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전쟁 위기, 우발적 충돌 관리역량 없어 더 위험"

道雨 2024. 2. 26. 10:03

"전쟁 위기, 우발적 충돌 관리역량 없어 더 위험"

 

 

 

[이종석 장관 인터뷰 ② ] 한반도 위기와 국제정세

김정은 화두는 경제, 경제, 경제…안보적으로도 안정

"먼저 전쟁 안 한다"는 것도 그 때문, 문제는 우발 충돌

이 절망적 상황에 트럼프가 '돌멩이'이라도 던졌으면

변수 남아 있지만, 북-일 정상회담까지 갈 수 있을 것

'국익중심 실용외교' 외면하면 경제부터 무너진다

중-러와 척 지고서 언제까지 천연덕스러워할 건가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 위험의 핵심은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여부가 아니라 우발적 충돌 탓에 전쟁으로 가는 중간단계를 제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걸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의 한-미, 특히 한국의 리더십에 없기 때문에 위험한 거죠."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21. 김성진기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65)은 연초부터 국내외에서 제기된 한반도 전쟁 위기의 핵심을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가지 않도록 사전에 제어, 관리할 능력의 부재로 꼽았다.

이 장관은 "우리는 김정은의 호전적인 태도에 집중하지만, 노동신문을 보면 북한의 우선순위는 분명 경제"라면서 "김정은은 집권 이후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안정적인 경제적 조건에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지난해 대풍으로 상당한 식량을 확보한 데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석유와 역청탄 등 1차 에너지 자원을 확보했다"면서 "여기에 올해 수교 75주년인 중국과의 일반상품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러시아와의 심화된 안보 협력으로 안보적으로도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세기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는 농촌 개발을 위해 시범지역으로 삼은 김화군을 방문, 간부들을 거듭 질책한 것에 대해 "모델을 설정하면 일단 그걸 따르라고 하기 십상인데, 김정은은 그 모델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라면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에서 볼 수 없었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최근 북한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 간에 대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북한이 핵문제와 납치자 문제를 거론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기시다의 의지와 자율성에 따라 북·일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일 대화가 성사되고, 11월 미국 대선 뒤 북·미대화가 이뤄지면, 윤석열 정부는 외교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면서 "다만 그러한 상황이 올지는 미지수"라고 단서를 달았다.

미 대선에서는 "서생적 문제의식은 없지만, 상인적 현실의식을 갖춘 트럼프가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면서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이 움직이지 않기에, 누군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라도 던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이 장관은 주변국 관계를 방치하고 동맹 외교에 방점을 둔 윤석열 정부의 대외 전략으로 인한 국가 경제의 어려움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그는 "한 나라가 망하는 건 흥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라면서 "일단 방파제에 구멍이 뚫리면, 정권이 바뀌어도 누수를 막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이어 "중국, 러시아와 척지고 우리가 언제까지 천연덕스러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경제적 합리성이 작동하지 않은 채 정치적 목적에 종속된 걸 원상회복해야 하는데,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전환기 남북관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내일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한 세 번째 대화 상대로 선정한 이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민들레 사무실에서 있었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시민언론 민들레'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21. 김성진기자 

 

 

 

인터뷰 일문일답

 

-올해 초부터 제기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어떻게 보십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동원해 전쟁을 할 것 같다"라는 경고를 내놓았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쓸 거라는 말도, 쓰지 않을 거라는 말도 믿을만한 게 못 됩니다. 김정은은 결코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전쟁을 거론하면서도 "명백히 하건대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는 걸 사전에 방지할 수 없으면 위험해진다는 점이죠. 전쟁이 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 상황을 굉장히 위험하고 보고 있는데 그 위험의 핵심은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여부가 아니라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가는 중단 단계를 제어할 수 없고, 우발적 충돌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의 한‧미 리더십, 특히 한국의 리더십에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거죠. 그걸 알면서도 한·미 군사훈련은 계속될 것이고요. 핵무기 사용 여부야 김정은이 국지전은 몰라도 전면전이 발생해 평양이 공격을 받게 되면 안 쓰겠어요? 우리는 김정은의 전쟁 거론발언 등 호전적인 태도에 집중하지만, 노동신문을 보면 북한의 우선순위는 분명 경제입니다. 더구나 김정은 집권 이후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좋은 경제적 조건에 있고요."

 

-당중앙위 전체회의 보도나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세기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는 농촌 현실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띄었습니다.

"도농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매년 20개의 시군에 경공업 물자를 생산하는 종합공장을 1개씩, 10년 동안 짓겠다는 '지방발전 10X20 정책'도 그렇고요. 몇 년 전부터 퇴락한 농촌 가옥구조를 바꾸기 위해 농촌 살림집 건설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북한은 작년 초 식량 위기가 있었습니다. 밑에서 현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서 뒤늦게 군량미까지 풀었죠. 그런데 작년 1년 동안 대풍을 기록해 상당한 식량을 확보했습니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으로 석유와 역청탄 등 1차 에너지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요.

또 극동 러시아 개발에 북한 노동력을 대거 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극동 러시아의 행정장관이 공개적으로 방북하지 않았습니까? 러시아에 갈 북한 노동자의 수가 상당할 겁니다. 거기에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입니다. 인민일보가 최근 시진핑이 두 명의 외국 지도자와 주고받은 서신을 소개했는데 위에 김정은과의 서신을, 아래에 바이든과의 서신을 실었습니다. 중국과 일반상품 교역이 늘어날 겁니다. 러시아와 안보 협력도 심화됐기에 지금은 안보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좋은 때입니다."

 

* 중국 인민일보의 1월 2일자. '중북 우호의 해'를 머리에 올리고, 그 밑에 중국-미국 수교 45주년 기사를 실었다. 2024.1.2. 인민일보 누리집

 

 

-김정은의 리더십이 선대와 전혀 다르다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을 눈여겨보셨습니까?

"지난 7일이었나요? 김정은의 김화군 지방공업공장 현지지도 보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농촌 개발을 위해 본보기로 삼은 곳이 김화군인데 이곳을 모델, 즉 전형으로 제시하였지요. 모든 시군이 김화군 지방공업공장의 모든 면을 따라 배우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김화모델'은 북한 간부나 주민들에게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십상입니다. 김정은은 그걸 우려했습니다. 김화 모델 자체에 행여 하자가 있으면 큰 문제가 되니까요. 그래서 김정은은 이 김화군 지방공업공장을 방문하여 이 전형이 문제가 없는지 다시 점검합니다. 즉, 그는 '지방발전 10X20 정책'의 첫해를 맞아 김화군의 식료공장과 일용품공장, 종이공장을 둘러보면서 '바로잡을 일련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간부들을 질책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화모델을 업그레이드하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내놓는 것이지요. 이런 리더십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겁니다."

 

-북·일 대화의 가능성이 조금씩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지율이 20%대인 기시다 내각은 뭐라도 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남쪽에 대해서는 가장 적대적인 관계라면서도 나머지 국가와는 얼마든지 대화를 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1월 초 일본에 지진이 발생하자 위로를 표하면서 '기시다 각하'라는 표현도 썼죠.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북한이 핵문제와 납치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고, 기시다가 얼마나 의지와 자율성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북‧일 간에는 정상회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시다가 작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을 포함해 두 차례나 정상회담 용의를 표명하지 않았습니까. 김여정도 일본과 대화를 할 용의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고요.

일본은 과거에도 두 차례 북·일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1990년 9월 일본 정계 일인자였던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가 평양을 방문해 자민당-북한 노동당-일본 사회당 3당 선언을 했었죠. 또 2002년 고이즈미가 방북해 평양선언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은 민족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받아들여도,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견제를 덜 하는 것 같습니다. 북‧일 대화가 성사되고 11월 미국 대선 뒤 북·미 간 대화를 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외교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겁니다. 다만 북‧일, 북‧미 대화라는 상황이 올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북한도 조건을 보아가며 움직일 거고요."

 

*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시정연설 관철을 독려하는 선전화. 매년 20개 군씩 10년 동안 현대적인 공장을 짓자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2024.1.21.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당국 간 회담이 아니더라도 북·일은 몇 차례 적십자 회담을 통해 2014년 일본인들이 청진과 함흥 등지에 있는 가족묘를 성묘할 기회를 얻도록 했었죠.

"활용할 만한 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피랍된 경우가 아니더라도 북한에 있는 일본 주민이 고향에 귀환하는 퍼포먼스 등 몇 가지 형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서로 대화가 이뤄져야 그런 이야기라도 나누지 않을까요?"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와 상관없이 북‧미 간 대화가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바이든이 재선한다고 해도 한반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바이든보다 훨씬 전략적 안목이 있었던 오바마도 재선 뒤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습니까. 그 시기가 한국에선 보수정권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로부터 관계개선 요구가 없으니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미국의 보수·민주 정권과 한국의 보수·민주 정권이 동조화된 시기가 매우 짧았다는 것이 한반도의 불행인 것 같습니다. 서생적 문제의식은 없지만,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도 갖춘 트럼프가 되면 뭐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라도 던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현재 한반도 주변의 국제관계를 어떻게 읽으시는지.

"노무현 정부 시절의 동북아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미국의 리더십 속에서 북핵을 둘러싸고 강대국 협력이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격렬한 미‧중 갈등 시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다만 작년부터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디리스킹(탈위험화)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갈등의 고비를 넘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물론 가을 미국 대선도 있고, 미국의 특성상 중국 견제가 쉽게 끝나지 않겠지만, 어쨌든 국면이 서서히 달라질 것 같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결국 종결로 갈 것 같고요.

지금이야 '이념'이니 '가치외교'니 떠들고 있지만, 우리는 그 시대가 꺾이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익 증대를 위해 실용외교를 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우리 국가이익을 갖고 동맹과 주변국 협력을 조화롭게 끌어가지 않고, 동맹 위주로 계속 간다면 한국은 경제부터 계속 망가질 겁니다. 경제인들이 비명을 지르게 되겠죠.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라는 말이 올해, 내년 가면서 더 절실해질 것 같습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에앞서 악수하고 있다. 2023.9.13. AFP 연합뉴스 

 

 

-러-우 전쟁 이후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나 글로벌 사우스(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개도국)를 중심으로 각각 국익을 추구하는 편익동맹(Alliance of convenience)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크라 전쟁으로 새로운 동맹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죠. 다만 서방에서 기존 동맹의 동맹성과 배타성이 강화되었지요.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응한 중러 협력 등도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릭스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전쟁 와중에 많은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건, 흥하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일단 방파제에 구멍이 뚫리면 정권이 바뀌어도 누수를 막기 어려워져요.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중국, 러시아와 척지고 우리가 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우리 공동체가 그러고도 언제까지 천연덕스러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어떻게든 중국과 대화를 복원하고, 러시아와도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치외교에 찌든 국가안보실이 경제문제를 다루며 통상부서들을 압박하면, 이념이 경제의 합리성을 말살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합니다. 나라 경제가 위험해지는 거죠.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점점 경제적 합리성으로 작동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는 느낌입니다. 그걸 원상회복해야 하는 데 간단해 보이지 않네요."

 

 

 

김진호 에디터gino777@mindlenews.com

 

 

 

 

     ☞ 이종석 장관 인터뷰 ①

 

이종석 장관(65) 약력

1958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을 가장 세밀하게 읽는 학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의 관점이 아닌, '내재적 비판적 관점'에서 북한을 읽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가안보실(NSC) 사무차장으로 공직을 시작한 뒤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세종연구소로 수석연구위원으로 복귀했다가 지난해 정년퇴임을 했다. 은퇴 뒤에는 500기가바이트 정도 모아둔 자료를 바탕으로 북-중 관계 연구서를 새로 집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북한의 역사'와 북한-중국 국경 역사와 현장' '한반도 특강' '칼날 위의 평화' '분단시대의 통일학' '새롭게 쓴 현대 북한의 이해' 등 수많은 저서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