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대 웃음
2002년 8월 시사평론가 유시민이 절필선언을 하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뛰어드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이어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를 적시한 책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를 내놓았다.
분노는 그해 대통령선거의 분위기를 규정한 근본 정조였다.
유시민의 선언이 분노의 화염에 풀무질을 했다면, 분노의 파토스에 처음으로 불을 지른 것은 강준만의 책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었다.
“한국인은 정치가 제일 썩었다고 침을 뱉으면서도 기존 정치판의 문화에 저항하는 정치인은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배척하는 사기극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고 있다.”
강준만의 책은 그 사기극의 배후 조종자로 부패한 언론권력을 지목했다.
‘바보’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에 분노하는 정치인으로 재발견됐다.
2012년은 여러 지점에서 2002년과 닮았다.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 있던 자리에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있다. 2002년 인터넷사이트들이 했던 일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하고 있다.
그러나 두 해의 정조는 아주 다르다.
분노의 폭풍이 지나간 바다에 웃음이 파도친다. 사람들은 ‘가카 헌정 방송’을 들으며 폭소한다.
<닥치고 정치>의 지은이는 말한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열 받으면 니들도 이런 거 하나 쓰든가.”
이 가벼운 태도는, “독자들의 칭찬보다는 혹독한 비판을 간절히 바란다”고 쓰는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의 태도와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그 다름 아래에 단단한 공통성의 지반이 있다.
2012년의 웃음은 실은 노무현의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와 썩은 정치에 베인 상처를 씻어내려는 집단적 씻김굿이다. 밑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하다.
웃음은 거기서 터져 나온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보다 푸른빛으로 솟는 불꽃이 더 뜨겁듯이 어떤 웃음은 분노보다 더 뜨겁다.
니체는 말한다.
“치명적인 것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쏟아지는 복지공약, 뱀을 부른다 (0) | 2012.02.21 |
---|---|
하다하다 이번엔 ‘리트윗 보안법’? (0) | 2012.02.21 |
세종에게 물어라! (0) | 2012.02.21 |
애인에 빠진 국방장관 탓?...알고보니 대통령 짓...레인보우워리어호 폭파사건 (0) | 2012.02.20 |
이명박의 ‘말하지 못할 사연’과 駐美대사 전격 경질 (0) | 2012.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