌어지는 듯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부실이 덮였다.

가동한 지 이십 년 만에 한빛 4호기 안전구조물인 격납용기 콘크리트 벽체에서 157cm 깊이의 동굴(?)이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국, 박근혜 정권 시절 드러난 품질서류 위변조 등 원전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쳤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현재는 잠복해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안전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의 건설 승인도 없이 감행한 6조 원의 신한울 3, 4호기 조기 발주는, 향후 안전문제가 대두되면 매몰비용화될 가능성도 있다. 신한울 3, 4호기 부지에 표준원전을 적용한다는 명분으로, ‘원자로 시설 등의 기술기준 적용에 관한 원자력안전위원회 규칙’의 최신 위치 규정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조기 발주했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은 신한울 3, 4호기 조기 발주를 감행한 것은, 탈원전으로 황폐해진(?) 원전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원전생태계 지원이라 함은 설계-제조-건설시공-정비의 모든 과정에서 핵심 중소기업에 물량을 공급하여 도산하지 않고 사업을 유지하도록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수원이 발주한 두산에너빌리티와 현대건설은 원자력 비중이 총매출의 5%도 되지 않으므로 원자력 사업 의존도가 높은 핵심 중소기업들의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중소기업들은 그 밑 하청으로 들어가 두 재벌 회사에 사운을 걸어야 한다.

재벌회사에 국가산업의 생태계 관리를 맡기는 것은 특혜이다. 재벌기업은 그야말로 돈 버는 게 목적이다. 사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100원 받아 50원 하청 준다고 해도 누가 뭐랄 수 없다. 그 때문에 발주금액 6조 원 중 상당 부분이 지하 자금화 되는 등, 비리가 싹트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생태계 유지를 진정 원한다면, 핵심 중소기업에 제값 주고 직접 발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생태계를 살린다며 대기업에 조기 발주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며, 특혜를 가리는 위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뭐라고 변명할 텐가.

책임자 모호한 사업구조는 무성한 비리의 온상

해외에서는 엔지니어링 회사가 발주를 수행한다. 제작, 시공은 설계자에 의해 기술적으로 효과적인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설계회사인 한전기술(주)은 설계문서만 생산한다. 최종 발주자인 한수원은 설계자가 아니라서 6조 원의 공급계약을 대기업에 위탁하지만, 이들 또한 설계자가 아니므로 역시 책임이 모호하다.

 

반면에 권력의 개입을 쉽게 한다.

정경유착이 심하면 영향력 있는 학자와 공무원과 퇴직자까지 끼어들어, 비리가 무성한 최적의 환경이 된다. 이러한 사업환경에서는 이해관계가 중요하고 기술은 뒷전으로 밀린다. 기술 중심의 합리적인 사업관리보다 사적 이해만 극대화하는 쪽으로 매진하게 된다.

우리 원전업계는 시공능력 최우수라고 인정은 받았지만, 안전규제는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원자력 안전규제 조직은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마땅한데도, 진흥부처인 과기부 내 한 부서였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비로소 독립부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 편제는 여전히 원자력진흥위원장인 총리 산하로 되어있다. 핵으로부터 시민 안전을 지켜야 할 원자력안전위가 정보공개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함에도, 사업자 영업비밀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이다. 원자력안전위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수준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비뚤어진 원자력 안전문화를 바로잡기는 난망이다.

신한울 3, 4호기 조기 발주 문제가 정치 공방으로 비화한다면 안전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안전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최재형 감사원장의 감사결과와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수사로 인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두 유력자의 정치무대 데뷔의 기회만 제공했다.

 

이처럼 전 국민의 0.2%만이 사업적 혜택을 입는 위험시설인 원전의 안전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나 조직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

 

 

이정윤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