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야비한 권력자들의 아레나, 대한민국

道雨 2024. 8. 9. 09:00

야비한 권력자들의 아레나, 대한민국

 

 

 

8일 새벽 올림픽 태권도 58㎏ 결승전에서, 박태준은 부상당한 상대 선수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다가가 살폈고, 승리가 확정되자 기뻐하기 전에 위로부터 건넸다.

신유빈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고도 상대 선수를 먼저 안아줬다. 피 말리는 결승전에서 패한 미국 양궁 선수가 승자 김우진의 손을 번쩍 들어올린 장면도 인상 깊었다. 이런 행동은 경기 규칙에 규정된 게 아니라, 선수의 스포츠맨십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더 품격 있다.

규칙 너머 규칙인 스포츠맨십이야말로 스포츠를 완성한다.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도 다르지 않다.

 

정치인, 언론인, 일반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통신조회한 게 드러나자, 검찰은 “적법한 수사”라고 반박한다. ‘적법’이란 단어를 ‘명문상 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음’으로 해석한다면 맞는 말이다(단,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보해줘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부분은 불법 여지가 커 보인다).

통신조회는 법에서 허용한 수사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너무도 잘 아는 윤석열 대통령은 왜 후보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조회에 대해 “미친 사람들”, “게슈타포나 할 일”이라며 흥분했을까.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형사사법절차는 ‘비례성’이라는 대원칙이 지배한다. 수사로 달성하려는 공익적 가치와 수사로 침해되는 시민의 권리를 저울에 올렸을 때 최소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번 통신조회는 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가 목적인데, 이것이 시민 수천명의 통신조회를 정당화할 만한 사안이라고 여길 사람이 윤 대통령 말고 몇이나 되겠나. 아니, 윤 대통령조차도 자신의 과거 발언을 기억한다면 차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검찰이 형식적으로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핑계로 이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대안은 통신조회를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을 명문화하는 것뿐이다.

 

 

규칙 너머 규칙을 위반한 더 극명한 사례는 김건희 여사 ‘황제조사’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제반 규정에 따라 진행한 것”이라고 했다. 조사 방식, 시기, 장소 등은 검찰의 재량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너무도 잘 아는 이원석 검찰총장이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사과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공정성’이라는 형사사법절차의 대원칙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특혜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이런 식의 수사를 규정을 따랐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려 한다면, 대안은 초등학생 지도하듯 비공개 출장조사를 하지 말라거나, 검사가 휴대전화를 뺏긴 채 조사해서는 안 된다는 따위의 규정을 일일이 명문화하는 것이다.

 

법은 ‘이렇게 하라’는 의무와 ‘이런 건 하지 말라’는 금지를 규정하지만, 그 사이에는 규정되지 않는 무한대의 여백이 남기 마련이다. 재량의 영역이다. 그러나 마냥 회색의 지대는 아니다. 공정성·비례성 같은 더 큰 원칙들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원칙을 내던지고 회색 지대의 허점을 틈타 잇속을 챙기는 건 모사꾼들이 하는 짓이다. 그런데 국가기관마저 그런 행태를 대수롭지 않게 따라 하는 게 현 정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법상 방송통신위원회는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2명은 야당이 추천한다.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방통위는 대통령이 임명한 2명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법은 의결정족수를 ‘출석’위원이 아닌 ‘재적’위원 과반수로 정하고 있다. 소수의 독단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재적위원을 아예 2명으로 줄여놓고 독단적 운영을 ‘법에 맞춰’ 하고 있다. 의결정족수를 숫자로 못박지 않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꼼수를 막도록 의결정족수를 4명으로 명시한 방통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해 역대 가장 많은 1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헌법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사유를 명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입법부·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가 이 여백을 지배한다. 입법부가 명백히 부당한 법률을 제정하려는 경우에만 거부권을 사용해야 한다.

특히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죄지었으니까 특검 거부하는 것”이라던 자신의 말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은 거부할 명분이 전혀 없었다.

헌법에 제한 사유가 없으니 내키는 대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만큼, 천박하고 반민주적인 사고도 없다. 헌법에 ‘대통령 부인 특검법은 거부권의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라도 넣어야 한단 말인가.

 

법의 회색 지대에 숨어, 법의 본령인 민주주의와 정의, 인권을 유린하는 야비한 권력의 아레나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박용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