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트럼프의 공화당, 윤석열의 국민의힘

道雨 2025. 3. 20. 09:50

트럼프의 공화당, 윤석열의 국민의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지고 있지만, 곧 인용 판결이 날 것을 의심치 않는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12·3 내란’ 이후 우리 민주정이 가야 할 길에 겨우 한고비를 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내란이 남긴 여러 후과와 오랜 기간 대면하며 살아가야 한다.

 

내란은 헌법과 법치에 대한 우리 정치공동체의 합의된 신뢰에 균열을 냈고, 적법 절차에 따라 작동할 것이라고 믿었던 검찰·경찰·군대·정보기관 등 국가기관에 대한 각종 의혹을 쌓아놓았으며,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이나 정치 갈등의 비폭력 해결 원칙 등 민주정의 기본원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가장 심각한 후과는, 이번 사태 이후 헌법과 민주정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변모해버린 ‘국민의힘’이라는 정당과 그 지지층이다.

국민의힘은 당장 탄핵 이후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것이고, 2026년 지방선거, 2028년 국회의원 선거에도 후보를 낼 것이다. 그 당의 선출 공직 후보자와 당원들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절연하고, 민주헌정 체제를 인정하면서, 선거 경쟁을 벌여나갈 수 있을까?

탄핵 이후 들어설 새 정부의 노선과 입장에 대해, 헌법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면서, 정치폭력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을까?

다음 정부 5년 내도록 ‘12·3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 재판이 이어질 텐데, 현행 헌법과 법률의 제도적 절차를 존중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이후 미국 공화당을 보면,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월6일 아침,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부정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훔친 조 바이든의 당선 공식 인정 절차를 가로막으라’고 선동했고, 이들의 폭동이 시작되었을 때 주방위군 파견 요청 승인을 세시간 넘게 거부하면서 폭동을 도왔다.

 

트럼프가 연방의회에 난입한 폭동에 대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이라고 옹호했을 때, 그 당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옹호하거나 묵인했다.

미국 하원이 국회의사당 폭동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적법한 행동을 한 일반 시민’을 탄압하는 처사라고 주장하며 반대했으며, 연방하원이 폭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 트럼프를 탄핵하려고 했을 때 찬성했던 그 당 의원은 10명에 불과했다.

 

이후 공화당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했던 트럼프를, ‘우리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십자군’이라고 비판했던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은 수백건의 살해 협박을 받았고, 소속 주 공화당에서 축출당했다.

트럼프에 반대했던 의원들은 모두 다음 선거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그 자리를 트럼프 지지자들이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바이든 정부 내내 연방의회 폭동으로 1500여명이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공화당 지도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의원은 ‘2024년에 트럼프가 다시 출마한다면 지지하겠다’고 공표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 여념이 없었다.

패배한 전직 대통령 트럼프는 패배 이후 공화당을 사실상 지배했고, 4년 뒤 공화당을 상원과 하원 다수당으로 만들면서, 자신도 현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윤석열의 국민의힘이 트럼프의 공화당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2009년 티파티 운동에서부터 노골화된, 백인우월주의라는 뿌리 깊은 인종 갈등을 중요한 지지기반으로 두고 있는 반면, 윤석열은 뚜렷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는 엄청난 재력과 인재풀로 공화당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윤석열은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인적·물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대통령 단임제인 한국에서 윤석열은 후계를 세울 수 있을 뿐이다.

 

트럼프는 운 좋게 바이든 정부 시기 약한 민주당과 경쟁할 수 있었지만,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그런 행운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트럼프와 달리, 계엄군과 온몸으로 맞서며 민주정을 지켜나갈 용기를 가진 다수 시민과 대면해야 한다.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공화당은 윤석열 이후 국민의힘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지지자를 반체제 극우로 이끄는 것은 정치인들이지만, 이미 반체제 극단주의로 경도된 지지층을 정치인들이 되돌려놓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이후 누가 국민의힘 지지층을 민주주의자의 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