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주류 언론 경제 기사에 '오보·왜곡'이 많은 이유

道雨 2024. 4. 23. 11:50

주류 언론 경제 기사에 '오보·왜곡'이 많은 이유

 

 

 

"국가부채 2천조" "1천조" 오락가락 엉터리 보도

문 정부 고환율 "위험"…윤 정부 고환율은 "긍정적"

IMF 직전 "경제 이상 무"…노무현 4%에 "경제파탄"

종부세엔 세금폭탄, 재벌 미화, 부동산투기도 조장

정권마다 다른 보도…정파 · 계급 이익만 추구 탓

 

 

언론신뢰의 최대 적()인 오보·왜곡보도는, 기자가 팩트(사실)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거나, 언론사의 과도한 정치·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팩트를 왜곡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오보·왜곡보도는 주로 정치·사회·국제 분야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대개 '감춰진 팩트'에 대한 부실 취재나 왜곡 때문이다.

 

경제 분야는 좀 다르다. 경제 기사는 감춰진 팩트 보다는 ‘공개된’ 숫자·지표·통계 등을 활용해 작성된다. 정부나 기업이 발표하는 온갖 숫자와 통계, 시장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여러 금융지표들은, (오류나 속임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개 국민과 시장참여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언론은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해 보도한다.

 

그런데도 경제 기사에 자주 오보나 왜곡보도가 만들어진다.

 

수없이 많은 우리나라 언론의 오보 혹은 왜곡보도 중

▲정치·사회 분야 최악의 보도가 2014년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 

▲국제·외교 분야 최악의 보도가 '소련 찬탁, 미국 반탁' 오보(동아일보), 김일성 사망 오보(조선일보)였다면

▲경제 분야 최악의 오보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조선일보) 보도라고 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파산이 날 때까지 언론은 경제가 멀쩡하다는 엉터리 보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 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인 1997년 9월18일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라는 오보를 낸 조선일보 기사(왼쪽)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때 '학생전원구조' 오보를 낸 방송.   

 

 

 

▲노무현 정부가 경제를 파탄시켰다는 보도

▲종부세가 서민 잡는 세금폭탄이라는 희대의 사기보도

▲대북 쌀 지원으로 쌀값이 폭등했다는 보도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노동이 한국경제를 파탄낼 것이라는 보도

▲부동산 투기 조장 보도

▲재벌대기업 범죄에 대한 찬양·미화·홍보 보도 등도 국민 경제를 어지럽힌 엉터리 오보들이었다. 

▲‘쓰레기 만두’ 오보

▲‘배우 김영애 씨의 황토팩 중금속 검출’ 오보는 특정 업계나 기업을 망하게 한 보도 사례다. 이 오보로 만두 회사 사장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배우 김영애 씨도 세상을 떠났다.

 

 

경제 분야의 이런 오보는 왜 만들어지는가?

기본적으로 기자들의 부실 취재가 원인이겠지만, 정치·사회·국제 분야처럼 정치적·이념적 편향성 같은 다른 요인은 없었을까?

 

지난 4월 초 정부가 ‘2023년 국가결산 보고서’를 발표하자, 여러 주류 언론들이 “국가채무 1,127조원, GDP대비 첫 50%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오보’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오보가 매년 발생하게 된 것은 기자들의 ‘연합뉴스 베껴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언론의 ‘국가부채(채무) 2천조원 사상최대’ 보도가 오보인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언론이 지난해까지 ‘국가부채 2000조원’이라고 언급한 금액은 ‘국가채무’도 ‘국가부채’도 아닌 ‘재무제표상 부채’일 뿐이라는 것이다. '국제 기준의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1200조원이다. 문재인 정부 때(2022년까지)에는 ‘국가부채 2000조원으로 폭증’이라고 부풀려 잘못 보도하다가,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3년치에 ‘국가채무 1127조원’이라고 바로잡은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둘째, 매년 ‘국가부채 사상최대’라고 표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국가부채 또는 국가채무는 국가경제 규모가 커지면 그에 따라 증가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를 매년 ‘사상최대’라고 하는 것은 ‘정부의 재정운용 실패’ 프레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과장이라는 주장이다. 매년 키가 자라는 사람에게 ‘올해 키가 사상 최대’라고 하거나 “올해가 사상 처음으로 2024년이 됐다”는 것과 똑같다.

 

이 수석연구원은 언론이 매년 반복적으로 이런 오보를 내거나 정부가 바뀌면 다른 기사를 내는 것은, 언론의 ‘정파성’이라기 보다는 “그냥 연합뉴스를 베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정파적인 기사를 쓰는 일은 드물다”고 덧붙였다. 

 

* 2023년 국가채무가 1,100조원을 돌파했다는 주류 언론들의 올해 4월 초 기사(왼쪽)와 2022년 국가부채가 2,000조원을 돌파했다는 주류 언론들의 지난해 4월 초 기사. 빅카인즈 화면 갈무리.  

 

 

 

과연 언론의 경제 기사 오보는 ‘잘못된 연합뉴스 베끼기’가 주요 원인일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주류 언론들이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사를 ‘받아쓰기’ ‘베껴쓰기’ 하는 데에 익숙하긴 하지만, ‘고학력 엘리트’ 기자들이 일하는 대부분 주류 언론사가 연합뉴스 보도가 틀린 것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베껴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 집권 때인 2021년, 2022년 연합뉴스가 “국가부채 2326조로 폭증, 나라살림 최대 적자”라고 보도했을 당시, 정부가 매번 반박자료를 통해 잘못된 보도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주류 언론들은 이를 무시하고, 그저 “문재인 정부 국가부채 폭증”이라고 기사화한 것이다.

 

이 수석연구원의 설명대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가부채(D2)는 1200조원이며, 언론이 언급한 2000조원은 재무제표상 부채’라는 사실을 언론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한 주류 언론사는 “4개월만에 ‘1066조→2326조’…국가부채 뻥튀기 논란” 제목의 기사에서 “기재부가 ‘재무제표상 부채는 나랏빚이 아니다’라며 수차례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가부채’ ‘국가채부’ ‘재무제표상 부채’ 용어의 차이를 알면서도, 어느 정부냐에 따라 이를 과장하거나 축소했던 것이다.

 

언론이 한가지 경제 지표를 놓고도 어느 정부 때의 지표인가에 따라 다르게 보도한 사례는 자주 있다.

최근 환율 보도가 좋은 사례다.

달러당 1400원까지 치솟한 원화 환율에 대해, 조선일보(조선비즈)는 “환율 1400원, 오히려 좋아…코스피 내릴 때 현대차…기아는 역주행/ 수출기업, 환차익 누릴 수 있어 수혜”(문수빈 기자, 2024.4.16.)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환율 급등을 긍정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매체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1월 환율이 (1400원보다 무려 200원이 낮은) 1200원을 돌파하자 “환율 10원 오르면 한전 2900억원 손실…항공도 악영향/ 외화평가손실 확대”라며, 부정적 논조의 기사를 써냈다.

SNS 이용자들은 이 두 기사를 나란히 대조하며 “고환율은 정권에 따라 경제에 좋았다가 나빴다가 달라진다”고 조롱하고 있다.

 

고환율이 우리 경제에 이득이 될 리 없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고환율) 수입가격이 올라가 국내 물가를 자극(인플레이션)하고, 이는 서민·중산층에 타격을 준다. 해외 유학생이나 여행객이 손해를 보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고환율이 고금리를 불러와 소비위축·가계 및 기업 이자부담 증가가 이어지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고’로 인해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통화당국이 환율 급등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다. 

 

*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1월7일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돌파하자, 고환율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왼쪽)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 4월16일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는데도 '오히려 좋다'라고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고환율 보도의 농간은 이번뿐 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7월 원-달러 환율이 1130원 수준에 이르자, 한 경제지는 “환율 1130원 위협, 자본유출·인플레 도화선”이라고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9월 환율이 무려 1370원까지 치솟았는데도 “환율 오를수록 좋다”(한국경제, 최서영 기자), “환율 1370원 시대…그래도 수혜주는 있다”(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등의 긍정적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2021년 6월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체 공휴일 확대를 추진하자, 아시아경제는 “결국 공무원만 빨간 날..대체 공휴일 확대 추진에 우려 목소리도”(허미담 기자, 2021.6.7.)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2022년 12월 윤석열 정부가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절을 대체 공휴일로 추가 지정하기로 하자 “6조원 임시 공휴일 경제효과...유통가도 화색”(같은 기자, 2022.12.24.)이라고 보도했다.

대체 공휴일 확대는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하면 ‘우려’할 정책이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실시하면 ‘경제효과가 커서 좋은’ 정책이 된다.

정권에 따라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경제 보도는 이렇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권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같은 매체가 똑같은 경제 이슈를 완전히 상반되게 보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친환경 바람 타고 전기차는 질주/매연 없이 1회 충전으로 500km 주행/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달린다”(한국경제, 2020.7.6.), "디젤과 불과 200만원 차...전기차 이래도 안 살래?"(같은 신문, 2020.7.28)라고 보도했던 경제지는, 한 달 만에 “이제 굳이 탈 이유가 없다…경제성 매력 떨어진 전기차”(같은 신문, 2020.8.6.)이라고 보도했다.

인기리에 질주하고 가격부담도 낮았던 전기차는, 왜 일주일 만에 ‘굳이 탈 이유가 없는’ 차로 전락했을까? 

 

* 한국경제신문이 202년 7월28일 전기차 구매를 권하며 보도한 기사(위)와 일주일 뒤 '전기차 굳이 살 필요 없다'고 보도한 기사. 

 

 

 

코로나가 끝나가고 문재인 정부도 임기가 끝날 무렵이었던 2022년 2월 18일, YTN은 “정부, 카페·식당 영업시간 1시간 연장...자영업자 ‘늦었지만 환영’” 제목의 기사를 오전 9시40분 보도했다가, 겨우 1시간 30분여만에 “자영업자들 ‘영업 1시간 연장해봐야 차이 없어’...실망감” 제목의 기사를 냈다. 자영업자들의 ‘환영’은 1시간 반 만에 ‘실망감’으로 변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9월 30일, 뉴스1은 “고향 못가도 집에 기름 냄새는 풍겨야...추석 앞둔 전통시장 성황”이라며, 30일부터 시작된 추석 연휴를 앞둔 전통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1시간여 뒤 보도된 기사의 제목은 “생선 1마리도 못 팔았어요...추석 특수 ‘옛말’ 전통시장 한숨”이었다.

역시 1시간 만에 전통시장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했다.

 

*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9월30일 뉴스1이 '추석 전통시장이 성황을 이뤘다'고 보도한 기사(위)와 같은 날 같은 매체가 '추석 전통시장에 손님이 줄어 한숨을 쉬고 있다'고 보도한 기사. 

 

 

주류 언론들의 경제 기사는 이렇게 1시간여만에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전환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영업자들의 '환영'은 '실망'으로, 전통시장의 '성황'은 '한숨'으로 바뀐다. 

고환율은 경제에 나쁜 것이었다가 다른 정부에서는 좋은 것으로 달라진다. 

 

노무현 정부 5년의 4% 경제 성장(연평균)은 ‘경제파탄’이었지만, 그 뒤를 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2~3%성장에는 단 한번도 ‘경제파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1.4% 성장률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였지만, 어떤 매체도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의 IMF 경제위기 보도,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의 종부세 보도,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보도, 북한 쌀 지원 보도, 부동산 정책 보도 등이 만약 다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어땠을까?

공격과 수비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 정도면 경제보도 역시 단순히 ‘기사 베껴쓰기’로 인해 오보나 왜곡보도가 만들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무지한 경제부 기자들이 경제 현상과 이를 설명하는 용어가 어렵기 때문에 오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 

경제 기사는 각 언론의 정치적·이념적 편향, 이해관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주류 언론들은 보수·수구세력의 정치적 이익, 그리고 재벌·건설자본의 계급적 이익을 위하다보니, 편향적인 경제 기사를 쓰고, 오보·왜곡보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언론에게서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고 시민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는 제대로 된 경제 기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성재 에디터seong68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