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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사진 5 (혼인지, 성읍민속마을)

道雨 2009. 8. 27. 16:19

 

 

 

                  제주도 여행 사진 5 (혼인지, 성읍민속마을)

 

 

* 성산 일출봉과 우도를 돌아보고 나오니 오늘 하루 일정의 절반 이상을 소화한 느낌이다. 성산포로 돌아와 흑돼지 한 마리(양이 많아 남은 것을 싸가지고 돌아와 저녁때 또 먹었다)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드라마 올인 촬영지로 유명한 섭지코지는 생략하고, 바로 혼인지로 향했다.

 

혼인지(婚姻池)는 제주의 시조들인 고, 양, 부 세 을나가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들과 혼인한 곳으로 알려진 연못이다.

 

성읍민속마을은 조선시대 정의현의 현청소재지로서 중산간마을의 특징이 잘 남아있는 곳이며, 현재까지도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성읍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읍마을 근처에는 조랑말 타기 체험하는 곳이 많다.

 

 

 

 

* 혼인지 

암반 사이에서 물이 솟아나와 평평한 암반 위로 물이 고여있는 연못이다. 우리가 갔을 때 물의 양은 많지 않으나 웬만한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이 귀한 고장이니 만큼, 세 을나가 이곳에서 혼인을 할 정도로 신성시 여겼을 것이다.  

 

 

* 연못의 크기도 별로 크지 않고, 고여있는 물의 양도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웬만한 가뭄에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세 을나가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이하여 혼인을 한 곳이라 하며, 이와 관련지어 이곳에는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는 건물(전통 혼례식장)이 지어져 있다. 그러나 제주시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는 곳이라 실제 잘 활용될지는 미지수이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이곳을 찾은 사람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 제주의 세 신인(을나)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와 관련된 설화 및 유적지.

 

 - 삼성혈 :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의 구멍을 말한다.
3시조들은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사냥해 먹고 살다가,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결혼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구멍은 품(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만 바다와 통하고 나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조선 중종 21년(1526)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과 비석을 세우고, 주위에 울타리를 쌓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혼인지 : 혼인지는 탐라(지금의 제주)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三神人)이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에 떠밀려 온 나무상자 속에서 나온 벽랑국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을 올렸다는 조그마한 연못이다.
삼신인은 수렵생활을 하고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다가, 나무상자 속에서 나온 송아지와 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를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으며, 이때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무상자가 발견된 해안을 황루알이라고 부르는데, 황루알에는 세 공주가 바위에 디딘 발자국이 남아있다고 한다.

 

 - 삼사석 : 삼사석탐라국의 시조인 고(高)·양(良)·부(夫) 세 신인(神人)이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배필로 정한 뒤, 살아갈 땅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을 때 그 화살이 꽂혔던 돌이다. 그 장소를 일도리(一徒里)·이도리(二徒里)·삼도리(三徒里)라고 하였다고 하며, 현재의 제주시 행정 구역인 ‘일도동’·‘이도동’·‘삼도동’이 그곳이다. 이 일대는 탐라 시대 이후 제주의 중심 지역이었다.
1735년(영조 8)에 김정 목사가 삼사석 전설과 유적을 돌아보고 삼사석비를 세웠다. 그 후 1813년(순조 13) 제주 사람 양종창(梁宗昌)삼사석을 수습하여 석실을 만들어 보관하면서 석실 기둥 판석에 새기기를 ‘삼신 유적이 세월이 오래됐으므로 남은 것을 거두어 이제 보수하여 석실에 합하였다(三神遺蹟 歲久殘斂 今焉補葺 加以石室)’고 하였다. 삼사석비는 100여 년이 지나 글자가 지워져 1840년(헌종 6) 3월 7일에 개수되었다.
삼사석은 지름이 55cm 정도 되는 2개의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 이를 보호하는 석실의 규모는 높이 149cm, 앞뒤 너비 101cm, 옆 너비 67cm이다. 삼사석비의 규모는 높이 113cm, 너비 43cm, 두께 18cm이다.
삼사석비 앞면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옛날 모흥혈에서 활을 쏘아 맞은 돌이 남아 있으니 신인의 기이한 자취는 천추에 빛날 것이다(毛興穴古 矢射石留 神人異蹟 交嘆千秋)’라는 명문이 있다. 뒷면에는 1930년 고한룡(高漢龍)·고대길(高大吉)·고영경(高永炅) 등이 다시 고치고 담장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  나라를 세운 시조들은 대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 알로 태어나든 궤짝에서 나오든 그 설화의 근본은 하늘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제주의 세 신인들은 땅 속 구멍에서 나왔으니, 이는 제주가 화산지형으로서 동굴이 많고, 또 물이 귀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성읍민속마을 로 가는 길에 보이는 풍차들.

바람이 많은 제주의 특성에 따라 풍력발전을 많이 활용하면, 환경보호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관광 상품으로도  좋을 듯..... 

 

 

* 성읍민속마을의 올레길.

올레길은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 읍성의 성벽.

성읍민속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인데, 성벽 안팎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성읍민속마을은 성 안으로 차량이 들어갈 수 있으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네비게이션을 보고 가노라면 목적지 근처에서 자꾸 헷갈린다. 별도의 주차장이 없이 넓은 구역을 모두 망라하기 때문이다.

 

 

* 이 분은 이 동네(서문 쪽)에 거주하는 주민(어망?)이다. 별도의 문화관광해설사는 아니지만, 제주 출신으로서 본고장 말을 섞어가면서, 아주 흥미있게 제주의 민가와 생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민속관광해설사라고 불리움직하다.

시진은 물이 귀한 제주이기에 나무에서 물을 받는 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제주도 민가의 대문격인 정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막대기가 정낭이고, 막대기를 끼우는 돌이 정주석이다.

세 개가 모두 걸쳐져있으면 식구가 모두 멀리 나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고, 둘이 걸쳐져있으면 가까운 곳(밭)에 나갔다는 뜻이고, 하나만 있으면 이웃에 갔다는 뜻이다.  

정낭이 걸쳐져있으면 동물(말이나 소 따위)이 드나드는 것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 제주도 정지간(부엌)의 모습.  

제주 민가의 부엌은, 난방도 겸하는 육지의 아궁이와 달리 따로 취사만 하도록 꾸며져 있다. 이는 유목민적인 특성이라고 생각되는데, 적(약탈자)들이 쳐들어왔을 때, 솥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 집안에 부모와 결혼한 자식이 함께 살 때도,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로 따로 기거하며, 정지도 따로 두어 각기 취사를 달리함이 원칙이라고한다. 집이 너무 단촐하여 비록 정지는 함께 사용할 경우라도 취사는 따로따로 한다고 한다. 

 

 

 

* 제주 민가의 풍속에 대하여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임영희씨. 당신을 제주 성읍마을 민속관광해설사로 추천합니다... 

 

 

* 햇볕이 강할 때는 펼쳐서 햇볕가리개로, 비바람, 또는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칠 때는 내려서 문과 벽을 가린다.  

 

 

* 집의 뒤뜰에 있는 감나무.  여기에도 물을 모으는 장치가 되어 있다.

한편 제주도 전통가옥에서 화장실을 찾을 때는 감나무를 찾으면 된다고...감나무 잎이 넓어서 일을 보고 난 뒤 뒤를 닦기 좋으니까...

 

 

* 제주도 전통의 화장실. 일을 보는 앞의 공간에는 똥돼지들이 있었죠... 

 

 

* 일을 볼 때 남자들은 반드시 이렇게 막대기를 갖고있어야 되요. 자칫 돼지에게 그것이 따먹히면 안되니까요... ㅋㅋㅋ

 

 

* 이것은 허벅이라고 해요. 물이 귀한 제주에서 물을 길어나를 때 쓰는 운반용 물항아리이지요. 남자들은 절대로 안하기 때문에 이 허벅의 숫자가 그 집의 아낙들의 숫자랍니다.

남자들이 귀해서 그런지 제주의 아낙들은 대체로 남자들을 존중한다고 합니다.

제주도 출신 부인과 함께 사는 누구는 좋겠네요...

만일 남자가 이 허벅을 메고 갔다면, 그 집은 이혼하거나 사별하여 여자가 없는 집이라고 하는군요.

 

 

 

* 제주말이 육지와 많이 다르죠.  몽고와 일본말이 많이 섞인 것 같다고 합니다. 

 

 

* 읍성의 서문입니다.

 

 

* 성읍민속마을의 돌하르방과 함께 한 컷. 

 

 

* 위의 사진 속의 돌하르방과 마주보고있는 돌하르방입니다.  

 

 

* 성 안쪽의 모습.

 

 

* 성 안에 있는 큰 느티나무.

 

 

시간이 부족하여 성 안을 자세히 둘러보질 못하고, 다음 코스(조랑말 타는 곳)로 이동해야만 되었습니다.

 

 

*** 성읍민속마을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이 지역특산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검은 오미자로 만든 진액(엑기스)과 말의 뼈로 만든 분말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이곳에서만 판매하도록 허가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현장판매만 하고, 인터넷판매 등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검은 색의 현무암 때문인지 오미자 색깔이 검다고 하는군요.

오미자는 마른 기침하는데 좋고, 식은 땀 나는 데도 좋으며, 당뇨에도 좋습니다.

말의 뼈는 관절과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 좋구요. 

저는 오미자 진액만 한 병 사가지고 왔습니다. 1병에 3만 5천원. 

안내하면서 설명을 잘 해주신 성의가 너무 고마워 많이 사드리고 싶었지만, 예산 관계상 할 수 없었죠.....

 

 

 

성읍민속마을의 임영희씨,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과 안내, 고마웠습니다.....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