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북일 정상이 만나는 날…한국은 그저 일본 뒤만 쫓아갈 것인가

道雨 2024. 2. 23. 10:01

북일 정상이 만나는 날…한국은 그저 일본 뒤만 쫓아갈 것인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올해 6월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한 일본 매체의 2월19일자 보도는 충격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 보도에 어떤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 이튿날에 미국 국무부의 사브리나 싱 부대변인은 북-일 정상회담을 지지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화가 역내 안정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당연히 환영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말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지난 16일에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직접 나서서 “기시다 총리는 지금까지 북한과 사이에서 여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실현해야 하며, 총리 직할로 고위급에서 협의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해왔다”며, 밑자락을 깔아놓은 터였다.

 

그 전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북한과 일본)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일본)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비록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해 두 나라의 이견이 있다고 하지만, 대화에 무게를 두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아직 두 나라 간의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러나 작년부터 진행되어온 양국의 막후 접촉은 동북아 정세에 중요한 변수임에 분명하다. 북한에 접근하는 일본에는 분명 과거와 확연히 다른 대국다운 풍모가 느껴진다.

 

2022년에 개정된 국가안전보장전략서에서 천명한 대로, 일본은 방위비를 50% 증액했고, 군사 지휘 체계와 제도를 바꿔서 대만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준비를 거의 완료했다. 올해 육해공 자위대를 일원적으로 지휘하는 통합사령부를 창설하게 되면, 주일 미군과 함께 대만 사태에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는 군사적 준비 태세가 갖춰지게 된다.

 

그간 사령부가 없었던 일본 자위대는 미군과 합동 교전규칙을 공유할 수 없어, 주변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는 후방 지원 군대에 불과했다. 게다가 통합 막료장은 군을 전투 지휘하는 사령관이라기보다 총리와 내각을 보좌하는 참모에 가까워 전쟁 수행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었다.

이를 혁신해 자위대 전체를 신속하게 전투에 투입하고 행동을 통일하도록 하는 통합 사령관이 탄생하게 되며, 이에 맞춰 주일 미군 역시 자위대와 합동작전이 용이한 조정기구를 설치한다.

군사제도 재편이 막바지에 달한 올해 초에, 일본 항공자위대는 한국·미국 공군과 함께 한반도에서 합동 공중훈련까지 진행하였다.

일본 자위대의 스텔스 전투기가 한국군의 작전 영역으로 진입하는 길을 터준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전쟁을 모르던 무능한 일본 자위대와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았을 터다.

 

 

갑자기 강한 근육질의 일본이 탄생하는 순간, 일본 정부는 대륙으로부터의 역풍을 걱정했을 것이다.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력과 동맹 체제를 앞서서 구축하는 일본에 여전히 북한은 걸림돌이자 급소였다.

일본 정부는 시끄럽지 않게 군사 혁신을 마무리하고 대만을 향해 군사력을 집중하려면, 북한을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과 미국이 일체 북한과 대화를 진행하지 못해 조성된 외교 공백을 일본이 파고든다면, 이 또한 대국다운 전략 아닌가.

 

올해 일본은 경제성장률에서 한국을 추월하며 아시아의 최대 투자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비록 정치가 엉망이라 하지만, 사상 최대치의 주가 호황에, 중국으로부터 철수하는 자본이 유입되는 안전한 투자처로서, 일본은 분명 아시아의 중심국으로 재부상하는 중이다.

 

이런 일본은 “북한과 대화는 가짜 평화”라며 오직 “힘에 의한 평화”만 외치는 실속 없는 한국 정부와는 품격이 다르다. 국제 외교에서 속 깊이 감추어야 할 증오와 이념의 언어로 외교를 펼치는 한국 정부와 달리, 일본은 대국을 향한 열망을 조용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역 정세에서 일본은 중요한 경쟁자이자 협력자로 인식하는 데 반해, 한국은 아예 만나지도 않는다.

 

 

북한과 일본의 정상이 만나고, 연말에 트럼프가 귀환하는 운명적인 순간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서서히 활력을 잃고 쇠락하는 대한민국이 2024년에 새로운 국가 대전략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고 그저 일본 뒤만 쫓아다녀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실패의 시나리오다.

 

총선을 50일도 안 남긴 이 시점에,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투표의 기준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