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MBC는 무엇으로 사는가

道雨 2012. 1. 17. 12:18

 

 

 

              MBC는 무엇으로 사는가
 

 

기자들에게 언론인으로서 지사적 태도를 요구하기는 힘든 시대지만, 최소한의 직업윤리는 꼭 필요하다

 

 

» 이명수 심리기획자
감정단어 연구에 따르면, 나쁜 감정이 가장 강한 단어 1위는 ‘참담하다’이다.

끔찍하고 절망적인 감정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입에서 참담하다는 말이 나오면 최악의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지상파 방송의 보도 행태를 ‘참담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규정하는 방송사 내부 구성원들의 자기고백은 그래서 듣는 이까지 뼈아프다.

 

지상파 방송의 극단적 편파보도는 도를 넘어섰다. 공정성이나 공영방송 시스템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한 시사피디는 자사 뉴스를 5공 시절의 땡전뉴스로 비유할 정도다.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집회에서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고 있는데 9시 뉴스의 첫 꼭지는 한파주의보 소식과 함께 스키장 시즌이 개막됐다는 내용이다. 물론 집회 소식은 단 한 줄도 방송하지 않는다.

제야의 타종 행사도 근처에서 반엠비를 외치는 시민들이 사회불안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계를 생략한다.

야당의 대표 경선 중계를 안 하는 이유는 ‘중계방송 안 봐도 인터넷 보고 다 알 수 있는데 뭘’이다.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부정한다.

 

방송사 중에서도 엠비시 수뇌부의 방만한 현실인식이나 무개념은 참담한 수준이다.

엠비시 기자들은 전례없이 극심한 편파보도의 책임을 물어 보도책임자 사퇴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불신임 찬성률이 90%에 가깝지만 사장이란 이는 올해부터 보도 부문에 유례없이 큰 지원을 할 것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당근을 내민다.

자사의 기자들이 각종 시위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내쫓기거나 두들겨 맞는 일이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인데도 그렇다.

 

재보선, 반값 등록금 집회, 내곡동 사저 의혹 등 민감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뉴스의 방향이 한쪽으로 기울거나 누락되는 일이 빈번했는데도 회사 쪽은 그걸 뉴스의 가치에 대한 시각차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강변한다.

올해 엠비시의 구호가 ‘통 엠비시 통통 대한민국’으로, 소통이 제1의 목표라는데 소통의 감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권력이 언론을 순치시키기 위한 집요함과 교활함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 순간,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기자들의 철학과 태도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5공 시절의 어느 엠비시 사장처럼 ‘언론인이 체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밀어붙이면, 지금의 엠비시처럼 신뢰와 공정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신시대의 <조선> <동아> 해직기자나,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다 해직돼 천일 넘게 투쟁중인 <와이티엔> 해직기자들은 제도 때문에 저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무한경쟁을 뚫고 방송사라는 좋은 직장에 들어간 기자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지사적 태도를 요구하기는 힘든 시대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 정도는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기 먼저 살겠다고 비상상황에 승객을 외면하는 스튜어디스는 거의 없다. 유난히 이타심이 강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직업의식으로 잘 훈련된 집단이라서 그렇다.

기자라는 직업인에게 스튜어디스 정도의 직업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제도가 아니라 ‘나는 기자다’라는 자각으로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구성원들이 있는 한 엠비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말을 화두로 삼는다 들었다.

그렇다면 엠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 답은 결국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의 대답과 똑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엠비시 뉴스가 참담함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상태에 이르도록 마음 포개고 있는 젊은 기자들을, 기꺼이 지지한다. 끝까지 강건하길.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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