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관련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道雨 2011. 11. 2. 14:16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시간을 갖고 기초체력 보강하고, ISD 등 독소조항도 걸러내야 한다
한-미 FTA는 안 하는 게 상책이고, 2~3년 뒤 고려하는 것이 중책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정오표를 야권에서 요구해 왔다. 결국 밀실에서 의원들만 보기로 했단다. 해서 급기야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 85인이 지난 2주간에 걸쳐 2008년 협정문 국문본과 2011년 것을 비교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번역 오류가 총 2600여개다. 그중 503개는 법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들이다. 예컨대 ‘거래’를 ‘무역’으로 번역했다. ‘군복무자’는 ‘병역의무자’로 오역했고, ‘세금’은 ‘이윤’으로 번역했다.

이런 것들이 자칫 법률이 될 뻔했다는 생각에 기가 막히고, 자꾸 이런 기본적인 것을 중언부언하자니 입이 구차하다. 비준동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본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피해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야 합의문을 보면 농업 관련 장문의 대책이 나와 있다. 얼핏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져 보면 이렇다.

이미 시행중인 것들, 예컨대 ‘축사시설 현대화’를 ‘축산시설 현대화 지원’으로 ‘ㄴ’받침을 더해 대책이라 부르고, ‘과수생산시설 현대화’를 ‘과수고품질시설 현대화’로 세 글자 고쳐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나머지도 거의 마찬가지다.

농어업 피해지원 대책 22조원을 말한다. 하지만 그중 21조는 이전부터 해 오던 것들이다. 입을 열면 뻥튀기고, 내놓느니 꼼수다.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고시하려고 하니까,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고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버젓이 대책으로 들어가 있다.

1990년대 유통개방 이후 국내외 유통대자본에 밀려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된 중소자영업자들은 어찌할 건가.


셋째는 독소조항이다.

내가 보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은 유례가 드문 독소조항의 교과서다. 앞으로 우리보다 약한 개발도상국과 협상할 때, 이 협정문대로 하면 아주 제격이다. 그런데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에 응하지 않을 게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독소조항들은 협정문 요소요소 독버섯처럼 숨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마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중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역진방지 메커니즘, 네거티브 리스트 등은 반드시 걸러내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와 사회의 족쇄가 될 뿐이다.

 

넷째는 경제효과 문제다.

위에 언급한 모든 것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하게 되면 정부 말처럼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7% 증가한다면 한번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런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표준모형으로 그 경제효과를 추정해 보니 국내총생산의 0.08~0.13%에 불과하다. 그것도 10년 이상치를 다 합한 추정치다.

결론은 이렇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늘어날 일자리는 사실상 없고, 외국인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미무역 흑자는 분명히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하면 성장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최대 수혜업종인 자동차를 보더라도 그렇다. 2010년 현재 현대차는 30만대를 수출했고, 30만대를 현지생산해서 팔았다. 이 말은 자동차 관세 철폐로 얻을 실익이 미미하다는 것이고, 그마저 작년 12월 재협상으로 인해 4년 유예되었다.

나아가 그 부스러기 이익도 사실은 재벌의 보너스지 서민들하고는 무관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결국 1%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다. 99%에게 그것은 양극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섯째, 지금 급한 것은 미국이지 우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르는 것은 수출을 배가시켜 미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오바마의 수출드라이브 전략에 자리 깔아 주는 꼴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기 또한 별로 기대할 정도가 못 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질 구매력은 바닥세다.

그래서 못해도 2~3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초체력도 보강하고 피해대책도 제대로 세우고 재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도 걸러내야 한다.

 

일각에서 경제영토니 시장선점이니 19세기에나 통할 법한 황당한 말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경제영토가 되고, 시장선점 당할 판인데 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안 하는 게 상책이고, 2~3년 뒤 고려하는 것이 중책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