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감기에 항생제 처방 99% 무의미하다”

道雨 2011. 4. 21. 14:41

 

 

 

      “감기에 항생제 처방 99% 무의미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일본 원전 사고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2010년대 항생제를 탓하는 소리이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영국의 생물학자)이 푸른곰팡이에서 인류 최초의 페니실린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항생제는 당시 유행하던 세균성 질환을 거의 모두 치료해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항생제 종류가 늘어나고, 의사들의 처방량이 급증하면서 항생제의 기적은 서서히 빛을 잃는다. 내성균이 출현하면서 약효가 점점 떨어진 것.

약사와 의사들이 당혹해하며 '약발'이 더 센 제품을 생산·처방해보았지만, 그럴수록 더 강한 내성균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폐구균(폐렴·축농증 등을 일으키는 세균)만 해도 1986년에는 페니실린으로 완치가 가능했다(한국 기준). 그렇지만 1990년 그 내성률이 25%(항생제를 처방했을 때 100마리 세균 가운데 살아남는 수)로 치솟더니, 2000년대에 들어서는 80%를 넘어선다. 급기야 1997년에는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라 여겨지던 반코마이신에도 절멸하지 않는 다제내성균(슈퍼박테리아)이 출현한다. 이로써 항생제는 이제 만병통치약에서 '위험한 약' 소리를 듣게 된다.





ⓒ시사IN 안희태 의약분업 후 항생제 처방 양이 줄었지만, 아직도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세계 최고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항생제는 모두 50여 종.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적극 쓰인다. 문제는 그 양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02년 소아과와 이비인후과에 내원한 환자 10명 중 7명이 항생제 처방을 받았고 가정의학과는 4.5명, 내과는 3명꼴로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그 결과 2010년에는 항감염약을 31.4도즈(1000명이 하루에 31.4인분의 항감염약을 사용했다는 뜻)를 사용해, OECD 가입국 가운데 항생제 소비량이 가장 많았다.


장구균, 암피실린 내성률 97% 넘어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국내 항생제 사용량 가운데 30~40%가 부적절하게 쓰인다. 이 같은 항생제 오·남용은 의료비 상승, 부작용 유발, 내성균 발현 같은 후유증을 낳는다. 이미 장염 원인균(장구균)은 암피실린에 97%, 반코마이신에 33% 수준의 내성률을 나타낸 바 있다. 식중독균인 포도상구균 역시 메티실린에 75% 수준의 높은 내성률을 보여왔다. 국내 감염 전문가들도 이 사실을 잘 안다.

세계보건기구(WHO) 제정 '세계 보건의 날'(4월7일, 매년 주제를 정하는데 올해는 '항생제 내성과의 전쟁:오늘 행동하지 않으면 내일의 치료는 없다'였다)을 맞아 < 항생제 내성 국제 심포지엄 2011 > (ISAAR)을 서울에 유치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4월6~8일 열린 행사에는 내로라하는 항생제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마크 윌콕스 교수(영국 리즈 대학·감염내과)도 그중 한 명이다. 현재 영국 보건복지부 건강보호기구 최고 전문위원이자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 전문위원인 윌콕스 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의사들에게 항생제의 올바른 처방법과 사용법에 관해 강의했다. 그에게 몇 가지 항생제 관련 쟁점에 대해 물었다.








ⓒ시사IN 윤무영 항생제 전문가 마크 윌콕스 영국 리즈 대학 교수.

국제적인 항생제 전문가로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진다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우선,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슈퍼박테리아)의 감염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B락타마제 생성균(ESBL)의 감염자 수도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항생제 사용량이나 처방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내성률이 올라가고, 그 결과 앞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 수가 점점 더 줄 수밖에 없다. 드라마틱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최후에 쓸 수 있는 항생제가 한두 가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아시아에는 한국처럼 항생제 남용 국가가 많다. 경제적 수준과 항생제 남용이 관계가 있는가?

있는 것 같다. 한국·중국·인도처럼 빠르게 발전한 나라에서 항생제 내성이 뚜렷이 높게 나타난다. 이 부분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항생제 남용은 건강보험 체계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한국 등은 새로운 항생제가 등장하면 재빨리 보험 급여가 가능한 품목에 편입시킨다. 그래서 의사도 환자도 항생제를 쉽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영국 같은 나라는 다르다. 새로운 항생제가 건강보험 급여 품목에 오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결과 의사·환자 모두 비교적 오래되고 저렴한 항생제를 쓰는 데 익숙하다.

영국은 어떻게 항생제 사용을 관리하나?


1, 2차 치료에서부터 강하게 규제·관리한다. 일부 질환은 어떤 항생제를 얼마만큼 쓰라고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을 정도이다. 의사들이 쓴 항생제는 일일이 그 양이 공시되며, 객관적으로 다른 의사와 비교되기도 한다(한국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 www.hira.or.kr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또 하나, 항생제를 사용한 의사는 반드시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중국 등의 항생제 사용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의사들은 대부분 항생제를 처방할 때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의사는 항생제를 선택·처방할 때 이 약이 환자에게 최상의 약인지 고민해야 한다. 항생제는 지금 처방하는 환자에게도 중요하지만, 다음의 환자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카바페넴이 꽤 광범위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마구 처방하면, 같은 세균에 감염된 다음 환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선택·처방하는 항생제가 다음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늘 생각해야 한다.


일부 한국 의사들은 아직도 감기 치료에 항생제를 쓴다. 그리고 종종 그 이유로 2차 감염의 위험성을 든다.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바이러스성 감기에 걸린 환자의 1% 정도에서만 세균성 감염이 나타난다. 따라서 감기 환자 100명에게 항생제를 처방했다면 99명에게는 전혀 무의미하다. 영국 의사들은 감기 환자가 오면 파라세티몰(아스피린계 진통제) 등을 주고, 효과가 없으면 다시 오라고 말한다. 가끔 고위험군 환자에게 항생제 처방을 하지만, 대개 3~5일 뒤 증상이 정말 심각해진 다음에 약을 받을 수 있게 처방한다.

영국 의사들은 항생제 교육을 받기도 하나?

의과대학에서 항생제 교육을 한 뒤,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다시 한번 교육한다. 그러고 나서도 의사들의 항생제 사용 현황을 수시로 파악한다. 그러나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항생제 사용을 적절히 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고 또 노력한다.

한국에서도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해 의사와 환자 모두 긴장한 적이 있다. 영국 사정은 어떤가?

영국에서도 NDM이라는 슈퍼박테리아가 발생해 감염자가 사망했다. NDM은 처음에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이제는 환자 간에 전파될 만큼 위험해졌다. 영국 보건당국은 치료 방법을 논의하고, 세균 감염 확산 가능성에 대비한 지침도 개발했다. 현재 NDM 유발 세균을 치료할 항생제는 두 가지뿐이다. 가장 오래된 항생제 콜리스틴과 새로운 항생제 타이제사이클린이다.

항생제 병용 처방(항생제를 두 가지 이상 처방하는 요법)과 단일 처방의 효과나 내성 문제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있다. 어떤 요법이 더 효과가 있고, 더 위험한가?

항생제를 처방할 때 병원균이 무엇인지 파악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의사는 효과를 높일 목적으로 단독 처방보다 병용 처방을 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에서 병용 처방이 단독 처방보다 더 낫다는 증거를 거의 찾지 못했다. 병용 처방은 오히려 내성 발현을 증가시킬 뿐이다. 이 항생제에 내성이 있으면 (병용한) 다른 항생제는 효과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은 옳지 않다. 항생제는 종류마다 침투하는 곳이 다 다르다. 따라서 효과가 같을 수 없다. 부득이하게 병용 처방을 해야 한다면 침투 방법이나 침투 요법이 비슷한 항생제를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타이제사이클린같이 여러 세균에 항균력을 갖는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윤현 기자 / noma@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