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김유신과 천관녀, 그리고 천관사터

道雨 2007. 12. 14. 18:12

 

 

 

 

       김유신과 천관녀,

              그리고 재매정과 천관사터

 

 

 

 

한 천년 그저 그대만 그리며 살라하네

[오마이뉴스 권미강 기자]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 번 오작교를 통해 만나는 사랑의 날 칠석을 맞아 천관녀와 김유신 장군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풀어주는 행사가 천관제다. 사진은 정화수와 등불로 감싸여진 초석에 신방처럼 꾸민 흰 가마
ⓒ2005 권미강
통일대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이 사랑했던 여인 천관녀. 하지만 나라를 위해 큰 뜻을 품은 김유신에게 그녀는 잊을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다.

잠든 자신을 등에 태우고 천관녀의 집에 간 애마의 목까지 자른 김유신 장군의 혹독하면서도 냉엄한 결단력이야 높이 사야 되겠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철저하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천관녀의 맘은 어떠했을까?

▲ 재매정 입구에 두 영혼이 들어올 수 있도록 촛불을 밝혀놓았다.
ⓒ2005 권미강
결국 천관녀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고 그녀가 죽은 후에 김유신장군은 천관사를 지어 그녀의 영혼을 위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만 아무튼 천관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가슴 아린 일이다. 이런 천관녀의 애달픈 사랑을 위로하고 김유신 장군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루만이라도 풀어주는 행사가 천관제다.

경주문화축제위원회(회장 백홍수)가 주최하고 신라문화학교(대표 이홍렬)가 주관해 매년 음력 칠월 칠일에 열고 있는 천관제는 견우직녀가 일년에 한 번 오작교를 통해 만나는 칠석날 밤에 이루어진다.

▲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 다섯 가지 색깔의 흙과 물감을 준비하고 있다. 야선 박정희씨가 하늘을 먼저 그리고 참가자들이 각자가 생각한 새를 그려 넣었다.
ⓒ2005 권미강
올해 천관제도 어김없이 칠석날이던 지난 8월 11일 김유신 장군 생가 연못인 재매정에서 열렸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영혼을 위해 재매정 앞에 수백 개의 촛불로 길을 밝히고 천관녀의 혼백을 천관사지에서 흰가마로 모셔오면서 시작된 천관제에서는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천관사지에서 재매정으로 천관녀의 혼백을 모셔오는 길에서 한 마리의 메뚜기가 가마 위로 날아든 것.

▲ 천관사지에서 천관녀의 혼백을 모시고 재매정으로 들어오는 경주문화축제위원회 회원들
ⓒ2005 권미강
그리곤 조금 있다가 또 다른 메뚜기 한 마리가 가마 위로 날아와 조금 전 날아와 앉은 메뚜기와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가마꾼들은 혹시라도 두 메뚜기가 날라갈까봐 조심스럽게 신방으로 꾸민 초석 위에 가마를 옮겼는데 가마 위의 메뚜기는 '혹시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사람들의 걱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짝��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여인이 이별의 한을 달래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듯 꼭 부둥켜 안고 있는 것 같았다.

▲ 혼백을 모시고 오는 길목에서 날아든 두 메뚜기가 짝짓기를 하고 있는 모습. 마치 두 혼백의 사랑나누기 같아 신기했다.
ⓒ2005 권미강
참석자들은 그 신기한 광경에 놀랐고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혼이 메뚜기로 분하여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정화수와 은은한 등불로 감싸여진 가마 안에는 두 혼백처럼 청색과 홍색의 작은 보자기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혼의 사랑나누기가 진행되는 동안 오작교를 만들기 위한 퍼포먼스가 열렸다. 흰색 천에 다섯 색깔의 흙으로 하늘과 땅을 그리고 그 위에 참가자들이 새를 그려 두 영혼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도록 새의 다리를 그려 넣었다.

▲ 하늘을 떠돌던 영혼의 새가 앉을 수 있도록 가베를 틀고 솟대를 세웠다. 사진은 가베를 틀고 있는 참가자들
ⓒ2005 권미강
그리고는 하늘을 떠돌던 영혼의 새가 앉을 수 있도록 참가자들이 직접 가베를 틀어(오방색 천으로 솟대의 기둥을 감싸는 것) 만든 가베솟대를 세웠다. 이렇게 해서 두 영혼이 만났음을 알리고 칠석제물을 진설한 후에 헌다와 헌악, 헌시를 올리고 참가자들이 함께 둘러 앉아 떡과 막걸리 등 음식으로 음복을 했는데 이것이 피로연 쯤 되는 것 같았다.

▲ 두 영혼에게 차를 올리고 있는 모습.
ⓒ2005 권미강
늦은 밤까지 계속된 피로연은 하나 둘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정리가 됐다. 하지만 흰가마 위에는 여전히 메뚜기 한쌍이 떨어질 줄 모르고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 제가 끝난 후 두 영혼의 만남을 축하하는 피로연이 열렸다. 떡과 막걸리, 흥겨운 입담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2005 권미강
 
 
 
 
 
       천년을 넘어 그대를 기다리리니

               그대 내게 천년을 살라하네

               즈믄의 새벽 두 번째 맞이한 오늘에도

               또 한 천년 그저 그대만 그리며 살라하네

               천관! 천관 !

               애마의 말머리 베어내고 돌아서며

               속으로 토해냈을 그리움

               내 가슴으로 애끓게 느껴졌으니

               그대 기다림이야

               두 천년을 지낸들 무슨 불만이 있겠냐마는

               통일 대업 이룬 그대의 당당한 얼굴

              아니, 단석의 혈기 서린 굳은 손

              아니, 풍진 세상에도 흔들림 없는 다리

              아니, 구름의 장난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그대의 그림자 한번만이라도 더 볼 수만 있다면…

              하여

              견우직녀 만나는 오작교에 그리움의 넋 실네

              천관! 천관!

              남의 입이 부를 때는 목석이 된 내 이름.

              그대 매정하게 돌아서 가던 길

              흔적마다 민들레로 피어나

              채이고 밟히길 기원하던

              그때의 그 심정으로

              오늘 여기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그대의 집

              차라리 재매정 우물물이 되어

              그대의 몸에 스며들 수 있기를 고대하리니

              천년의 꽃 우담바라 되어

              재매정 어귀에 무장무장 피오리니

              천관! 천관!

              그대도 나를 부르며

              칠월칠석 오작교 타고

              내게 오소서.

              천년인들 만년인들

              그대를 기다리리니….

                                                    - 필자의 자작 헌시

                                                                           /권미강 기자
 
 
 
 
 
 
                        봄이 오는 천관사지
 
글쓴이 : 맑은우물
 
 

김유신과 천관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이 전해 오는 천관사지에도 봄이 왔다.

지금은 군데 군데 비닐 하우스와 파밭으로 변한 이곳으로 가는 길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토끼풀 꽃이 밭고랑에 가득히 피어 있다.

 

 

파를 나란히 심어 놓은 밭둑길을 따라가면 천관사지이다.

 

 

 


 

지금은 절터의 흔적도 분명치 않은 이곳에 석재가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탑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이곳에 남은 석재의 모양으로 보아  소형의 석탑이 있었던 듯하다.

 

 

 


 

석등의 받침석이었을까? 마모가 너무 심하여 분명한 것을 알 수가 없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은 김유신이 이십 이전의 젊은 날의 이야기이므로

아마 진평왕대일 것이다.

그 시기에 신라에는 유녀가 있었고 유곽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절의 건립은 아마도 선덕여왕 이후의 일일 것이다. 

 

 

 


 

남아 있는 석탑의 몸돌로 보아 대체로 신라 후기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석탑이 서기 시작하던 문무왕이나 경덕왕대까지는 주로 대형의 탑이 나타난다.

 

 

 


 

원성왕이 왕위에 오를 때 천관사지 우물에 사각의 관을 쓰고 들어 가는 꿈을 꾸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이 탑의 건립은 그 이후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이석재가 과연 우물 뚜껑인지 아니면

또다른 소형의 팔각 석탑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가운데 구멍으로 보아 석탑의 부재일 가능성이 높다.

 

 




두 기의 석탑 앞쪽으로 보이는 밭이 아마도 금당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산은 도당산으로 김유신과 그의 칠성우가 정사를 논하던 곳이다.

그곳의 정사암에서 알천 장군은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 휘둘러 용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권력의 중심은 그 보다 젊었던 김춘추와 김유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