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지아비의 마음

道雨 2008. 1. 26. 12:39

 

 

 

지아비의 마음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


  이원수(李元秀)라고 합니다. 옛? 잘 모르시겠다고요. 내 참. 제가 스스로 대학자 율곡(栗谷)의 아비이며, 현모양처의 귀감인 신사임당(申師任堂)의 남편이라고 말해야 되나요.

  며느리의 억울한 죽음을 듣자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고 쓰리던지 듣고만 있을 수가 없어 나왔어요.

   저 역시 며느리만 생각하면 할 말을 잃어버려요. 귀한 딸을 데려와 못난 자식 때문에 그만 비명횡사를 하게 했으니…. 사돈 되시는 노경린(盧慶麟) 목사에게도 그져 미안코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세상의 부모치고 자식이 잘되는 것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29세에 과거에 급제한 아들 이이가 제 무덤을 찾아오자, 저와 집 사람은 혼유석에 앉아서 큰 절을 받았지요.

  그 후 자식 놈은 과거를 보는 족족 아홉 번이나 내리 장원을 거듭해 가문의 이름을 빛냈고, 대학자와 정치가가 되어서는 큰 이름을 날렸어요.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점이 있습니다. 때로는 은근히 부아까지 나는데, 바로 집 사람 문제입니다.

  물론 집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고 또 시를 잘 짓는 재능은 알고 있지요. 하지만 아내가 48살로 요절하자, 글쎄 삼 년 상을 마친 이이가 19살의 나이로 가출을 한 겁니다.

  신세대라 그런지 도통 참을성도 없고 아비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저는 부지깽이를 들고 때리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나중에는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해서는 스님이 된다며 금강산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얼어 죽을! 얼마나 속이 상했는 지 몰라요. 또 있어요. 제 가문에 자손이 귀한 것도 아마 집 사람의 몸이 약했던 탓이 아닌가 싶어요.

  자식 놈만 더 오래 살았어도 끔찍한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착한 며느리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지 않겠어요. 제가 역사에 죄를 지은 기분이어요.

  저 역시 과거에 급제해 사헌부 감찰(정육품)까지 지냈고 부정 부패한 관리들을 엄정하게 사정한 사람입니다. 길을 걸으면 산천초목까지 벌벌 떨었습니다.

  자식 놈은 저를 가리켜 ‘진실하고 정성스러워 꾸밈이 없었으며 너그럽고 검소한 것이 옛 사람다운 기풍이 있었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자식과 집 사람의 이름에 가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집 사람이 유명하게 된 뒤에는 모두 저의 넓은 가슴과 아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요. 만약 제가 ‘이 여편네야, 여자가 무슨 글이고 그림이야? 살림이냐 똑바로 해.’라고 눈을 흘겻다면 가능했겠어요?

  저는 남편의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 아내의 문학적, 예술적 재능을 키워주고 싶었던 멋진 남자였다고요. 아시겠어요.

  보세요. 남자의 사랑은 자유여야 해요. 여자의 두 날개를 움켜쥐거나 또는 꺾는 것이 아니라 남자 날개를 보탠 네 개의 날개로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는 자유….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꿈과 그녀가 사랑하는 나의 꿈이 나란히 비상하고, 그가 있고 또 내가 있기 때문에 나와 저의 삶이 더 풍부하고 윤택해 질 수 있는 그런 자유여야 해요.

  저승에서 내려다보니까 제가 살던 땅에서는 아직도 못된 남편들이 많아요. 부인을 업신여기고 또 구박하고, 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도 흔해요. 여성은 어느 점에선 남성보다 더 뛰어난 재주가 있어요. 그 재주를 잘 돌보아주어 재능이 빛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요. 21세기는 3S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3S가 무엇이냐고요. 바로 Fiction(창작), Feeling(감각), Female(여성)로 여성적인 감각과 역할이 시대를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해요.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여자들에게도 할 말이 있어요, 제발 성형수술하지 말아요. 저승에 오면 칼을 댄 흔적까지 그대로 탄로 나 조폭 마누라처럼 흉칙하게 보여요, 솔직히 여자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것은 너무도 보기 흉해서 그래요.

  저요. 비록 자식 놈과 집 사람의 높은 이름에 가려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행복하답니다. 집 사람 때문에 참배 객이 줄을 잇고 있으니까요.

  2003년 5월 18일에는 사단법인 대동풍수지리학회의 박지사 1기 회원과 고급과정 수료한 분 50여명이 고제희 이사장을 모시고 찾아온다며 기별이 왔어요. 고 이사장은 참 좋은 분이어요, 저의 집을 자주 찾아올 뿐만 아니라 술까지 딸아주거든요. 지난 번에는 EBS촬영팀하고 함께 오기도 했어요. 마구 기다려지네요,

  자식 놈 묘 아래에 저와 집 사람의 묘가 합장으로 있어요. 자식 놈의 벼슬이 저보다 높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묘비를 보면 제 벼슬 명이 가득 쓰여지고, 끝에 ‘정경부인 평산신씨 합장’이라고 쓰여 있어요. 제 역시 파주에 있는 자운서원 내에 있어요.

  

  대학자의 인품을 흠모하고 또 현모양처의 덕행을 본받고자 하는 선남선녀님들 어서들 오세요. 맛있는 차를 끓여놓고 기다릴께요. 에고 닭이 우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사진: 草蟲圖. 신사임당 그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