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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산자락 따라 떠나는 문화재 여행/ 남정우

道雨 2008. 8. 20. 15:07
월간문화재사랑
산자락 따라 떠나는 문화재 여행

산청 _ 지리산의 정기와 남명의 학풍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중에서도 가장 크고 깊다. 3개도, 5개의 시와 군이 지리산 자락에 몸을 기대고 있는데 산청은 그중에서도 지리산에 디딘 땅의 면적이 가장 넓다. 그만큼 척박한 산간오지라는 말이다. 그러나 산청은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풍의 양대산맥으로 알려진 남명 조식이 학문을 완성하고 배움의 터전을 마련한 곳이다. 지리산 정기가 흘러내리는 덕천강가에 그의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금서면 화계리에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이 있다. 한때 번성했던 왕국이었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대왕국 가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천왕봉 아래에 펼쳐진 산청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산의 기상과 사람의 기개가 스민 땅, 남명의 유적을 찾아서
조식은 조선 중종 때인 1501년, 합천에서 태어났다. 정통 유학과 노장학 등 제자백가를 섭렵하여 박학했지만 벼슬길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이황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여러 번 중앙정부에 추천했지만 거절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했다. 그럼에도 그의 명성은 자자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찾았다. 조식은 예순이 다되어 산청 땅으로 들어왔다. 그가 산청으로 들어온 이유는 지리산이 자신의 학문처럼 의로운 기운을 간직한 산이라는 판단이었다. 산청 덕천강가에 산천재를 짓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10년 동안 자신의 학문을 아낌없이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 이황이 인仁을 중시했다면 조식은 의義를 받드는 학문을 했다. 이 때문인지 당시 그의 제자들 중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 곽재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산천재와 가까운 시천면 원리에는 그의 제자들이 그를 기려 세운 덕천서원이 있으며, 매년 8월 10일에 남명제를 지낸다. 조식유적은 산천재, 세심정, 신도비, 묘소 등으로 사적 제305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돌무덤
금서면 화계리에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었던 구형왕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금관가야는 신라 법흥왕에게 합병되기까지 492년간 이어졌던 나라로 1세기 무렵, 일본 야마타이 왕국에 왕족을 보내 다스리게 할 정도로 세력이 컸다고 한다. <가락국기>에 따르면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할아버지로 구해라고 불렸으며, 521년에 왕위에 올라 532년에 나라를 신라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청에서는 그가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이곳까지 피난 와서 죽었고 이곳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 무덤을 지어 주었다는 전설도 전해 온다. 구형왕릉이 진짜 왕릉인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것이 구형왕 무덤이라는 기록이 영조 때 사람 홍희영의 <왕산 탐릉기>에 나온다. 왕릉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에 전해오는 <산사기권>에 그 무덤이 구형왕 무덤이라고 씌어 있다고 적혀있다. 구형왕릉은 돌무지로 쌓아올린 구조와 형태가 불분명하고 사료도 남아있지 않아 정식명칭은 전傳구형왕릉이지만 가야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유적이다.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왕봉, 하늘을 향해 열린 길들
산청에는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 여럿 있다. 최단거리로 닿을 수 있는 중산리 길과 유평리 대원사 길, 벽송사에서 오르는 길이다. 중산리는 구례 노고단과 더불어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관문이다. 매표소에서 30분가량 오르면 길은 다시 두개로 나누어지는데 장터목 산장까지는 세 시간, 법계사를 거쳐 오르는 길은 세 시간 반가량 걸린다. 팔부능선을 지나면 경사도가 매우 급하고 특별히 풍광 좋은 계곡도 아니어서 발품이 꽤 고되다. 대원사길은 지리산에서 제일 끝부분에 해당된다. 유평리에서 무재치기 폭포를 따라 오르는 치밭목 산장까지의 능선길은 9㎞, 유평리에서 새재 쪽을 경유하는 조개골 계곡은 치밭목 산장까지 12㎞ 거리에 있다. 중봉에서 발원하는 상류지역이 조개골이고 치밭목 능선과 왕등능선에서 흘러드는 물이 만나는 큰 계곡이 유평리 대원사 계곡이다. 길이 멀고 가팔라 일반 등산객들보단 산꾼들이 주로 찾는 코스다. 벽송사길은 어름터 계곡을 지나 하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는 길로 4시간 30분가량이 걸린다. 계곡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산행코스가 길고 이정표가 적어 초행자는 주의해야 한다.

지리산 끝자락, 오롯한 세 고찰들
지리산 산청권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고찰 세 곳이 자리하고 있다. 대원사, 내원사, 법계사다. 보유 문화재도 많지 않고 사람도 많이 찾지 않는 오롯한 사찰들이다. 그러나 산사의 호젓한 운치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들이다.
법계사는 천왕봉 바로 아래턱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집이다. 신라 진흥왕 5년(544),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었다가 1981년 재건되었다. 경내 산신각 앞에는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고려초기의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대원사는 진흥왕9년(548), 역시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원사 계곡과 함께 청량감이 물씬 느껴지는 산사다. 이곳은 비구니도량으로 현재 대원사는 양산의 석남사, 예산의 견성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된 다층석탑이 있다. 내원사는 무열왕의 후손으로 신라귀족출신인 무염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웅전과 삼층석탑, 심우당, 비로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이 보물 제1113호로 지정되었고 비로전 안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보물 제102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함양 _ 산간마을에 꽃피운 전통과 풍류
함양은 대진 고속도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그야말로 찾아가기 힘든 경상남도의 한지였다. 전라북도의 세 산간인 무주, 장수, 진안에 덕유산 육십령을 더 넘어야 닿을 수 있었으니 그 옛날 이곳이 얼마나 외떨어진 곳이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외진 땅에는 조선의 선비문화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전통들은 경상북도 안동 땅에 견줄만 하였으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 중심에는 정여창이라는 인물이 있다. 함양의 선비문화와 원시계곡을 간직한 지리산 동쪽 골짜기들을 돌아본다.

선비의 풍류가 스민 화림동의 정자들
함양을 감싸고 있는 또 하나의 산자락은 덕유산이다. 지리에서 덕유로 이어지는 대간마루 고개인 육십령은 전라북도 무주와 함양사이를 오가는 관문이다. 덕유산은 이 육십령 길과 나란히 하천을 흘려보내니 곧 남계천이다. 육십령을 너머 함양 땅으로 접어들면 남계천을 따라 수려한 강 풍광을 지닌 경치 좋은 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화림동 계곡이다. 화림동 남계천변은 예로부터 선비들이 정자를 지어놓고 자연과 더불어 사색을 즐기던 공간이었다. 원래 여덟 개의 정자가 자리하여 화담팔정이라 불리었으나 지금은 세 개의 정자만 남아있다. 육십령을 넘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거연정은 들쭉날쭉한 바위에 주초석으로 높낮이를 맞추어 세워져 있다. 보길도 동척선실이나 소쇄원 광풍각의 조촐한 정자를 연상케 한다. 거연정 아래쪽에 자리한 군자정은 물가의 너른 바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누각이다.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인 정여창이 시를 읊었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동호정은 누각으로 오르는 멋대로 깎아 걸친 나무계단이 인상적이다. 남아있는 정자들 중 가장 너른 계곡에 자리하고 있는데 정자 앞에는 거대한 암반이 섬처럼 솟아 있고 바위에는 금적암, 영가대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성리학의 5현, 함양 사람 정여창
함양 출신의 정여창(1450~1504)은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로 함양을 선비의 고장, 안동과 견줄만한 ‘우함양’으로 불리게 된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공부하다가 함양군수를 지내던 김종직에게 글을 배웠고, 세자에게 강론을 하는 시강원 설서를 지낼 만큼 학문이 뛰어났다. 안의현감을 지낼 때는 일처리가 공정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이처럼 학덕이 출중하여 우리나라 성리학사에서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과 함께 5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연산군 때 스승 김종직과 더불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훗날 제자들이 그를 기려 세운 남계서원은 백운동 서원 다음으로 오래된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지곡면 개평리에는 그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개평마을은 정여창 고택 말고도 여러 채의 한옥과 돌담길이 이어져 전통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다. 돌담 곳곳에 능소화와 도라지꽃이 지천으로 피어 옛 마을의 운치가 느껴진다. 정여창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안사랑채, 아래채, 곳간채, 별당과 가묘, 작은 정원까지 가꾸어져 옛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준다. 중요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리산 동부, 소문난 계곡비경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 시작되는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계곡 중 하나로 손꼽힌다. 칠선계곡은 추성마을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18㎞의 구간인데, 빼곡히 들어찬 원시림과 선녀탕,
칠선폭포, 대륙폭포 등 7개의 폭포수와 33개의 소가 볼만하다. 천왕봉까지는 아홉 시간은 족히 걸리는 난코스로 계곡 비경의 탐방만을 원한다면 대륙폭포까지가 적당하겠다. 추성리에서 대륙폭포까지는 왕복 여덟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경사가 급하고 습기가 많아 만만치 않은 길이지만, 청정계곡의 묘미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지리산 주능선에 오르지 않고 계곡의 절경만을 감상하기에 한신계곡도 빠질 수 없다.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해서 한심하다는 뜻으로 한신이 되었다고 한다.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까지의 10㎞ 구간으로 한신폭포까지는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 지리산 계곡 가운데 가장 많은 폭포를 끼고 있으며 지리산 계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인공조림 - 함양상림
함양읍에는 함양상림이라고 부르는 너른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으로 그 역사가 무려 1,100여년 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때 함양군수로 내려와 있던 최치원이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원래는 대관림으로 불렸으며 면적이 더 넓었지만 홍수로 가운데 부분이 무너지고 그 틈에 민가가 들어서며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현재 하림은 훼손되어 상림만 유지되고 있다. 총 3만 6천여 평에 이르는 상림은 참나무와 개서어나무류를 주종으로 모두 116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에는 함화루와 척화비, 이은리 석불,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 등의 문화유적이 자리하여 숲과 함께 함양의 소소한 역사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함양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다.

▶글 ·사진| 남정우
게시일 2008-07-29 09:43:00.0
 
출처 : 동락재통신
글쓴이 : 동락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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