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민 가난하게 만드는 것도 닮은 한·일 두 나라 정부

道雨 2024. 2. 26. 10:16

국민 가난하게 만드는 것도 닮은 한·일 두 나라 정부

 

 

 

[홍종학 칼럼] 서민경제 외면 친기업 정책, 따라가는 한국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새해를 맞아 가졌음 직한 희망과 기대도 잠시, 한국 경제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민생은 파탄지경이고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미국과 일본의 주식시장은 활황이고 하루가 다르게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주식시장만 소외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성장률에서 일본이 한국을 앞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좀 더 들여다보면, 미국과 일본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쓰고 있고, 이에 따라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고금리로 인해 경기가 위축되리라는 예상과 달리, 고용과 성장이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인플레이션도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어, 이자율도 곧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실물시장도 금융시장도 반색이다.

미국은 인공지능 분야가 혁신을 주도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고, 인공지능 관련 반도체를 공급하는 엔비디아의 실적이 예상을 뛰어넘으며 주식시장의 호황세를 이끌고 있다.

 

 

전혀 다른 이유로 호황 이룬 미국과 일본 주식시장

 

일본은 주식시장은 호황이지만, 실물시장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면서, 실적을 기반으로 한 미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30여 년째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는 세계 최고의 경제로 각광받던 과거를 생각하면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릴 만하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장기적으로 초저금리를 유지해 왔고, 제로금리도 부족해서 수익률곡선 통제(Yield Curve Control)라는 기상천외한 비전통적 금융정책을 쓰고 있다. 금융정책의 수단인 단기금리뿐 아니라 아예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금리까지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다.

 

* 8일 도쿄 외환시장의 엔 거래 종가 수치를 보여주는 전광판. 이날 닛케이 평균주가는 엔 약세 기조 지속 전망 속에 급반등했다.  2024.2.8. AFP 연합뉴스

 

 

일본 은행의 저금리 정책에 더해, 일본 정부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각 분야의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고, 심지어는 전 국민에게 상품권을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그 결과 정부 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해서, 이제 일본은 이자율을 올리면 정부 부채 때문에 한동안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힘들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 은행은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모든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총망라하고서도 부족해,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는 신기원을 열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주주 친화적 정책뿐 아니라 엔저가 주식시장 호황 이끌어

 

경제는 침체에 가까운데 주식시장이 호황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경제신문들은 일본의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주효했다며, 한국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주식가격이 자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은 주주 친화적 정책이 부족한 탓이니,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등을 유도하여 주식가격이 올랐다는 주장을 다수 언론이 확산하고 있고, 이를 받아 정부 당국도 관련 조처를 하려 한다고 한다. 이런 소식에 갑자기 국내 관련 주식가격들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 원인을 과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주식시장은 환율에 큰 영향을 받아왔다.

미국의 압력에 의한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버블경제는 붕괴했고, 동시에 주식시장도 폭락했다.

반면 최근에는 저금리와 수익률곡선 통제 정책으로 인해 엔화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떨어져 일본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지자 국내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몰려가듯이, 주식시장에서도 일본의 주식들이 상대적으로 싸지면 외국인들이 몰려들게 되어 있다.

간단히 엔화 환율과 주식가격을 한 장의 그림(아래 참고자료)에 그리면 명확하게 둘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다.

 

 

 

 

고용불안, 낮은 임금, 엔저로 고통받는 일본 국민

 

주식시장은 호황인데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장기침체로 임금은 OECD 다른 국가들보다 낮은데, 당장 실적이 좋은 기업들도 실적 유지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워 임금을 올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 정부가 기업에 임금을 올리라고 독려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춘투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리고 있을 정도이다.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일본 노동자들에게 엔저는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었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수입물가 상승으로 식료품 가격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특히 저소득층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가 늘 수는 없다. 이미 다른 지표들보다 앞서 작년 봄부터 일본의 소비는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면서, 전체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일본의 소비가 살아나기 전에는 실물 성장은 어려울 것이고, 설사 성장을 하더라고 그 과실은 소비자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공히 국내 총생산 대비 소비지출의 비중이 매우 낮은 국가이다. 국민이 가난한 경제의 특징이다. 반면 건설투자 비중은 오랫동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는데, 과거 일본에서 낚시꾼만 좋아하는 댐 건설, 강아지만 뛰어노는 도로 건설이란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듯이, 건설투자의 효율성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소비자에게 돌아오지 않으니 소비자들의 소비가 늘기 어렵고, 과도한 건설투자가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니 장기침체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살아나기 어려운 일본 경제, 그 뒤를 쫓는 한국 경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양국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다.

경제를 살리는 마지막 보루인 정부의 지출을 서민경제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대기업을 위해 퍼붓다 보니 국민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본이 정부 부채가 문제라면, 한국은 기록적인 가계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면서 양국 언론은 서로 상대방의 친기업 정책을 본받으라고 주고받으며, 기형적인 친기업 정책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일본 경제는 살아나기 어렵고, 한국경제는 열심히 그 뒤를 쫓고 있다.

 

서민 가계는 돌아보지 않고, 부자와 대기업 감세, 주식가격 올리기에 급급한 언론과 정부의 모습에 절망감을 느낀다. 원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가계가 더욱 가난해지는 방식으로는 억지로 올린 주식시장이 버티기 어렵다.

 

반면 가계가 튼튼해지면 주식시장은 자연스럽게 실적에 기반한 호황을 누리게 되어, 장기 상승곡선을 탈 것이다.

잘못된 정책, 잘못된 공론으로 한국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주식시장은 다시 투전판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홍종학 경제스케치북mindle@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