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사법 시스템을 흔드는 건 검찰이다

道雨 2024. 5. 1. 09:46

사법 시스템을 흔드는 건 검찰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사법 시스템을 흔들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제기한 ‘검찰 술자리 회유’ 의혹을 일축하면서다.

정확히는 이 전 부지사에게 한 말이지만, “공당에서 이 부지사의 진술만 믿고 이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뒷말을 붙여, 민주당을 향한 경고임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총장이 야당을 향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역대 검찰총장들은 혹시라도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휘말릴까 봐 자제했다. 수사를 받고 있는 야당 인사와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는 것 자체가 검찰총장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드물게 ‘대검 중수부 폐지’(송광수)나 ‘검찰총장 징계’ 국면(윤석열) 때 검찰총장이 정치권을 향해 메시지를 냈지만, 그건 집권여당에 한 것이다.

 

 

이 전 부지사의 폭로가 사법 시스템을 흔든다는 주장도 너무 나갔다. 궁지에 몰린 피고인이 자기방어를 위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검찰이 판단해 허무맹랑한 주장이면, 수사팀이나 해당 검찰청이 대응하면 될 일이다.

재판에서 공소사실이 다 인정되면 저절로 수그러들 텐데, 굳이 검찰총장까지 나서야 했을까. 일개 피고인의 의혹 제기에 흔들릴 정도로 ‘약해 빠진’ 검사들도 아니지 않나.

 

 

정작 사법 시스템을 흔들고 있는 건 오히려 검찰이다.

사법 시스템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한 사건을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재판해서 판결한 뒤 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법원이 한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법원의 판결, 그것도 최고 법원인 대법원 판결을 버젓이 무시한다.

 

검찰은 ‘윤석열 대선 후보 검증 보도’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 범위를 벗어난 기자의 휴대전화 정보까지 통째로 저장해온 관행이 들통나 ‘위법 증거수집’이라는 지적을 받고서도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우긴다.

여러 대법 판례에서 수사와 무관한 휴대전화 정보를 폐기하지 않고 대검 서버 ‘디넷’(D-NET)에 저장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는데, “대검 예규에 따라 적법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책임자는 주제넘게 이런 훈계까지 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포렌식도 수사 절차 규정에 따라 엄격히 진행하고 있다. 그 절차를 직접 당해보지 않은 분들이 오해하지 않나 싶다.” “제기되는 원본 문제도 향후 공판에 있을 검증을 위한 절차이지, 보관해서 우리가 다른 사건(별건)에 활용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절대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한마디로 ‘검찰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라는 거다.

‘별건 수사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이 수사 책임자의 말은 얼마 안 가 거짓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4월16일, 검찰이 2018년 한 지방검찰청 직원을 디넷에 저장해놓은 휴대전화 정보를 이용해 ‘별건’으로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를 삭제·폐기하지 않고 디넷에 보관하는 것도 불법이고,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래도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디넷에 보관된 (휴대전화) 전부 이미지는 증거의 무결성, 동일성, 진정성 등 증거능력 입증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간다’는 식이다. 너무 오만하지 않은가.

 

 

검찰의 오만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 아래 두명의 전직 대통령에 이어 대법원장까지 구속한 경험에서 나오는 ‘배짱’이다.

사법농단 수사 당시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검찰청 조사실 철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판사라고 대수냐’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법부의 ‘바닥’을 들여다본 ‘윤석열 사단’의 눈에 대법 판결쯤은 우습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법원이 여러 차례 불법이라고 판결한 것을, ‘우리가 보기엔 적법한데?’라며 무시할 수 있을까.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인 이 나라에서, 검찰은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한다. 검찰은 자기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여준 대통령을 제외하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자신의 ‘보스’에게 비판적인 언론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런 검찰을 3년이나 더 참아야 하나.

 

정말 ‘3년은 너무 길다.’

 

 

 

이춘재ㅣ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