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국정원 대수술, 대통령이 결단하라

道雨 2013. 6. 21. 12:40

 

 

 

      국정원 대수술, 대통령이 결단하라 
[특집] MB 집권 뒤 독대 부활, 측근 원세훈 투입으로 ‘정권 보위 기관’ 회귀 가속… 국내 파트 분리, 수사권 검경 이관, 국회 정보위 권한 강화 등 쇄신론 고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최근 잇따라 야당 의원들에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아무도 받아주질 않는다. 딱 한 명, 유일하게 한 명이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원세훈 원장이 ‘지금처럼 계속 오래 끌고 가면 민주당도 좋을 게 없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더라.”

 

5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이 대목에서 황당하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뭐가 좋을 게 없다는 건가’를 묻자,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서 민주당도 고소·고발당한 게 있으니 좋을 게 없다는 얘기인 거지”라고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의원이 누구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 의원은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국정원을 상대하는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다.

 

 

»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건물 청사.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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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원세훈, 믿는 구석 있나

 

원세훈 전 원장의 화법에서 ‘이런 식이면 너도 재미없다’는 협박과 으름장이 통할 거라는 생각이 엿보인다. 야당을 무시하는 태도다. 게다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풍기는 듯한 인상도 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충복’인 그가, 퇴임한 이 전 대통령을 믿고서 이런 이야기를 할 리는 없다. 그렇기에 음모론자들은 그가 박근혜 정부에도 줄을 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며 지난해 대선 직전 터져나온 ‘댓글 사건’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만 보면, 분명 다급함이 묻어난다. 그는 지난 3월21일 국정원장직에서 퇴임했다. 이젠 야당의 고발로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세다. 검찰에선 국정원법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싸늘하다.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그의 집 앞마당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미국 도피’를 의심받았던 출국 계획이 세상에 알려지자, 일요일(3월24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국을 막겠다며 사람들이 공항에 모여들어 시위를 벌였다.

일본 여행을 가려다 신임 원장 임명이 거듭 지연되면서 늦춘 것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지만, 국정원 내에서도 “오비이락을 왜 자초하냐”는 푸념이 나온다. 원 전 원장이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검찰 고발 주체인 야당 의원들을 통해 국면을 바꿔보고 싶어 했을 법도 하다.

 

그는 분명 코너에 몰렸다. 국정원 직원이 지난해 대선 여론 ‘조작’에 개입했다는 사건에 더해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자료가 됐다는 의혹, 게다가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벌인 정치 공작 추정 문건도 터져나오면서, ‘원세훈 시대’의 국정원에 대한 각종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원세훈 국정원’은 잘못이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팟캐스트 드라마 <노무현은 안 죽었다>(국민TV 제작)에선, 벼락을 맞아 ‘노무현’과 영혼이 바뀐 ‘이명박’이 졸지에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국정원장 직접보고(독대)’를 부활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민간인 사찰 지시를 거부하는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흥신소 여사장을 국정원장에 앉힌 뒤 수시로 독대하며 사찰과 공작을 일삼는다는 설정이다.

 

실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때 폐지된 ‘국정원장 독대’를 부활시켰다. 이명박 정부 첫 국정원장이던 김성호 전 원장은 주 1~2회 독대를 했다. 2009년 두 번째 국정원장에 임명된 원세훈 전 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 전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반대의 방향을 택한 셈이다. 

 

 

독대, 밀실정치의 시작

 

이명박 대통령과 원세훈 전 원장은 수시로 독대하면서 국정원의 활동 내용 전반에 걸쳐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알려진 바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정보기관의 활동은 최종적으로 정부 수반(대통령·총리 등)의 통치행위를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보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취한 ‘독대’ 형식은 내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잃게 된다. 게다가 수요자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보의 수집·분석 방식이 모두 왜곡될 가능성이 생긴다. 일종의 ‘밀실정치’인 셈이다.

 

대통령이 정보기관에 의존하게 되면, 정부의 기능이 타격을 입기도 한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9년 한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며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를 받으면 권력의 속성이 벌어진다.

예컨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보고할 내용까지 국정원이 미리 파악을 한다. 그래서 보고서를 국정원으로 보낸다.

국정원은 각 부처에서 보고를 준비하는 내용을 다 파악하고, 그 보고 내용이 담고 있는 정책의 장단점 분석과 평가까지 덧붙여 국정원 보고서를 낸다. 장관들도 국정원 보고서가 미리 다 올라간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되면 장관들은 대통령이 이미 다 파악하고 평가를 한다고 생각하고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말씀을 받아적기에만 바쁘게 된다. 정부 각 부처가 다 무력화되고 자율성을 상실한다. 장관들이 위로 대통령만 쳐다보게 된다.

대통령이 만사를 다 아는 사람이 아닌데, 회의하다 무심코 한 말이 대통령의 지침이 되어서 내려간다. 국정이 망가지게 된다.

대통령이 한번 거기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대통령이 통치하는 게 아니라 국정원의 보고서가 국가를 통치하게 된다.”

 

» 부정선거진상규명시민운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5월23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인사권 무기로 조직 장악한 원세훈

 

독대도 문제였지만, 최측근인 원세훈 전 원장을 정보 수장에 앉힌 것부터 국정원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원 전 원장은 지명 뒤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가 체제 전복 세력의 침투 대상이므로 (국정원은) 정치 정보를 수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원세훈 라인이 추구하려던 정보 업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4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 자리를 지킨 ‘대통령의 남자’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국정원의 한 전직 직원은 “원세훈 원장 부임 뒤, 국정원이 갈수록 정권 보위기구가 돼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수시로 인사 조처를 했다. 이명박 정부 실세로 등극한 ‘영포 라인’이 선호도 높은 국외 파트를 독차지하는 식으로, 원칙도 없는 ‘인사 전횡’이 벌어졌다는 게 당시 인사를 지켜본 이들의 얘기다.

‘원칙 없는 인사’의 반복은 사고로도 이어졌다. 2011년 국정원 직원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 때 한 전직 국정원 간부는 익명으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건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짚었다. “전문성 있는 요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야 하는데, 원칙 없이 편의적이고 자의적으로 인사를 하다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원세훈 전 원장의 인사권은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가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직원들을 ‘해원(국정원을 해치는) 세력’이라고 몰아세워 내보냈다는 증언도 있다. 원 전 원장이 2009년 취임한 이후 많은 고위 간부들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징계 현황을 꾸준히 상기시키며 내부 통제에 나선 정황도 있다. 징계 사실을 국정원 내부에서 회람하는 ‘감찰회보’는 애초 분기별로 나왔다. 원 전 원장이 취임한 2009년부터 회보가 매달 발간된 데 대해, 국정원 직원들은 ‘일벌백계’를 노린 조리돌림으로 보고 있다.

 

원 전 원장이 유독 보안을 강조한 것도 국정원 장악 의도에서 비롯된 거란 풀이가 있다. 재임 시절 그는 직원들에게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외부에 알리지 말라. 음지에서 묵묵히 우리 일만 하면 된다”는 얘기를 곧잘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정보기관의 보안 유지는 중요하지만 정도가 심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 전 원장 시기 국정원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보안용지’가 대표 적인 예다. 보안용지는 국정원 내에서 출력을 할 때 쓰는 장당 50원 상당의 고급 용지다. 값이 비싼 이유는 종이의 약품처리 때문이다. 출력물을 국정원 밖으로 들고 나오려 하면 삐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나마 출력을 할 수 있는 경우엔 보안용지라도 쓰지만, 국정원 내부 망의 자료는 아예 출력이나 저장·전송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국정원 직원들은 외부에서 작성·출력한 문건을 들고 국정 원에 들어가 다시 입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불거진 박 원순 시장 등 관련 국정원 문건의 양식이 제각각인 이유가 이 때문이 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 다 지키면서 어떻게 정보활동 하나”

 

‘원세훈의 인사권’으로 추려진 국정원은 ‘원세훈의 보안 통치’ 스 타일에 적응하면서, 결국 원 전 원장의 뜻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 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내부 행사에 ‘원장 부인이 좋아한다’ 는 이유로 어느 중년 부부 가수를 특정해 초청한 적도 있었다고 한 다.

 

더 심각한 것은 국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한 정황이다. 원 전 원장 시기부터 국정원은 과거에 쓰지 않던 ‘종북좌파’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노동·사회·인권·종교 등 각 분야에서 정부 비판 성 향의 단체 100곳가량을 ‘종북좌파’로 규정한 리스트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시장에 대해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운운하는 국 정원 추정 문건과 같은 맥락인 것으로 보인다.

 

정보 수집 활동의 법 적 근거에 대한 인식도 무뎌졌다. 원 전 원장 시기 국정원에선 “정보 기관이 법을 다 지키면서 어떻게 정보활동을 하느냐”는 얘기가 공공 연하게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가 부임하기 전까지 국정원법 개정 등 입법을 통해 정보활동의 근거를 만들어보려던 노력은, 잠시 길을 비 켜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고, 원세훈 전 원장이 물러나고 남재준 원장이 취임했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정치 개입 우 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남재준 원장은 4월 중순 1급 실·국장 및 지부장의 80~90%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고, 국정 원 안팎에선 ‘원세훈 흔적 지우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 또 한 국정원 내 기득권 세력의 변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국정원에선 박정희 시대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 시대의 안전기획부를 거치면서 줄곧 ‘대구경북’(TK) 인맥이 주류를 형성해왔다고들 한다. 이 흐름이 일시적이나마 끊긴 것은, 지역으로 보면 ‘호남’, 성향으로 보면 ‘친DJ’로 불린 인맥이 국정원 요직을 차지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에선 다시 TK 인맥이 주류를 ‘탈환’했다. 다만, 이때 TK 인맥은 한 차례 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원세훈 전 원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 등 둘로 나뉘었고, 원세훈 전 원장의 임기 후반에는 ‘원세훈계’가 명실상부한 주류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새 정부와 새 원장이 들어서면서, 밀려났던 ‘최시중계’가 돌아오고 있다는 관측이다. 기득권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다, 정권과 짝을 이뤄서 특정 세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구조에선 ‘탈정치’는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 지난 4월30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을 태운 버스가 청사를 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국정원의 ‘정치 바람’은 최근까지도 진행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는 최근 인사를 둘러싸고 한 차례 소동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급 연구원 34명 중 17명에 대한 구조조정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경제·산업 분야 연구원 3명이 불확실한 이유로 연구소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연구소 쪽에서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보안 사고’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아 ‘정치 탄압’ 논란이 일었다. 결국 3명의 연구원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은 일단 백지화됐으나, 재계약 등 고용 조건에 대한 논의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 개혁을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은 업무 분야 조정이다. 현재 국내외를 상대로 정보활동을 하는 종합정보기관인 국정원의 기능에서, 국내 파트를 떼어내고 국외 및 대북 전문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정원의 국내 파트는 정당과 국회, 정부부처, 언론 및 사회단체 등을 담당한다. 국내 현안에 개입할 여지가 있으니 그 역할을 국무조정실 등에 나눠주자는 얘기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검찰 및 경찰에 넘겨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하고 있다보니 권력의 비대화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국정원을 상대하는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은 “국정원이 걸핏하면 보안 사항이라며 답변을 회피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국정원의 국회 보고를 정례화하되, 기밀 사항을 누설한 국회의원은 간첩죄로 다스리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응답하라, 박근혜

국정원이 제대로 국회의 견제를 받도록 국회 정보위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정원을 상대하는 정보위 소속 의원들도 “국정원은 걸핏하면 보안 사항이라며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국정원의 국회 보고를 정례화하도록 하되, 기밀 사항을 누설한 국회의원은 간첩죄로 다스리도록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이 참여한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는 지난 3월 △‘통일해외정보원’으로 명칭 변경 △수사권 분리 △정치 관여 금지 △국회 통제 강화 △도청 금지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개선안이건 그 실현 여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최종적인 보고를 받는 사람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국정원 관련 사건의 시발점이 된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은 박 대통령이 당선된 선거 과정에서 발생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14일 긴급기자회견에서 “저를 흠집 내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민주당의 터무니없는 모략으로 밝혀진다면 문재인 후보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거꾸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국정원의 모략이었다면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이야기도 않는다면, ‘수혜자의 침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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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우려는 자 그리고 찾아내려는 자 
 디지털포렌식-디가우싱·와이핑, 끝없이 진화하는 증거 확보-삭제의 ‘창과 방패’

 

 

 

“정부 문서는 갑·을·병 3등급으로 나눌 것. 갑급 문서는 제주까지, 을급 문서는 부산까지 옮기며 병급 문서는 소각할 것.”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으로 대규모 문서 파기가 이뤄진 건 1951년 1·4 후퇴 시기였을 듯하다. 1996년 7월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가 발견한 이승만 정부의 극비 문서 ‘정부소개대책관계서류’에는 당시 정부 부처였던 사회부의 정부 문서 삭제 지침이 자세히 등장한다. 북한군에게 자료를 넘기지 않기 위해, 이승만 정부는 1·4후퇴를 보름 넘게 앞두고 사회부·재무부 등 당시 8개 정부 부처로부터 피란 계획을 받아 이런 지침을 세웠던 것이다.

“수사팀이 들이닥치면 업무용 노트북을 바꿔치기해 수사기관에 내줄 노트북에 아무 파일도 없으면 의심하니까 일단 넘겨줘도 무방한 내용이나 파일을 깔아놓는다.” -한 전직 대기업 직원

 

저장장치에서 증거 확보하는 디지털포렌식

찢거나 혹은 태우거나. 디지털 자료가 등장하기 전까지 증거 삭제기법은 단순했다. 이 가운데에서도 태우는 것만큼 확실한 뒤처리는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문서 보안에 신경 썼던 이승만 정부는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뒤 이승만 대통령이 퇴진할 무렵 경무대(현청와대)에서 정부 극비 문서 대부분을 불태웠다. 집권하면서 남긴 불리한 자료를 태운 건 군사정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삭제 방식이 한껏 복잡해진 건 컴퓨터 시대를 맞으면서부터였다. 1990년대 정부는 행정 자료를 전산화했다. 컴퓨터와 플로피디스크가 등장했다.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가 민간인 1300명을 불법 사찰한 사실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은 서류 뭉치와 플로피디스크를 보안사에서 들고 나왔다. 그러나 종이에도 여전히 중요한 내용이 담겼다. 앞서 1980년대 중반 문서파쇄기가 사무실에 등장했고, 외환위기를 거치며 보안을 중요시하는 외국계 기업이 늘어나자 문서 파쇄 전문 업체가 국내에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디지털 증거’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컴퓨터 관련 범죄가 늘어나면서부터다. 검찰은 해킹, 인터넷 사기 등 범죄가 늘어나자 2000년 서울중앙지검에 컴퓨터수사부(현 첨단범죄수사부)를 설치했다. ‘디지털포렌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때쯤이다. ‘포렌식’(Forensic)은 지문감식·유전자(DNA)수집 등 수사 또는 법정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쓰는 전반적인 기술을 뜻한다. 디지털포렌식은 이 가운데에서도 컴퓨터·휴대전화·저장장치 등 디지털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 수사 기법을 이르는 말이다. 저장장치에 남겨진 디지털 흔적 속에서 삭제한 전자우편, 휴대전화 속 사진 등의 70~80%를 되살려내 수사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드디스크, 기업용 서버 등 저장장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방식도 달라졌다. 그러나 증거를 숨기는 방법으로는 자료를 지우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압수수색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한 전직 대기업 직원은 “수사팀이 들이닥치면 업무용 노트북을 바꿔치기해 수사기관에 내줄 노트북에 아무 파일도 없으면 의심하니까 일단 넘겨줘도 무방한 내용이나 파일을 깔아놓는다”고 말했다. 2008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경기도 과천 삼성SDS e데이터센터에 들이닥치자, 담당 직원이 서버 자료를 삭제하기도 했다.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전산시스템실의 디가우서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사찰 문건을 삭제했다는 의혹이 일자, 2010년 10월8일 총리실 관계자가 이를 반박하기 위해 디가우서를 시연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디가우싱 전문업체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시스
물리적으로 뭉개버리는 디가우싱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삭제하는 이른바 ‘안티포렌식’ 기술이 퍼지면서 수사기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안티포렌식은 삭제한 자료를 복원해내는 디지털포렌식의 원리를 파악한 뒤, 증거를 복원할 수 없도록 난해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하드디스크의 경우, ‘물리적 방식’과 ‘소프트웨어 방식’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안티포렌식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물리적 방식은 하드디스크 등 저장장치를 지능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디가우싱’(Degaussing)이다. ‘디가우서’라고 부르는 강력한 자력을 내보내는 장비에 하드디스크를 넣어 철가루 성분이 있는 저장공간을 망가뜨리고, 플래터라는 부속을 못 쓰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 밖에 하드디스크 자체에 구멍을 뚫거나 갈아버리는 파쇄기도 있다. 실제로 디지털포렌식을 통하면 강물에 던져버린 컴퓨터나 망치로 부순 하드디스크에서도 자료 내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하도록 저장장치를 난수나 0으로 덮어쓰는 이른바 ‘와이핑’(Wiping)도 있다. 실제로 컴퓨터 저장장치에서 파일을 삭제해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와이핑은 그 흔적을 불러낼 수 있는 연결고리를 흩뜨리는 작업이다. 삭제하지 않고 그림파일 등에 암호화한 데이터를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등으로 삭제 효과를 얻기도 한다. 오사마 빈라덴이 지령을 내릴 때 전자우편을 통해 사용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기상천외한 안티포렌식 방식은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장진수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인터넷에서 파일 영구삭제 프로그램을 검색해 ‘이레이저’(Eraser)라는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컴퓨터 9대에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의 파일을 깨끗이 지운 것으로 나온다. 그는 디가우서 장비가 있는 업체를 방문해 디가우싱 작업도 했다. ‘물리적 방식’과 ‘소프트웨어 방식’을 모두 사용해 증거인멸을 한 것이다. 최근 검찰이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을 수사하면서 서울경찰청을 압수수색할 때 관용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자료를 삭제한 박아무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증거분석팀장도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와이핑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컴퓨터수사부 검사로 근무했던 최득신 변호사(법무법인 평강)는 “디지털포렌식과 안티포렌식은 창과 방패 관계이기도 한데 요즘에는 대기업 등에서 안티포렌식 전문가 양성에 나서면서 삭제한 자료를 복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에서 안티포렌식 전문가 양성 나서

그러나 창과 방패는 함께 발전한다. 독일에서 1989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동독 비밀경찰(슈타지)의 비밀문서 복구 작업을 보면 그렇다. 당시 독일은 동독 비밀경찰이 이미 파쇄한 각종 인권탄압 내용이 담긴 약 4500만 건의 비밀문서를 인력을 동원해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400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이던 이 작업은 1996년 독일 베를린 프라운호퍼산업연구소(IPK)가 ‘이 퍼즐러’(E-Puzzler)라는 복구 장치를 개발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초정밀 스캐너로 종이의 색상·내용·두께 등을 파악해 컴퓨터가 조각을 맞추면서 복구 속도를 앞당겼다. 영원한 삭제가 없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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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도 끌어내린다
 미 CIA가 국무부 요구로 보고서 변경·조작한 ‘벵가지 스캔들’로 오바마 대통령 탄핵 위기… 미국은 정부기관의 기록 은폐, 엄중하게 처벌해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증거기록을 관련자들이 삭제한 사건은 미국에서도 일어났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들 수있다. 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상대 후보 캠프에 대한 불법도·감청 사건이 불거지자 수석보좌관과 사건 은폐를 모의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이 담긴 대통령 집무실 녹음기록을 워터게이트 특별검사가 요구했는데 녹음기록의 일부(18분30초)가 삭제된 상태로 제출됐다. “실수로 사라졌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고 닉슨의 사퇴를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테러 위험 경고 부분 삭제

최근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벵가지 스캔들’ 때문에 탄핵 위기에 몰려 있다. 2012년 9월11일 리비아 벵가지 미국 영사관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 등 4명이 숨졌다. 미국 국무부는 피습 사건 보고서에서 알카에다와 관련된 테러단체의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과 미 중앙정보국(CIA)이 사전에 수차례 테러 위험을 경고했다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가해 결국 CIA가 보고서를 변경·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후 TV토크쇼에 출연해 알카에다에 의한 테러가 아니라 반이슬람 비디오로 촉발된 시위대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결국 국무장관 인선 과정에서 낙마했다. 현재 공화당 정치인과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대선을 2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정치적 부담을 느낀 오바마 정권이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이라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관련자에 대한 의회 청문회 조사와 함께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정치적 책임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정부기관의 기록 은폐를 중한범죄로 판단해 엄중하게 처벌한다. 미연방 형법 제1519조는 “수사 또는 미연방 정부 기관이나 부서가 관할하는 사안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지연·방해하거나 영향을 미칠 의도로 고의적으로 기록이나 문서, 유형물을 변경·파괴·훼손·은폐·은닉·조작하거나 허위 기재하는 자는 20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는 법으로 국민을 강제하고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므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의 권한 행사가 합법적으로 입안·시행되는지 끊임없이 감시·견제해야 하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 기록을 토대로 그 합법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문서 등 국가기록의 보존과 보호는 국가기관의 중요한 법적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를 어기고 불법적으로 정부기록을 파괴·훼손하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이러한 범죄는 주로 권력자가 자신의 은밀하고 비도덕적인 범죄행위를 감추려는 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책임자 승인 없이 변경 못하도록

이제 우리나라도 법을 개정해야 한다. 첫째, 정부기관에 컴퓨터 하드 기록 등 모든 유·무형의 기록과 정보를 일정 기간 보존할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둘째, 국가기록과 정보의 변경·삭제·파기 절차를 법제도화해 책임자의 승인 없이 함부로 실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기록을 무단으로 삭제하면 현재보다 훨씬 가중된 형으로 처벌해야만 국가가 저지른 범죄가 은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행선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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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상실의 나라
 “모든 데이터는 분석이 끝나면 일체 폐기하는 게 관행”이라는 경찰청, 국가기관 중 50개가 디가우서 보유… ‘기록물관리법’ 있지만 범죄 저지르고도 문제되면 삭제하면 돼

 

 

지난 5월20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를 19시간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 수서경찰서가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할 때 경찰 수뇌부가 수사를 축소하도록 외압을 행사했는지 밝혀내기 위해서다.

 

» 2010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2013년 경찰 수뇌부의 국정원 댓글 수사 축소 등 국가권력이 저지른 범죄를 공무원이 증거인멸로 비호하는 똑같은 불법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종이파쇄기에서 분쇄된 문서의 모습. 한겨레 윤운식 기자

“바깥에 나가면 민감한 자료가 있으니까 무조건 컴퓨터를 갈아엎어라. 바닷물에 30분 동안 넣었다가 빼면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확실하게 해야 한다. 어설프게 하면 다 나온다더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독자적으로 하드디스크 삭제”

오전 9시50분 검찰이 서울경찰청에 들이닥쳤다. 사이버범죄수사대의 박아무개 증거분석팀장은 안티포렌식 삭제 프로그램 ‘무오’(MooO)를 관용 컴퓨터에 돌리고 있었다. 의미 없는 암호나 문자를 반복해 덮어씌워 데이터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이다. 압수수색 현장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되자 박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사를 방해할 의도가 아니다. 실수로 지웠다.”

서울경찰청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2월13일 수서경찰서의 의뢰로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하면서 서울경찰청의 컴퓨터 5대를 사용했는데, 박씨의 컴퓨터도 그중 하나였다. 디지털분석 책임자인 박씨는 지난 2월 증거분석팀장으로 임명돼 수사 초기 경찰의 축소·외압 의혹에는 직접 관련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컴퓨터에는 사이버범죄수사대 분석관들의 분석 보고서와 언론 및 국회 질의에 대한 답변 자료 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박 팀장이 독자적으로 하드디스크 일부를 삭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1월20일에도 서울경찰청은 국정원 사건의 증거분석 자료를 삭제했다. 지난해 12월16일 서울경찰청은 “국정원 여직원이 (정치 관련) 댓글을 작성한 흔적이 없다”고 중간수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 그리고 서울경찰청 컴퓨터에 들어 있던 증거분석 자료를 전부 없애고 초기화했다. 지난 5월20일 검찰이 압수수색한 컴퓨터에서 원데이터를 발견할 수 없는 이유다. 서울경찰청은 “모든 데이터는 분석이 끝나면 일체 폐기하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

국가권력이 저지른 범죄를 공무원이 증거인멸로 비호하는 똑같은 불법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증거를 인멸해 ‘윗선’이 저지른 국가범죄를 무마하는 ‘꼬리자르기’가 가능한 까닭이다. 결국 범죄 수사권과 형벌권을 지닌 경찰이 국가의 사법행위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곡차곡 쌓인 ‘국가범죄의 성공적 경험’이 낳은 비극이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2010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이었다.

2008년 7월 국무총리실 직제가 개편돼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겼다. 2010년 6월 지원관실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민간인 김종익(당시 56살)씨를 불법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총리실이 이인규(54) 공직윤리지원관 등 직원 4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자 검찰에서 곧 압수수색이 들어올 듯했다. 지원관실 설립에 관여한 이영호(46)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진경락(43)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을 불렀다. “바깥에 나가면 민감한 자료가 있으니까 무조건 컴퓨터를 갈아엎어라. 바닷물에 30분 동안 넣었다가 빼면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 최종석(40)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에게도 같은 주문을 했다. “확실하게 해야 한다. 어설프게 하면 다 나온다더라.”

“내가 한 일이 범죄가 될지 정말 몰랐다.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다. 공무원이 기록을 파쇄하고 삭제하는 일은 늘상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

바다에 빠뜨려라, 하드디스크 부숴라

2010년 7월4일 밤 11시16분 진경락 과장은 부하 직원 장진수(37) 주무관에게 전화한다. “컴퓨터에서 자료를 지웠다고 하더라도 복구되면 오해를 살 수 있다.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점검1팀의 컴퓨터가 복구되지 않도록 조처하라.” 다음날인 7월5일 아침 6시에 장 주무관은 출근해 인터넷에서 삭제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1팀원의 컴퓨터 데이터를 삭제했다.

7월6일 진 과장은 검찰에서 1회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돌아온 그는 장 주무관에게 다시 지시한다. “자료를 더 확실히 지워라.” 다음날인 7월7일 장 주무관은 ‘디가우싱’(강한 자력으로 파일을 복구 불가능하게 파기하는 것) 업체를 수소문해 경기도 수원의 한 업체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4개를 디가우싱했다.

검찰은 이틀 뒤인 7월9일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다. 국무총리실이 수사를 의뢰하고 특별수사팀을 꾸린 지 나흘, 증거인멸을 주도한 진경락 과장을 조사한 지는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늑장 압수수색은 불법사찰 관련자들이 증거를 모두 없애도록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관용 컴퓨터에 삭제 프로그램을 돌리고 디가우싱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이 범죄가 될지 정말 몰랐다.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다. 공무원이 기록을 파쇄하고 삭제하는 일은 늘상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이하 기록물관리법)을 보면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면 징역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는데 말이다. “그 법이 있다. 하지만 정식 공문으로 번호를 받지 않은 컴퓨터 파일은 기록물로 관리되지 않는다. 공무원 개인이 컴퓨터 작업을 해서 기록물을 만들어내는데, 그건 공문서로 보지 않는다. 공문으로 등록해야 하는 자료지만 그냥 놔두는 경우도 있다. 등록하면 목록에 뜨고 국회에서 자료를 요청하고 골치 아프니까. (공문) 등록도 안 하고 문제가 생기면 싹 없애는 일이 있다.”

장 전 주무관과 함께 법정에 선 이영호 전 비서관, 최종석 전 행정관, 진경락 전 과장 등도 디가우싱을 ‘정당행위’라고 주장했다. 근거 법령으로 국가정보원의 ‘정보시스템 저장매체 불용처리지침’을 들었다. 정보시스템을 폐기·교체·반납하거나 수리하려고 외부로 반출할 경우 저장된 자료를 삭제하도록 국정원이 규정한 것이다. 2006년에 만들어졌고 그 뒤 국방부 등 50여 개 공공기관이 디가우서를 사들였다. 총리실에도 1대가 있다.

피고인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자료삭제는 국정원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지원관실에서 보관한 공직감찰, 인사검증 등의 자료가 외부에 유출됨으로써 발생할 사회적 혼란이 우려됨에 따라 적극적 보안 조처로서 그 자료의 삭제를 지시했다. 법령에 의한 정당행위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임박한 시점에 특정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분리해 외부 업체에서 은밀한 방법으로 디가우싱한 것은 국정원 지침을 준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개인 메일”이라며 첩보 지시 문서 삭제

일반적으로 ‘자료를 삭제했다’는 주장은 공무원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으로 활용된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는 정보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경찰 문건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 문건은 서울경찰청 정보계 이아무개 경감이 경찰 내부망(인트라넷)을 통해 일선 경찰서 정보관에 내려보낸 것이었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경찰청은 “문건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가 “상부의 결재를 받지 않은 개인 메일”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국회에서 문건을 요청하자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은 “삭제해서 없다”고 했다. “그 친구(경감)가 서울(경찰)청에서 워드를 작성해서 그것을 전자문서로 보냈기 때문에 나중에 삭제하게 되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 첩보·정보 보고는 등록 대상 기록물에서 제외하고 열람 뒤 파기할 수 있다는 경찰청 훈령을 근거로 내세웠다. 참여연대는 공적 업무 과정에서 발생한 기록물을 무단으로 폐기한 것은 기록물관리법 위반이라며 강 전 경찰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업무 중에 생산된 문서를 기록물로 관리하지 않는 경찰청의 업무 관행이 잘못된 것이다.” 참여연대가 이렇게 주장했지만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최근 국정원 댓글과 관련한 증거인멸 사건에서도 경찰은 같은 주장을 펼친다. “(정부의) 온나라 시스템에 올라가는 공문서에 대해선 사무관리 규칙이 있지만 경찰청 자체망에서 공유하는 자료나 개인이 작성 중인 자료에 대해선 따로 규정이 없다. (이번에) 삭제된 자료는 온나라 시스템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서울경찰청 관계자)

이영남 전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박사)은 “기록물의 무단 폐기”라고 단언했다. “중요 기록물을 압수수색하기 전에 공무원이 무단으로 폐기한다는 게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다. 국가기록원은 왜 가만히 있나? 고발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도 직무유기가 아닌가?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경건 서울시립대 교수(행정법)는 “기록물 관리에 맹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go.kr’ 같은 공적 전자우편을 사용할 때는 기록물로 관리하고, 메모도 기록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청와대가 서울 용산 참사를 덮기 위해 경기도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업무 지시를 전자우편으로 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업무용 전자우편을 기록물로 하나도 보관하지 않았다.

스웨덴에서는 공식 등록된 기록물이 아니더라도 공공업무와 관련해 생산·수취한 것이라면 모두 공개해야 한다. 공식적인 번호를 부여받지 않았다고 공무원이 임의로 폐기하는 일은 없다. 유럽연합(EU)에서도 공공기록물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공공기관이나 그 연관 기관에서 생산·수취한 모든 기록된 정보라고 정의하고 있다.

» 국내에서 일어난 대표적 증거인멸 의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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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자신은 성립 안 되는 면책조항

증거인멸죄에서도 우리나라는 여타 나라와 다른 예외조항이 있다. 자신이나 친인척의 범죄와 관련한 증거인멸은 형사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해 범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155조) 피고인의 방어권과 친족 간의 정의를 고려한 면책조항이다.

문제는 이것이 경찰 등 공무원에 의해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전북 전주에서 부모와 형을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박아무개(24)씨의 범행을 경찰관인 외삼촌 황아무개(42) 경사가 사건 직후 알고서 증거인멸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황 경사는 감봉 1개월 처분만 받았다.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증거인멸 교사죄를 비껴간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에서도 진경락 전 과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기획총괄과장으로서, 점검1팀의 불법 또는 비위 행위가 밝혀질 경우 징계 대상이나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증거를 인멸했다.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이 아니다.” 이영호 전 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도 마찬가지다. “자료 삭제 지시는 피고인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것으로 증거인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최강욱 변호사는 “자신의 범죄라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공무원이 뻔뻔하게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국가가 범죄조직이라고 인정하는 꼴이다. 공무원에 대한 기본 신뢰, 국가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선 변호사는 “국가가 범죄를 저질러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관련 자료를 폐기해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증거인멸죄면책조항은 앞으로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판사 출신인 이용구 변호사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공무원이 생산한 자료는 국가의 소유라서 마음대로 훼손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특별 규정을 두는 게 필요하다.” 최강욱 변호사도 “공무원의 증거인멸을 가중처벌 하도록 법을 개정할 때가 됐다”고 했다.

 

미국에선 가장 무거운 것이 증거인멸죄 상한

증거인멸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하지만 증거인멸을 지시한 진경락 전 과장과 최종석 전 행정관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이영호 전 비서관도 지난 5월24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지만, 이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형법에선 증거인멸죄에 다양한 종류의 벌칙을 둔다. 기소된 범행의 법정형 중 가장 무거운 것이 증거인멸죄의 상한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살인사건에서 사법방해 행위가 있으면 사형 또는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 살인미수라면 20년 이상의 구금이 가능하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MB가 남긴 건 ‘공감코리아’

기록물관리법 버젓이 있지만

 

1999년 기록유산 보존과 투명 행정을 위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51년 만의 일이었다. 2007년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어렵게 만들어진 법망 사이사이로 여전히 중요한 기록이 새어나가고 있다.

기록물관리법에는 공무원이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이 법에 따라 처벌된 사례는 드물다. 전문가들은 주무 기관인 국가기록원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승휘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국가기록원장을 임명하는 등 정치적으로 독립돼있지 못한 구조”라며 “기록 폐기를 검찰에 고발하는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특정 부서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구로 중앙정보국(CIA) 등에 대해 기록물 관리 실태를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법은 되레 후퇴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 때, 기록 보존의 안정성을 위해 대통령기록관의 독립성 확보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를 실현할 방편 중 하나로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대통령기록관리위원회 설치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단 한 번도 운영되지 못한 대통령기록관리위는 폐지되고, 기록물관리법상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로 격하됐다. 또 정부는 2010년 ‘행정 효율’을 이유로 보존 기간 1년·3년에 해당되는 기록물에 대해 기록물평가심의회 심의를 생략하고 폐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물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으나 반대여론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전 대통령이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은 공개·비공개자료 외에 대통령 및 대리인만 열람할 수 있는 지정기록물이 따로 있다. 정치 보복을 우려한 임기 말폐기, 임의 유출 관행을 막고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게 하려는 제도다. 대통령은 지정기록물 보호 기간을 15년 이내(사생활 관련은 30년 이내)로 정할 수 있으며, 봉인을 풀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루어지거나 법원 영장이 발부돼야 한다.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된 이 전 대통령의 기록 중 비공개 기록은 한 건도 없다. 대신 중요 기록을 지정기록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장정욱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지정기록물 목록도 비공개이기 때문에 중요 기록이 보존됐는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최근 이 전 대통령이 남겼다는 1087만여 건의 기록물을 분석한 결과, 진짜 기록이라고 평가할 만한 자료는 48만여 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기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책 홍보를 위한 정부 웹사이트 ‘공감코리아’ 기록물 367만여 건이었다. 이를 포함해 업무와 연관성이 적은 청와대 경호처와 자문기관 기록 102만여 건, 물품 관리 등 개별 업무 시스템기록 329만여 건, 정부 발간물 및 홈페이지 기록 등을 빼고 나면 48만여 건만 남는다는 설명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