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미일동맹 뒤 영일동맹 그림자

道雨 2024. 4. 19. 10:02

미일동맹 뒤 영일동맹 그림자

 

 

 

1961년 미-일 신안보조약에 서명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일본을 “태평양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이라고 불렀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다. 일본의 역할을 미국의 병참기지로 한정하겠다는 뜻으로도 들리는 말이다.

 

그리고 지난 10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맹의 가장 중대한 업그레이드”를 선언했다. 미·일은 지휘·통제 체계 정비를 통한 연합 작전 능력 제고와 무기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미국은 일본의 ‘적기지 공격 능력’ 지원도 약속했다.

미-일 동맹은 남중국해·동중국해·대만까지 염두에 두며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 대등한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마저 열어줬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의 하위 파트너 지위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은 변하지 않고 언제나 미국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일본의 군사 강국 도약을 제한해온 족쇄를 풀어줘도 딴마음 먹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맹세로 들렸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미-일 동맹의 변화 추세를 보면, 120여년 전 영-일 동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때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고 영국과 일본이 힘을 합쳤다. 지금은 중국 억제를 위해 미·일이 더욱 뭉친다.

그때 영국이나 지금 미국은 상대적 국력이 최정점을 지나, 혼자서는 전략적 경쟁 상대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미국도 당시 영국처럼 과도한 군비 지출에 대한 국내적 저항을 만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또 확실해진 것은, 일본이 미국의 ‘1중대’라는 점이다. 한국과 필리핀은 ‘2중대’다. 한·일은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다르고 국력 등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런 ‘위계질서’는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구도가 한국의 이익과 운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다.

구한말에는 미·영·일이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1·2차 영-일 동맹 등을 통해 한국과 필리핀을 각각 일본과 미국 몫으로 인정하는 등, 동아시아에서 이익을 갈라 먹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지금은 한국과 필리핀이 먹잇감은 아니다. 양국은 미국의 동맹이고, 미국을 정점으로 중국을 억제하려는 안보 협력 관계에 일본과 함께 엮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중심 동맹 체제에서 일본의 ‘맏이’ 역할은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일 정상회담 이튿날 최초의 3자 정상회의를 한 미·일·필리핀은 지난해 첫 연합훈련을 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특수부대가 남태평양 섬나라들에서 출입국 검사 지원 활동을 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과 위상 확대가 언젠가 미-일 동맹의 또 다른 ‘업그레이드’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과거의 합종연횡과 비슷한 점은 또 있다.

2차 영-일 동맹 체결 한달 전인 1905년 7월 맺어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는, 극동에서 미·영·일이 동맹을 구성해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 맞춰 영국 국방부는 미·영·일 연합훈련을 내년부터 정례화한다고 발표했다.

 

반복되는 패턴은 무엇을 말하나.

한국에는 현 정부를 중심으로 일본과의 군사 협력 강화에 열성적인 세력도 상당하다. 그들이 단기적 안보 강화가 장기적 안보 불안의 씨앗이 될 가능성을 생각이나 해보는지 모르겠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