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이 시대에 다시 보는 중세기 판결

道雨 2011. 9. 6. 16:39

 

 

 

        이 시대에 다시 보는 중세기 판결

 


관변학자들의 검증되지 않은 사견에 휘둘린 대법원 판사들이 과학적 사실을 표결로 결정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대법원은 미국 쇠고기 졸속개방에 대한 <피디수첩> 보도와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균형 잡힌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판결 중에 ‘한국인의 엠엠(MM)유전자형과 인간광우병 위험성 보도’를 허위로 판단했다.

3명의 대법관은 이 보도내용이 허위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지만, 다수의견은 “인간광우병 환자 중 엠엠형을 보유하지 않은 사례도 발견되고,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엠엠형뿐만 아니라 다른 유전자형에서도 인간광우병 발생 결과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광우병 발병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관여하고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인간광우병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거나 낮아진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엠엠 유전자형과 인간광우병 발병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대법원 다수의견은 이런 상관관계가 허위라는 판결을 내리면서도 과학적 근거를 전혀 들지 못했다. 과학적 내용이 허위라고 부정되기 위해서는 예외 사례가 아니라 반증 연구 결과가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피디수첩> 방송이 허위가 되려면, 과학계가 인정할 정도로 엠엠유전자형과 인간광우병 발병의 높은 연관성이 부정된 연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과학적 사실을 허위라고 판시한 것은 과학에 무지한 결정적 오류이자, 부끄러운 판례의 대표적 사례다.

 

이는 과학 사실이 과학자의 과학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정에서 그 진위가 결정되던 중세기 상황과 유사하다.

물론 과학 사실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당대의 과학적 사실의 부정으로 이어지는 논거라면 이는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현 과학 수준에서 엠엠유전자형의 인간광우병과의 상관성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며, 129번 엠엠유전자형이 인간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것은 많은 연구 결과와 더불어 국내 정부기관의 지침서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제 대법원 판결로, 엠엠유전자형과 인간광우병 발생의 높은 연관성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건전한 언론 기능을 탄압한 현 정부와 정치검찰, 그리고 과학적 근거도 없이 사법부 판단을 흐리게 한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 및 관변학자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정부나 검찰 쪽의 관변학자 중에 광우병 관련 실험을 하는 이는 없으니, 이들 주장은 과학 의견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개인 주장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은 인간광우병은 하나의 유전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주장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혼란시켰다.

하지만 그 주장은 대법원 다수의견이 생각하듯 엠엠유전자형을 지닌 사람의 인간광우병 취약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질병을 기준으로 발병에 대해 언급한 것이고, 후자는 유전자를 기준으로 질병 발생과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으로, 한 주장이 다른 주장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유전자의 보유자가 특정 질병 발생에 취약한 사례는 이미 의학계 상식일 정도로 많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실증적 연구에 의한 것이지 법정이나 토론장에서 결정될 수 없다.

허접한 대중매체와 관변학자들의 검증되지 않은 사견에 휘둘린 대법원 판사들이 과학적 사실을 표결로 결정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했으니, 한편으론 위증이나 만들어진 증거에 의해 엉뚱한 판결을 낸 모습이다.

 

국내에서 엠엠유전자 분석을 통해 한국인의 취약성을 보고했던 김용선 교수가 “주장을 하려면 실제 연구논문으로 반론해주었으면 좋겠다. 실제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말만 하는 이들 때문에 국민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말을 법정에서 했다.

 

과학 시대의 깨어 있는 판사라면 과학자 모두가 공감하는 이 말을 결코 가볍게 듣지 않아야 한다.


<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