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 정치 보는 미국의 세가지 시각

道雨 2025. 1. 20. 10:16

한국 정치 보는 미국의 세가지 시각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달링’이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협력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연합에서 가장 충실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명분 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위협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의 행보와 그에 따른 한국 정치의 위기 국면을 보는 미국 내 시각은 크게 세가지로 갈린다.

 

바이든 행정부를 필두로 한 자유 국제주의자들은, 거의 배신당한 느낌으로 윤 대통령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계엄선포가 미제로 끝나자마자, 윤석열 정부의 후견인 역할을 해오던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이 가장 먼저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연이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이 철회되고, 예정됐던 핵협의그룹(NCG) 회의 관련 도상 연습도 연기되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충격적이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이임한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 대사도 “계엄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불행한 사건”이지만,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한국의 민주적 절차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했다.

 

미 의회 쪽에서도 비판적 기류가 강하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결의안을 주도했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과 앤디 김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비상계엄이 민주주의와 법치, 더 나아서는 한-미 동맹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도덕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 주류사회는 계엄 조치에 비판적이면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 인사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한달이 넘고, 윤 대통령이 탄핵의 벼랑에 서 있는데도, 일절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 성향으로 보아 예측 가능한 현상이다. 그는 가치보다 국익을 우선시하며, 다른 나라에 대한 불필요한 내정간섭을 반대한다.

지난 12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을 때도 “우리 싸움이 아니다. 미국은 개입해선 안 된다”고, 곧바로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는 또한 트럼프 2.0 외교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푸틴, 시진핑, 김정은 등 강력한 지도자와의 ‘딜’을 선호한다. 정치적 미래가 불투명한 윤석열 같은 지도자에게 관심을 쓸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맷 슐랩 미국 보수주의연합(ACU) 의장이 지난달 14일 직무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을 극비 회동했고, 2016년 대선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가 최근 비공개 방한해 홍준표 대구시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일부 여권 인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로 보아 이들의 행보는 유의미하게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자신만이 대한국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상계엄을 지지하고 탄핵 세력을 적대시하는 시각도 있다. 냉전 반공주의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미국의 극우보수 세력이다. 최근 미 하원 아태 소위원장으로 선출된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이 대표적이다.

영 김은 지난 1월6일 ‘더 힐’에 실은 기고문에서 “탄핵 주도 세력은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 중국에 대한 순응을 선호하고, 이는 한반도 안정과 지역 전체에 큰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며, 이들은 인도·태평양 안보에 사활적인 한-미 동맹과 한·미·일 3자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고자 노력해왔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대표적 인사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도, 중국 개입론을 흘리면서 우려를 표한다. 시위와 정치 불안으로 윤 대통령이 퇴진하게 되면, 중국이 한-미 동맹을 훼손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극우보수들이 주장하는 ‘종북주의자 척결’에도 공감한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비상계엄 조치에 비판적이고, 한국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정치의 윤곽이 잡히고 차기 지도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냉전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극우 세력이다. 이들이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같은 극우 세력과 초국가적 연대를 구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한국 정치에 부적절하게 개입한다면, 한-미 관계는 전대미문의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