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김문수와 피로스의 승리, 그리고 이재명

道雨 2025. 5. 16. 10:23

김문수와 피로스의 승리, 그리고 이재명

 

 

 

 

 

 

기원전 2~4세기 고대 그리스의 소왕국에 에피루스가 있었다. 그 국왕 피로스가 기원전 280년 헤라클레아 전투와 이듬해 아스쿨룸 전투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싸워 승리했다. 그러나 승리는 승리인데, 그동안 자신의 군사 대부분을 잃어 결국 전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너무나 큰 희생을 대가로 얻은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 한다. 승리는 승리지만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 요컨대, 별 실속 없는 승리가 피로스의 승리다.

 

굳이 2300년 전 이야기를 지금 꺼낸 까닭은, 최근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 경선 때문이다. 이미 ‘내란당’으로 확인된 국민의힘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자존감 상하는 일이긴 하나, 다른 편으로 이 유치찬란한 ‘개그 정치’ 문화를 시급히 극복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절박감도 든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내란 세력 전반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즉,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을 하나도 지지 않으려는) ‘힘’의 상징인 한덕수, 그는 수십억원이 들어간 국민의힘 내부 경선 과정엔 불참했다.

한편, 안철수·홍준표·한동훈 등과 치열한 경선 끝에 승리를 한 뒤, 지난 3일 국민의힘 공식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는, 자신이 이재명과 제대로 싸울 적통임을 자임했다.

그러나 김문수의 승리는 ‘부전승’으로 올라가 기다리던 한덕수에게는 지워야 할 얼룩에 불과했다. 윤석열과 쌍권(권성동, 권영세)을 등에 업은 한덕수는, ‘후보 단일화 협상’이란 미명 아래 김문수의 굴복을 강요하고 압박했다.

 

 

그런데 김문수가 어떤 사람인가?

(최근엔 “삼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직의 책무”라 할 정도로 180도 전향했지만) 한때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노동운동가, 사회변혁가(?)였다. 가혹한 군사 독재와 고문까지 경험한 투사였다!

그런 그가, 막대한 후광 덕에 부전승으로 최종 후보를 자처하는 한덕수에게 순순히 굴복한다는 건 어불성설! 목숨과 바꾸자 해도 거부할 정도의 결기였다.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새벽, ‘경선 쿠데타’까지 벌였다. 많은 돈과 시간, 열정이 들어간 당 내부 경선에서 공적으로 선출된 김문수를 제거하려던 쿠데타!

실제로, 당 지도부(권성동, 권영세)가 ‘대통령 후보자’로 등록하려면 새벽 3시부터 4시까지만 관련 서류 32종을 제출하라고 공고했다. 그 시각에 맞춰 한덕수만 서류 제출에 성공했다.

누가 봐도 ‘짜고 친 고스톱’ 내지 ‘정치적 통정매매’!

 

이에 당일 아침부터 김문수는 반발했고, 법원에 가처분 소송까지 냈다. 김문수를 뽑은 국민의힘 당원들의 반발 역시 매우 거셌다. 마침내 국민의힘 전 당원 에이알에스(ARS) 투표(오전 10시~밤 9시에 대통령 후보를 한덕수 후보로 ‘변경 지명’하는 것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김문수가 승리함으로써, 하루 만에 지옥과 천당을 모두 겪은 뒤 ‘부활’했다. 한덕수는 대선 출마 선언 8일 만에 ‘별의 꿈’을 접었다.

김문수의 부활과 승리, 그러나 과연 이게 진짜 승리일까?

 

 

바로 여기서 나는 고대 그리스의 피로스 왕이 승리한 뒤, 승리를 축하하는 이들에게 “이와 같은 승리가 한번 더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패망할 것”이라 했음을 상기한다.

이런 식의 게임은 진정한 성취감을 무효로 만들거나 장기적인 조직 발전에도 해를 끼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윤석열은 지난 11일, ‘국민께 드리는 호소’에서 “이번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은 격렬한 논쟁과 진통이 있었지만, 여전히 건강함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과연 그가 말한 ‘건강’이란 무엇인가?

그는 또 “우리의 싸움은 내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협하는 외부의 전체주의적 도전에 맞서는 싸움”이라 했다.

도대체 내란 수괴가 이런 말을 할 ‘자유’가 있는지 의문이지만, 여태 김문수 제거에 힘쓰던 자가 이렇게 말하다니 가증스럽다.

 

 

이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의 부활을 ‘피로스의 승리’라 한다면, 이 승리는 무엇을 대가로 했을까?

 

첫째, 이제 국민의힘은 12·3 내란의 밤 이후 ‘내란당’ 의혹을 받았는데, 이번 ‘경선 쿠데타’를 계기로 조직적 응집력을 상실, 사분오열과 자멸의 길을 걷는다. 김상욱 의원의 국민의힘 탈당과 홍준표의 탈당, 은퇴 선언은 그 상징이다.

 

둘째, 국민의힘은 자체 경선을 통해 선출한 후보를 자기부정함으로써, 77만 책임당원은 물론 400만 지지자, 나아가 4400만 전체 유권자로부터 정치적 신뢰성을 더 잃었다.

 

셋째, 승자 김문수는 “빅텐트를 세워 반이재명 전선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윤석열도 “자유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킬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 그 생사의 기로”라 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흑백논리와 권력 욕망에 사로잡혀, 철학적 정당성도 해체했다.

 

 

한편, 나는 좀 다른 차원에서 6월3일 대선 자체가, 그 누가 승리하건 ‘피로스의 승리’가 될까 봐 두렵다. 그 까닭은?

 

첫째, 국민의힘이 계엄 쿠데타, 사법 쿠데타에 이어 경선 쿠데타까지 감행함으로써 온 사회를 퇴행시키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게 했다. 당분간 뒤틀린 사회를 바로잡는 데 진력해야 한다. 민주·진보를 위한 에너지의 고갈 위기다.

 

둘째, 이재명의 민주당이 ‘중도 보수’ 내지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해, 스스로 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선거 연합 외에 정의당(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이나 시민들과의 유기적 연대가 없으면 최종 승리가 힘들다.

 

셋째, 현재 직면한 경제위기, 노동소외, 사회차별, 기후위기 등 다차원의 모순 뒤엔 자본이 있다. 따라서 ‘탈(脫) 자본, 진(進) 생명’의 생태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으면 또 원점 회귀다. 기존 민주당 정부들이 보인 한계와 모순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피로스의 승리’ 반대편에 부단히 충원되던 왕성한 로마군이 존재했던 것과 달리, 민주당의 ‘곁’엔 특히 ‘2030 여성들’로 상징되는, 젊고 활기찬 민주시민들이 왕성하다.

온갖 장애물이나 위험(암살, 북풍, 조작 가능성)에도 불구, 남녀노소, 농민, 노동자, 학생, 시민 간 소통과 연대(예, ‘민주시민회의’)만이 새 세상의 희망이다.

선거는 그 과정의 일부다!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