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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도 ‘골든타임’ 있다…북방관리 당장 나서야

道雨 2024. 5. 23. 09:06

외교도 ‘골든타임’ 있다…북방관리 당장 나서야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13일 북-러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미일 가치외교로 북중러 북방외교가 방치된 지 3년째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한러관계가 “우려의 균형”을 통해 잘 관리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복원된다”고 낙관했다. 물론 국제정세의 블록화 등 외생 변수가 없다는 가정이다. 유감스럽게도 역사에 가정은 없다.

 

우선 외생 변수로 꼽는 국제정세다.

이미 블록화는 시작됐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의 단일 패권이 끝났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지-제로’(G-0)시대의 다극 체제로 진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몰고 온 국제질서의 근본적 재편이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가 부상한다. 지난해 남아공 정상회의에서 6개국이 신규 가입했다. 오는 10월 러시아 카잔 정상회의에서 세를 더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북반구의 저위도와 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도 러시아와 중국 주도로 결집하고 있다.

 

 

또 다른 가정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한러관계가 복원된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젤렌스키 정부는 서방의 지원 없이는 불과 몇 개월도 못 버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때문에 서방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러시아군이 승세를 굳혀갔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미국 의회가 608억달러 지원법과 러시아 해외 자산 환수법을 통과시켰다. 우크라이나가 전력을 보강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빼앗긴 동남부 4개 주를 되찾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래저래 전쟁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전쟁 중인 러시아에게 최대의 우군은 북한이다.

러시아가 북한에게 줄 것은 ‘제한적’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해 국정원 발표대로, 러시아가 수입한 북한산 152㎜ 포탄 100만개는 1개당 600달러를 잡아도 약 6억달러다. 미사일과 드론까지 합하면 수십억달러다. 그 돈을 핵미사일 개발에 쓸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전후 복구를 위한 노동자와 전선 투입을 위한 용병 등 20만명 파견설이 회자한다. 용병의 경우, 매년 1인당 3만달러를 벌고 실전을 경험할 수 있다. 한국의 월남전 파병과 동일하다. 러시아로서는 자국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북한 병사로 대체할 수 있다.

게다가 새로 편입된 동남부 4개 주는 북한과 호혜적 경제 파트너다. 북한이 곡물과 중장비 부품과 코크스를 수입하고, 마그네사이트를 수출할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이익도 적지 않다. 단적으로 대북 제재 무력화다.

러시아는 2022년 중국과 함께 유엔사상 처음으로 대북 결의안을 무산시켰고, 지난 3월 유엔 대북 제재의 전문가 패널 연장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국은 비상임이사국인데도 속수무책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4월말 하원 청문회에서 “북러 협력은 매우 우려되고, 최우선 순위로 다룰 사안”임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불과 2년 전까지 남북한 등거리 입장을 취했다. 이젠 그 균형이 깨졌다.

북러 간 밀착은 전적으로 한러 간 적대관계의 반작용이다.

한러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이다.

전쟁 직전까지 러시아 시장에서 1·2위를 차지했던 한국의 자동차·가전제품은 6·7위로 밀렸다. 현대자동차는 공장 매각 후 철수했다.

이젠 교민들까지 불안에 떨고 있다. 지난 1월 백아무개 선교사가 간첩죄로 체포돼 악명높은 연방보안부(FSB) 구치소에 수감됐다. 연해주에 진출한 중견기업 법인장도 체포 후 추방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평통자문회의 지회장(전 한인회장)은 35년간 입국을 금지당했다. 재산은커녕 옷가지 하나 못 챙겼다. 요식업에 종사한 심아무개 사장도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틸 교민은 몇명이나 될까?

 

 

지난해 말 러시아 정부는 ‘비대칭적 보복’을 천명했다. 그런데도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교민 피해가 ‘한러관계와 무관하다’며 외면했다.

백 선교사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체포돼 모스크바로 이송되고 관영언론에 공개할 때까지 몇 번의 협상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재외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그곳에 없었다. 그렇게 협상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폼페이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겸 국무장관은 2018년 북미정상회담을 구실로 평양을 방문해 억류 중인 미국 선교사 3명을 석방시켰다. 왜 한국 정부는 침묵하는가? 재외동포청은 왜 설치했는가?

 

골든타임은 응급환자처럼 외교협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세월이 지나면 한러관계가 자동적으로 복원될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나, 지금이라도 북방 관리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박종수 | 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