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망조 든 국가의 이상한 세금

道雨 2024. 8. 13. 14:12

망조 든 국가의 이상한 세금

 

 

 

국가에 망조가 들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미심쩍은 사고로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삶을 나라에 빼앗긴 청년과 관련된 특검을 반대한다.

 

올해 반년 사이에 임금체불액은 1조원이 넘고, 피해자도 15만명에 달했으며, 대출 연체율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는데도,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을 반대하며,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에도 반대한다.

경기 부진, 기업과 초부자에 대한 줄기찬 감세로, 지난해 국가 채무가 1천조원이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들이 유일하게 하는 듯한 일은 어떤 논리적 근거도 찾기 어려운 부유층 감세이다.

 

우리 상속세율이 과연 높은가?

독일의 최고세율은 우리와 같은 50%이다. 미국은 40%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이 37%로, 적어도 소득세보다는 상속세가 더 높다.

상속의 본질은 로또와 큰 차이가 없다.

노동 없이 운 좋게 물려받은 자산에 ,노동으로 얻은 근로소득 최고세율 45%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상속세율 한도를 40%로 낮추고 싶으면 근로소득도 더 많이 공제하고, 세율도 상속세보다 낮춰라.

그런데 그러면 대통령 내외가 해외 순방이나 휴가 때 쓸 세금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상속세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나는 한번도 주식을 사고판 적이 없지만, 아버지는 고도성장기에 우량주에 장기간 투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배당금과 수익이 일종의 무노동 소득이 아닌가 물었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 답했다. 게으른 나는 금융소득도 노동을 통해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이 노동이 다른 노동보다 더 가치가 높을 이유는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키운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이지 세금이 아니다. 자본이득세 면제 국가는 드물며, 그마저 장기보유 시 면제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투자자산을 1년 이하로 보유하는 경우 일반 소득세와 동일한 세율로 과세하고, 1년 이상 보유할 경우에는 그보다 낮은 세율로 과세한다.

 

금투세는 폐지해서는 안 된다. 유예도, 현재의 엉성한 관련 제도를 더 치밀하게 바꾸고, 적어도 선진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세율을 조정한다는 전제하에 실시되어야 한다.

 

 

대처, 레이건, 트럼프는 그나마 일관성 있게 근로소득세를 포함한 모든 세금을 낮추려 했지만, 윤석열 정권은 기업과 초부자에게만 도움이 되는 세금만 낮추고 있다.

이 정권은 국가를 국가로서 존립하게 하는 근간이, 이미 초국적화된 기업이 아닌 노동, 초부자가 아닌 군대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는 채 해병 같은 일반 국민이라는 점을 종종 잊는 듯하다. 인공지능, 자동화, 로봇, 빅테크, 이커머스로 일자리가 위협받고, 독점적 수수료가 만연하며, 가상의 공간에서 돈이 사라져버리는데, 너무나 뒤처지고 무능한 국가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지금은 극소수 부유층에 감세할 때가 아니라, 극단적인 부와 소득의 양극화에 맞추어, 조세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항변은, 소득은 없고 ‘똘똘한’ 집 한채가 있을 뿐인데, 그 집값이 올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해된다. 하지만 똘똘한 집 한채에 더해, 엄청난 근로소득과 금융소득을 올리는 가구까지 감세할 필요가 있을까?

 

이 문제는 종합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등으로 종류별로 과세하는 기존 방식에 연연하지 말고, 소득과 부동산, 금융투자, 필요하다면 소비까지 모두 연계한 복합세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는 높은 소득, 특히 금융소득이 부동산과 같은 부로 전환되며, 자본이 다시 고소득으로 이어지는 추세가 점점 더 강화되는, 그래서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 맞는 가장 합리적인 조세 방식이다.

플라톤의 말처럼,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