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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어지는 세계 경제, 생존 전략 있나?

道雨 2024. 5. 23. 08:47

거칠어지는 세계 경제, 생존 전략 있나?

 

*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라인야후 사태’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라인야후 계열 한국법인 라인플러스 본사에서 직원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라인 사태는 세계 경제가 세기적 전환에 있음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한 사건이다.

이 변화의 징후는 2018년 2월 미국에서 시작됐다.

 

2월 미국 상무부는 수입산 철강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중국산 수입품을 주로 겨냥했지만, 우리 제품도 대상에 포함됐다.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관세 부과 그 자체가 아니라 부과의 논리였다. 수입산 철강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이 논리였고, 그 법적 근거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였다.

핵 원료인 우라늄도 아닌 범용제품 철강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주저하지 않았다.

 

반세기 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법을 물구나무 세워 무역을 제한하는 데 적용한 것처럼, 개방의 시대는 단절과 공격의 시대로 급변했다. 처음에는 트럼프 개인의 성격 때문에 빚어졌다는 해석이 있었지만, 바이든 시대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경제가 국가 간 대결과 안보 논리에 압도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원인을 보면 ‘지정학 시대’이고, 그 결과를 보면 ‘디커플링 시대’이며, 그 목표를 보면 ‘경제안보 시대’이다.

 

‘경제안보’는 국가 경제의 흐름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들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의 위협이 시발점이 됐고, 코로나 시기의 의료장비와 반도체 부족이 이 논리에 힘을 실었다. 주요 물품의 조달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고, 디지털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며, 자국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엄격히 단속했다. 화웨이 통신장비 퇴출, 틱톡 강제 매각 명령,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전쟁 등,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경제안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

 

 

일본의 라인과 같은 디지털 인프라의 안전한 통제는 ‘경제안보’의 핵심 요소다.

2020년 8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클린 네트워크’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의 디지털 네트워크를 적의 손길에 오염되지 않는 청정구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중국 기업의 통신장비 퇴출만으로는 부족했다. 모든 디지털 장비에서 적성국 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앱스토어에서 적성국 앱을 지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적성국 기업이 접근할 수 있는 클라우드에 미국 시민의 정보를 저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본도 아마 이와 비슷한 것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경제안보’ 전략은 사실 강대국들만이 꿈꿀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물품을 자국 내에서 웬만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정도만 해볼 수 있는 전략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정도나 되어야 할 수 있다. 나머지 나라에서 경제안보는 여전히 생소하다.

경제 대국 일본은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경제안보에 민감한 국가다. 일본은 ‘경제안보’라는 개념을 1970년대 석유 위기를 겪을 때부터 사용했다.

10여년 전 센카쿠열도 분쟁 와중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자, 그 중요성을 다시 절실히 인식했다.

 

기시다 내각은 경제안보를 총괄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경제안전보장추진법’도 제정했다.

일본의 경제안보 전략에는 공급망 보호라는 방어적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한 축으로 소위 ‘경제책략’이라 불리는 공격적 수단도 갖추고 있다. 외교나 다른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 상대국 공격에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도 챙기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우리나라에 반도체 소재 수출을 통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라인 사태가 알려준 것은, 우리나라는 일본의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외교적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언제든 경제책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국의 경제안전 확보는 외교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민감한 전략적 목표가 되었다.

안보 동맹이 곧바로 경제 동맹이 되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이 거친 파도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만 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넓은 해양으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희미해졌던 국경은 다시 칼날같이 선명해지고, 줄어들었던 국가의 기능과 권능은 부활하고 있다.

 

자유무역 질서라는 잔잔한 바다에서 오래 항해했던 우리에게 거친 대양은 익숙하지 않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갈 우리만의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가 여러 분야 전문가의 지혜를 모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