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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이 ‘하위 10%’라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道雨 2024. 2. 22. 10:13

박용진이 ‘하위 10%’라니, 누가 납득하겠는가

 

 

 

지난 월요일 오후 1시께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박용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에 포함됐음’을 통보했다.

“저는 참 납득이 안 됩니다.”(박용진)

“저는 잘 모릅니다. 그냥 통보만 합니다.”(임혁백)

 

박용진이 전한 당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는 누구도 왜 박용진이 하위 10%인지 모른다. 채점표는 공개하지 않는다.

박용진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서울 득표율 1위를 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유치원 3법을 통과시킨 점이 국민들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고, 여느 의원들과 달리 재벌개혁에도 늘 목소리를 높였다.

또 늘 ‘입바른 소리’를 했고, 당내 특정 계파에 줄을 서지 않았다. 대신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주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국민들에게 건강한 목소리를 전달해 대중적 인지도도 높다.

 

그런데 왜 하위 10%인가.

추정은 가능하다.

입법 실적, 본회의 출석, 상임위 출석 등 정량평가는 의원들 간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돼 있다. 의원들 간 다면평가와 평가위원 주관이 개입되는 정성평가, 그리고 권리당원과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로 이뤄지는 지역활동 수행 평가 등에서 점수 차가 벌어질 수 있다. 애초에 배점 설계가 그렇게 돼 있었다.

정성평가는 총 12명으로 구성된 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한다. 송기도 위원장(전북대 정외과 명예교수) 외에는 외압을 우려해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송 위원장은 이재명 대선 후보 직속 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 임혁백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2층 당원존에서 4차 공천 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안경을 바꿔 쓰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에는 현재 3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했다. ‘하위 10%’는 득표율의 30%를 감산한다. 경선은 당원 투표 50%, 여론조사 50%로 진행된다. 이재명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부쩍 늘어난 신규 당원들은 ‘친명’ 쪽이 많다. 1차에서 70%를 득표해도 30% 감산하면, 49%로 줄어들어 결선을 치러야 한다. 결선에선 최소 60%를 얻어야 감산 30%를 해도 42% 대 40%로 간신히 승리할 수 있다.

 

이번 경선에서 ‘하위 10%’ 의원에 대한 감산 비율을 늘렸다. 현역 의원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제도 변경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또 당 지도부 말처럼, 개별 의원 평가에 인위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도 높지 않으리라 본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진통이라 생각해달라”고 했다.

 

현재 강북을에는 친명계로 분류되는 정봉주 전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다. ‘박용진’을 ‘정봉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 민주당의 지향인가. 이 대표는 “(하위 20%에) 제가 아끼는 분들도 많이 포함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친명계’ 의원들만 아끼는 건 아니겠지만, ‘하위 10%, 20%’에 속한 의원 31명 중 친명계는 3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비명계 의원 지역구에서 현역 의원은 배제하고 영입 인사나 친명계 인사만 넣은 여론조사가 이곳저곳에서 진행돼 논란이 일었다. 설 연휴 직후부터 문제가 됐는데, 그동안 당 지도부도, 공천관리위원회도 1주일 이상 “모른다”고만 했다. 21일 의총에선 조정식 사무총장이 “대체로 당이 한 게 맞다”고 했다고 참석 의원들이 전했다.

 

공천은 정당이 한다. 다만 유권자는 그 공천에 대해 판단한다.

총선에서 큰 흐름은 ‘바람’이지만, 각 지역구에선 ‘공천’이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야권 분열로 개헌 저지선 사수를 걱정하던 2016년 총선에서 결과가 정반대로 나온 실질적 이유도 ‘진박’ 공천 때문이었다.

 

특정 정당이 공천을 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상대 정당이 공천을 잘못하면, 다른 정당이 수혜를 입었다. 2020년 민주당 압승도 ‘코로나 극복’ 평가도 있지만, 미래통합당 공천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공천을 잘하지 않고도 압승을 거둔 2004년, 2008년 선거도 있었다. 노무현 탄핵 역풍, 이명박 정부 출범 때였다.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이 팽팽히 맞서고, 서울에선 국민의힘 지지가 민주당 지지를 앞선다. 총선은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윤석열 정권이 이렇게 잘했단 말인가.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달리, 공천 외에도 숙제가 많다. 녹색정의당과의 ‘지역구 연대’, 비례연합정당 내부 순번 갈등이 대기 중이다. 게다가 개혁신당은 분리되고, 조국 신당도 생길 예정이니 지지표가 분산될 공간은 더 넓어졌다.

 

‘정권 심판론’을 앞세우려면 ‘정권 심판’에 제대로 몰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의 최우선 목표는 도대체 뭔가.

안되는 조직은 바깥엔 눈감고,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싸운다. 그래서 세상 물정에 어둡고, 외부 평가는 부인하고, 남모를 자신감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때가 위기다. 정부·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엑스포 참패가 그랬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