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준연동형 선거제가 만들어낸 유무형의 연대

道雨 2024. 4. 23. 11:27

준연동형 선거제가 만들어낸 유무형의 연대

 

 

 

뜨거웠던 선거의 시간이 끝났다

1. 국민이 비워놓은 정치의 몫

역사는 똑같은 방식으로 재연되지는 않는다. 이번 총선은 촛불 대신 투표용지로 윤석열 정부에 대해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역대 최대 총선 투표율, 야당으로 거둔 역사상 최대 의석 확보가 그것이다. 

촛불국회이어야 했던 21대 국회가 그 역사적 소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그래서 22대 국회가 지연된 촛불국회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22대 국회는 훨씬 힘들 수 있지만 그 대신 우리 사회 근성을 바꿀 역사적 국회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 의석을 얻은 각 정당과 의원 개개인의 역사의식, 그로부터 도출되는 시대정신, 그리고 철저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주어진 사안들에 즉자적으로 대응하는 현안 중심 대처로는 아무리 전투적으로 대응하더라도 22대 국회에 부여된 역사적 소임을 다할 수 없다.

총선 말미에 200석을 꿈꾸던 총선 결과가 사실상 190석 정도로 귀결된 것은 결코 실망하거나 애석해 할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의 절묘한 집단지성 결과라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 11석을 비워놓은 것은 의석수로 일방적 정치일정을 밀어붙이는 대신 정치가 작동할 영역을 남겨놓은 것은 아닐까. 

실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명백한 비토에도 불구하고 야권에 대한 확실한 신뢰 역시 부족하다는 판단이 그런 유보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야권은 최선을 다해 국민 신뢰를 온전히 회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총선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문을 보면 역사상 초유의 총선대패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대로 합리적 연착륙 정치일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이긴 하다. 더구나 총선 열흘만에 대통령 지지율이 임기 중 최대로 급락해 역대 대통령들 퇴임 직전 지지율이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러나 계획에 없던 상황이 초래되어 탄핵이든, 자진사퇴든, 임기단축이든 설사 정권교체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그것은 계기일 뿐이고 무수히 많은 정치과정이 기다리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총선을 통해 비워놓은 의석수를 채울 정치력이 없다면 현 대통령 임기 남은 3년은 물론 이후 한국사회는 커다란 고통과 회복이 어려운 퇴행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22대 국회의 어깨가 더 무겁다. 

정치를 전업적으로 하라는 뜻에서 세비를 받는 사람들이 제도권 정치인들이다. 제도권 정치인들의 활동방식이 광장시민의 그것과 같아서도 안 되고 같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전업적 정치를 소임으로 하는 이들이 가장 앞에 서서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도정치가 갖는 특수성이 지난 2016년 촛불 때처럼 시민대중의 노고에 올라타는 걸 합리화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만드는 일은 시민과 제도정치의 분업과 협업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그러나 그 때에도 역사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 더불어민주당이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4년 전에 이은 '압승'이다. 연합뉴스 그래픽. 

 

 

 

2. 연합정치의 승리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선거제를 둘러싸고 병립형이냐, 준연동형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과 고민이 있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현행 선거제 유지라는 민주당 결정으로 이번 선거는 준연동형 선거제로 치러졌다. 

무수히 많은 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국회 전원위원회와 500인 국민공론화위원회까지 추진되었지만 결국 근본적인 선거제 개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정치권 선거제 논의는 현행 선거제의 전체 의석수나 지역의석과 비례의석 비율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야기된 위성정당 문제가 여전히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21대 때와 마찬가지로 공공연하게 위성정당 창당 의지를 밝힌 국민의힘은 100%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더불어민주당은 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창당해 선거에 임했다. 

이번 4·10 총선에서는 4년 전에 비해 진화한 총선전술이 모색되었다. 그것은 선거연합이었다. 선거연합형 준 위성정당은 위성정당이 갖는 정치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현 제도의 한계 안에서 극복해보려는 고민의 산물이었다. 연합정신으로 소수당 원내진입을 지원해 최소한의 국회 다양성을 확보하고, 윤석열 심판전선을 확대·강화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비록 녹색정의당이 민주당 주도 선거연합을 거부하고, 조금 늦게 출발한 조국혁신당이 합류하지 못했지만 민주당, 기본소득당, 사민당, 진보당과 시민사회까지 단일 전선을 구축해 연합비례정당과 최대한의 지역구 1:1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만일 병립형이었다면 제도 속성상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 더불어민주연합이나 조국혁신당 같은 비례전문정당 출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지역구에서 1:1 구도가 나오는 걸 막고 훨씬 더 복잡한 선거 양상과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형성된 민주진보세력 간 연대의식도, 연대경험도 설 자리를 잃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불가피하게 발생할 민주진보 진영 내 경쟁관계와 그로 인한 높은 긴장도는 정권심판 대오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진보당이 80곳이 넘는 지역구 출마자를 내려 했던 상황은 적게는 몇 백표에서 1, 2천 표로 당락이 결정된 곳들에서는 선거결과를 뒤집는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 

당대표 조국이라는 인물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이 크게 작동해 형성된 조국혁신당 바람도 정권심판 선거 대오를 넓히는 역할을 하였다. 비례전문정당으로 선거에 임한 조국혁신당 전술은 결과적으로 전체 선거판에서 적절한 역할 분담 효과를 만들어 냈다. 준연동형 선거제가 만들어낸 무형의 연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향후 보다 구체적인 선거결과 분석으로 선거연합전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선거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 논의도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4·10 선거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는 점이며, 선거과정에서 형성된 연합의 경험이 이후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정치상황에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강민정 국회의원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