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서부지법 폭동 '2030남성 우파', 누가 키웠나

道雨 2025. 1. 20. 10:34

서부지법 폭동 '2030남성 우파', 누가 키웠나

 

온라인 커뮤니티로 결집해 유튜브로 확산, 혐오 카르텔 형성...핵심은 '돈과 소외'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3시경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되자,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했다. 이들은 진입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하고 건물 외벽 및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 출입문, 각종 집기 등을 부쉈다. ⓒ 락TV 화면

 

 

 

지난 2021년 초 미국의 수도 워싱턴 한복판에서 벌어진 극우파의 폭동을 우리나라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소가 미국에선 국회의사당이었고, 우리는 법원이었다는 게 달랐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된 순간, 서울서부지방법원 안팎은 무법천지로 변했다.

윤 대통령의 구속을 반대하는 시위대는, 구속을 결정한 판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살해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고, 건물의 유리창을 깨고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긴급 투입된 경찰에 의해 백여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극우파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STOP THE STEAL'과 'CHINA OUT', 그리고 '이재명 구속'. 그들의 주장은 이 세 가지로 압축됐다. 윤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의 중대성을 따지는 형사 법정 앞에서조차 탄핵소추가 원천 무효라며 부르대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법치주의가 조리돌림당하는 형국이다.

물론, 이번 폭동의 가장 큰 책임은, 체포 직전 지지 세력을 향해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주먹 불끈 쥔 윤 대통령에게 있다. 끊임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중국 혐오를 부추긴 극우 유튜버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적잖은 국민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범죄자 이재명'도 기실 그들의 '공'이 크다.

지난 '12.3 내란 사태' 당시 국회 안팎의 상황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았듯이,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 역시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집회나 시위 때마다 그 어떤 깃발보다 먼저 치켜드는 게 스마트폰이다. 누구는 '민주주의를 짓밟은 폭력'으로, 또 누구는 '자유 대한민국을 위한 성전'으로 여기며 기록했을 것이다.

'일베'에서 '펨코'로 옮겨간 그들

'윤석열 구속'에 지지자들 폭동 흔적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부지법 외곽에서 바라 본 폭동 흔적. ⓒ 남소연관련사진보기

 

 


실시간으로 아수라장의 현장을 생중계한 화면에서 가장 눈에 띈 이들이 있었다. 기껏해야 20~30대로 보이는 남성 유튜버들이, 마치 불법을 채증하는 경찰인 양 시위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이들 중에도 청년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

나만의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튿날 몇몇 언론에서 탄핵 반대 시위에 '2030 남성 청년 우파'들이 결집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응원봉을 든 'MZ 세대'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는 탄핵 찬성 시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갈라치기 수법에 호응하는 기사처럼 읽혀 뒷맛이 개운찮지만, 인터뷰에 나선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의 분석은 주목할 만하다. '2030 남성 청년 우파'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결집하고, 유튜브 채널을 활용해 세력을 키웠다. 과거 맹위를 떨치던 '일베'에서 반페미니즘을 표방한 '펨코'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 27년 동안 남자 고등학생들과만 어울려 생활한 현직 교사로서, 전문가들의 분석에 한두 마디 덧붙이고 싶다. 우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부터 언급하고 가자.

단언컨대, '2030 남성 청년 우파'가 탄핵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을 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집회 현장에서 목청껏 구호를 외칠지언정, 정작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 별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을 꼽으라면 전가의 보도처럼 박정희와 전두환을 대지만, 정작 그들의 공과에 대해선 무지할 정도로 관심이 없다. 흔히 전두환을 찬양하는 의미로 해석하는 일베 용어 '전땅크'도, 그의 '마초적인' 통치 스타일에 대한 흥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른바 '이재명 포비아'는 여당과 일부 야당 정치인들로부터 발원되어, 보수 언론의 집요한 필터링을 거쳐, 애먼 '2030 남성 청년 우파'에게까지 전파된 집단적 공포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저 항소심 판결을 차분히 기다리면 될 일이다.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건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재명 포비아'에 대한 반사이익일지언정, 그들은 딱히 윤 대통령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임기 중 윤 대통령이 실행한 정책이 뭔지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찰총장을 역임했다는 걸 대표적인 업적으로 내세우는 황당한 이들마저 있다.

윤 대통령은 그들에게 주인공이 아니다

서부지법 담벼락에 붙어 있는 '좌파 판사 카르텔 척결'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부지법 담벼락에 붙어 있는 피켓. '좌파 판사 카르텔 척결'이라고 적은 문구가 보인다. ⓒ 남소연관련사진보기

 

 


'2030 남성 청년 우파'의 뜬금없는 탄핵 반대 주장을 해석하는 핵심 키워드는 소외. 세대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특히 젊은 극우 유튜버들에겐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곳은 한몫 챙길 수 있는 '삶의 현장'이다. 양극단으로 찬반이 갈리는 곳일수록 더 큰 수익을 보장한다.

구독자 수와 조회 수에 목매단 그들에게, 진실 여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따위는 신경 쓸 개재가 아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후원금이 늘어난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전쟁터의 종군 기자처럼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생중계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12.3 내란 사태'에서 비롯된 탄핵 정국은 그들에게 '영양 만점의 먹잇감'일 뿐이다. 찬반 갈등이 격화되고 오랫동안 지속될수록 그들의 수익은 올라간다. 그들에게 집회와 시위는 '사업'이며, 구호는 '마케팅 수단'이다.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는데도 'CHINA OUT'을 그치지 않는 건, 그만한 '화수분'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은 우리 사회 어르신들의 뿌리 깊은 반공 의식을 자극하는 데 더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수교 전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중공'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불리고, 멸공이라는 구호까지 외치는 현실이다. 'CHINA OUT'이라는 카피는 극우 유튜버들에게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백골단? '반공청년단'으로 불러달라"  최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반대하는 한남동 관저 앞 집회에 참여해 '백골단'으로 회자된 단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의 소개로 이들은 이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 수 있었다. ⓒ 남소연관련사진보기

 

 


이 와중에 등장한 백골단은 그들의 손에 꽃놀이패를 쥐여 주었다. 백골단의 부활이 의미하는 우리 사회의 퇴행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와 조회 수를 늘리는 데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할 뿐이다.

백골단이 국회에서 공공연히 기자회견을 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 퇴행의 징후적 현상이다. 다만, 주목해야 할 건 그들을 소개하는 여당 의원 뒤에 흰색 헬멧과 마스크 차림으로 얼굴을 가린 채 병풍처럼 선 백골단원의 초라한 행색이다. 슬프게도 난 그들에게서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봤다.

그들은 과연 우리 사회에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다고 믿는 걸까. 정녕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만 하면, 그들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 대한민국이 오리라 확신하는 걸까.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공감보다 경쟁이, 희망보다 절망이 익숙한 세대에게, 맹목적 혐오는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어 기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2030 남성 청년 우파'들이 탄핵 반대 시위에 대거 참여하게 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그들은 'MZ 세대' 여성들 대다수가 페미니즘에 '오염'됐다고 간주한다. 여성주의로 납작하게 번역되는 페미니즘을, 그들은 여성우월주의나 남성 혐오로 받아들인다.

곧, 'MZ 세대' 여성들이 주도하는 탄핵 찬성 집회는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있으니, 그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여긴 거다. 탄핵 반대 집회가 기회가 됐고, 반공과 반중 정서까지 뒤섞이면서 공고한 '혐오 카르텔'이 형성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들에게 주인공이 아니다.

다들 우리 사회가 노인 세대를 박대하고 있다며 한탄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근래 2025년 대한민국 청년들만큼 불행하고 절망적인 세대가 없다. 학창 시절 무한경쟁을 견디며 사회에 나왔지만, 정부와 기업의 방임 속에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동댕이쳐진 초식 동물 신세다.

삶에 지친 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곳이 극우 유튜브였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준 곳이 극우 집회였으며, 심지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기자회견장에까지 초대받았다. 그들의 퇴행적 역사 인식과 맹목적 혐오를 나무라기 전에, 소외된 청년 세대의 신산한 삶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진정 분노해야 할 대상은, 그들의 피폐한 정서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악질 정치인들이다. 그 중심에 불과 2년 반 만에 우리 사회를 두 쪽 낸 윤 대통령이 있다.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2030 남성 청년 우파'와 'MZ 세대' 여성들의 극단적 갈등을 성찰하고 대책이 마련될 때라야 비로소 수습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