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무상보육, 그리고 아동수당

道雨 2010. 4. 1. 13:21

 

 

 

 

          88개 나라 아동수당 주는데 한국은…

 

 

아동빈곤과 저출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가 있는 가구에게 일정 액수의 ‘아동수당’을 주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우남·양승조·이낙연 민주당 의원,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은 4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첫 번째 과제-아동수당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한 최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이 있는 가구의 소득을 보전해 아동의 빈곤을 막고, 아동이 잘 자라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자녀 양육은 사회적 책임”이라며 “아동수당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스웨덴과 프랑스 등에서는 가족에 대한 지원정책이 연금, 건강보험, 장애인 복지, 실업자 지원과 함께 중요한 사회복지의 한 축”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급여와 관련된 정부의 공공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라고 비판했다.

아동수당은 이미 88개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아동수당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미국, 터키, 멕시코 4개국뿐이다.

토론자로 나온 유해미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아동수당제도는 아동이 있는 가구와 없는 가구의 소득재분배, 아동빈곤의 완화, 여성지위 향상 등 다양한 정책효과를 가진다”고 말했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위원장도 “아동수당이야말로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돌려줘야 할 몫”이라고 지적했다. 아동수당제도가 보편적 복지정책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영 중앙대 교수(사회복지)는 “차상위계층 미만 등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아동수당 도입은 사회통합이라는 제도의 근본 목적을 훼손할 것”이라며 “적어도 소득하위 80%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준 보편적 제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있는 서비스도 줄이면서 ‘무상보육’ 운운하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하는 ‘아이돌보미’ 사업 예산이 올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일시적으로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 서비스인데, 무상보육을 확대하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사업을 줄이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지난해 이 사업에 쓰인 예산은 중앙정부 224억원을 포함해 모두 319억원이었으나 올해엔 26%나 적은 235억원으로 줄었다. 예산이 절반 이상 깎인 지자체도 있다.

겉으로는 출산을 장려하고 보육 서비스를 늘리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서비스도 줄였으니, ‘겉 다르고 속 다른’ 복지정책의 전형이다.

 

그동안 이 서비스를 이용하던 가정들은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끝난 뒤 맡겼다가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가는 식으로 이용하던 맞벌이 부부들은 대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에게나 아이를 맡길 수 없는데다 마땅한 시설을 찾아도 비용이 문제다.

그래서 정부 지원이 끊기면,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도 들려온다.

 

정부의 아이돌보미 서비스 축소는 그동안 이용하던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출산 계획을 세우던 이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말을 믿고 계획을 세우다간 결국 낭패를 볼 거라고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신이 확산되면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

복지 서비스를 기피하는 현상도 예상된다. 새로운 복지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사업을 꾸준히 유지·확대하는 게 더욱 중요한 것이다.

 

현재 정부는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려고 갖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18일 발표한 ‘단시간근로 상용직’ 도입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출산 장려와 여성 고용 촉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좇으면서, 여기에 딱 맞춤한 서비스인 아이돌보미 사업을 축소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돌보미 사업이 이렇게 거꾸로 가는 현실을 보면, 정부가 일관된 계획을 세우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일을 추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아이돌보미 사업을 다시 늘림으로써, 출산 장려와 여성 고용 촉진이 말뿐인 목표가 아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2010. 4. 1 사설>

 

 

 

 

       우리나라 ‘어린이수당’을 받고 싶다

 

 

일본 정부가 나 같은 장기체류 외국인에게도 중학교 졸업 전 자녀 한 명에게 월 1만3000엔(약 15만원)씩 ‘어린이수당’을 주겠다고 한다. 고맙긴 한데, 일본의 나라살림을 생각하면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린이수당엔 자녀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 출산율을 높이자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내가 만나본 일본의 젊은 부모 가운데 그 돈에 기대어 아이를 더 낳겠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돈을 어디에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소비는 확실히 늘어날 터이다.

빈곤층이 늘고 소득격차가 커지면서, 그것이 내수 부족을 낳고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일본 경제의 악순환을 끊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민주당이 공약한 대로 어린이수당을 내년에 월 2만6000엔으로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2조7000억엔에 이르는 추가재원 마련이 어려워서다.

일본 정부는 올해 나라살림을 꾸리기 위해 37조엔의 예상세수보다 많은 44조엔의 신규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그나마도 6조엔을 여기저기 공공부문에서 끌어모아 국채 발행을 줄인 것이다. 내년에 공약을 마저 이행하려면 어디선가 지출을 대폭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애초 하토야마 정부도 올해 예산안에서 낭비적인 사업예산 9조엔을 삭감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실제 깎은 돈은 1조엔에 그쳤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예산을 대폭 깎기란 어려웠을 게다.

세금 인상은 더욱 어렵다. 일본에서는 세율 3%짜리 소비세를 도입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총리가 바뀌었다. 세금 인상은 정치권력에게 그야말로 저승사자다.

일본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소비세율 인상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간접세 인상은 내수를 살려 경제를 선순환으로 돌리자는 정책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런 점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하토야마 정부가 취할 선택은, 어렵지만 ‘콘크리트 예산’을 비롯한 낭비적 예산을 더 깎는 것뿐이다.

 

사실 일본의 나라살림이 아주 심각한 상태라는 건 몇 해 전부터 잘 알려진 일이다. 올해 연말 970조엔을 넘어설 일본의 나랏빚은 내년 말엔 1000조엔을 넘어서게 된다.

200%가 넘는 국가부채 비율은 최근 재정위기를 맞은 그리스(125%)조차 놀라 나자빠질 만한 수치다. 그럼에도 일본이 여전히 큰 탈 없이 지내는 비결은 국채의 95%를 내국인이 갖고 있다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그나마 작동하고 있어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도 폭증하고 있다. 더 걱정스런 것은 외국인의 국채 보유도 함께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채권을 거들떠보지 않던 외국인들이 지금은 국채와 통안채를 중심으로 60조원어치 넘게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가에게 국채 이자소득세를 면제한 지난해부터 매수세에 불이 붙었다. 외국인의 채권 보유 비중이 아직은 전체 국채와 통안채의 7~9% 정도라지만, 안전장치는 빠르게 풀리고 있다.

 

외국인들의 태도가 언제 싹 바뀔지는 모른다. 이제 와서 외국인의 국채 투자를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나라살림을 더욱 건전하게 운용하는 길밖엔 없다.

일본의 실패는 길을 이미 가르쳐주었다.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을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라는 것이다. 효율성 검토조차 없는 ‘4대강 사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보다 ‘어린이수당’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우리나라다.

 

어린이수당을 우리나라에서 당당하게 받고 싶다.

 

<도쿄에서 정남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