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다이빙벨(Diving Bell) - 질곡의 역사를 일깨우다. 다이빙벨, 왜 철수했는가

道雨 2014. 5. 6. 10:57

 

 

 

 

다이빙벨(Diving Bell) - 질곡의 역사를 일깨우다
이종인“죽지 않고 살아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신상철 | 2014-05-04 17:30:1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철수한 후, 조중동과 종편을 비롯, 수구언론들은 "다이빙벨의 신화는 없다"며 연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비난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비난의 수위는 다이빙벨을 넘어서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천안함은 좌초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하여 국회 국감장에서의 발언까지 문제를 삼기에 이릅니다.

저는 2010년 천안함 사고 발생이후, '좌초'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이종인 대표를 알게 되었으며 4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형님아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이 법정에서 다루어지게 된 이후 알게 된 법조인, 언론인, 파워블로거 분들과 조그만 모임을 만들어 두세달에 한번씩 조촐하게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때로는 차디찬 물속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영혼을 달래고, 이땅에서 삶의 고통을 이어가고 계실 분들의 심정을 나누고, 아직도 진실의 늪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많은 편린들을 소주 한잔에 담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아직도 그 시간, 그 순간에 발목잡혀 단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곤 합니다.


중2 시절 플라스크의 폭발물이 터져 피투성이가 된 이종인 대표

'폭발'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본 사람만큼 잘 아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여름 날 해가 기울 무렵, 인천연안부두 조개구이집에서 이종인 대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폭발을 직접 경험하였던 얘기가 무척 흥미로와 아직도 머리속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

이종인 대표는 중학시절부터 화학실험에 관심이 컸다고 합니다. 중학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실험을 섭렵한 이종인 학생은 급기야 고등학교 과정에 나오는 화학실험들을 하게 됩니다. 같은 또래들과는 급이 달랐던 터라 고등학생인 선배들과의 실험모임에 참여를 했지만, 거기에서도 쫓겨나 실험실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플라스크등 실험기구들을 들고 자신의 집 창고 옆 작은 골방에 실험실을 차려야 했던 이종인 학생은 어느날 아질산염을 재료로 플라스크에서 아주 작은 폭발이 일어나는 실험을 하게 됩니다. 얼음을 준비하여 온도를 상온 4도 이하로 맞추어야만 폭발을 억제할 수 있는 까다로운 조건에 실험에서 이종인 학생은 잠깐의 실수로 온도조절에 실패합니다.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자욱한 연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고, 이종인 학생의 눈 앞에 처참한 상황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머리에서부터 따뜻한 액체가 흘러 과 코와 입을 적시며 비닐 장판위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내더란 겁니다. 피였죠. 옷을 벗어 피나는 곳을 막고 마당으로 걸어나오니 집 안의 사람들은 굉음 소리에 놀라 모두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큰 길로 나선 이종인 학생은 피투성이의 몸을 보고 피해서 가는 차량들가운데 그래도 멈춰서준 택시 하나를 잡아타고 인천의 어느 병원에 가서 입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종인 대표가 중2시절 직접 겪었던 '폭발의 위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천안함 국감장인 국회에서 그 이야기의 일부를 말했다가 '황당발언'으로 찍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신 대표, 이게 폭발이야"

2012년 1월, 인천 앞바다 자월도 해상을 지나던 두라3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습니다. 휘발유 운반선인 두라3호는 인천에서 휘발유를 모두 내려준 후 출발, 자월도 앞바다 해상을 지나며 선창내에 남아있는 가스를 배출하는(Gas Free) 작업을 하던 중, 원인모를 스파크에 의해 폭발이 발생 선창의 구조물이 모두 날아가고 선체를 반토막 내는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사고 직후, 인천의 해경은 알파잠수 이종인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두라3호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사고 수습과 함께 시신인양 작업을 합니다.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 현장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하여 차마 말로서 설명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사진 한장과 함께 이종인 대표는 제게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신대표, 이게 폭발이야. 이렇게 무서운 거라구.."

천안함 사건, 2010년 3월 26일 그날 밤 초계근무 중이던 천안함에 다가온 적의 잠수함은 한발의 어뢰를 발사하였고 그 어뢰는 정확히 천안함 3미터 하부에 이르러 폭발하면서 천안함이 반토막이 났다고 하지요. 그러나 천안함에는 폭발의 흔적을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폭발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아야 할 생명체에서 역시 폭발의 단서를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360kgTNT 규모의 폭발로 선체가 반토막 납니다. 그리고 2~3천도의 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침실 밖을 나와 때마침 폭발 지점에 계셨던 어느 한 분은 그 엄청난 충격파도 견디고, 수천도의 열에도 무사하셨으나 배가 반파된 후 해수가 밀고 들어오자 그 때 익사하셨다고 합니다. 천안함 희생자 46인의 시신검안 결과 '모두 동시간대 익사' 그것이 천안함의 진실이며 본질입니다.


"형님, 마당에 엎어져 있는 그 다이빙벨 사진 좀 빨리 보내주슈"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직후, 제가 제일 먼저 올렸던 글이 " [세월호] Air Pocket -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 였습니다. 사고원인 분석에 앞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단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고, 천안함 사고와는 달리 완전이 뒤집어져 전복한 세월호의 경우 에어포켓의 발생과 유지가 더 유리했다고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이종인 대표께서 보내온 다이빙벨의 사진과 함께 저는 정부와 관계기관에서 즉각 이종인 대표께 연락하여 도움을 청하고 다이빙벨을 사고현장에 투입해 줄 것을 요청하였지요. 그 글은 다음 아고라에서 5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함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어느 기관으로부터 연락이 없자, 이종인 대표는 스스로 자비를 들여 다이빙벨을 싣고 진도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몇일을 머무르는 동안 찬밥신세였던 이종인 대표는 인천으로 복귀하기에 이르렀으나 실종자 가족분들과의 대화에서 해경청장이 다시 다이빙벨 투입을 요청함에 따라 다시 진도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후의 과정에 대해 우리는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해경이 얼마나 비협조적이었는지.. 그리고 수심 30미터까지 늘어뜨린 다이빙벨을 유지하는 케이블에 난 절단의 흔적, 다이버가 입주 중인 현장에 속도를 내어 충돌접안을 한 해경정, 다이버들의 체력이 소진되었음에도 후속 다이버들을 투입하기를 거부한 해경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이종인 대표가 철수하는 날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타던 중, 오후 무렵 겨우 통화가 연결 되었습니다. 저는 저간의 사정에 대해 인터넷 뉴스로, 동영상으로, 방송으로 그리고 알파잠수 본사 직원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종인 대표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05분간 수중 작업>을 가능하게 하고 잠수사들이 수중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던 다이빙벨, 그 이상 그 장비의 성능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구조를 위해 투입되었던 다이빙벨의 신화가 실패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해난 사고시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며, 얼마나 빠른 시점에 어떠한 초동조치가 있어야 하는지 소상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다이빙벨의 신화, 그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질곡의 역사 한 가운데에서 무지한 사람들이 겪어야만 했던 왜곡된 사고와 의식을 일깨우는 아이콘이 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1003&table=pcc_772&uid=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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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인은 다이빙벨 잠수시켜놓고 왜 철수했는가


[남은 의문점] 해경 경비정 충돌 “죽을 것 같아 나왔다…가족에겐 죄송” vs “무리한 주장”


[미디어오늘 / 조현호 기자 / 2014-05-05]


세월호 침몰 해역에 투입돼 다이빙벨 잠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1시간여 만에 철수한 것과 관련해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종인 대표는 철수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구조에 실패한 것을 시인하고 실종자 가족들에 사과하기도 했으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인천의 사무실로 복귀한 뒤 “더 있다가는 생명에 위협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 다이빙벨 잠수 순간 해경 경비정이 바지선을 충돌한 사건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해경은 경비정이 바지선을 들이받은 것은 실수였으며, 이 대표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주장은 무리하다고 반박했다.


1. 왜 동승한 기자들과 본사에도 성공이라고 한 뒤 곧바로 철수한 것인가

 

이 대표는 지난 1일 새벽 다이빙벨을 사고해역에 투입한 이후 선체진입 및 잠수 75분, 감압 및 상승 30분 등 모두 105분을 잠수사와 함께 물 속에 투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직후 현장을 지켜본 기자들과 주변 분위기는 모두 성공한 것으로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이 대표는 알파잠수기술공사 본사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성공사실을 알렸다. 남은 것은 실제로 구조수색을 통해 실종자를 발견하고 수습하는 일만 남았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중에 다이버들과 한 차례 더 투입하겠다고 기자들과 본사에도 알렸다. 이를 들은 기자들은 아침 8시경 알파잠수 바지선(한국수중기술)에서 모두 철수해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이 대표는 철수를 결정했다. 실종자 가족 뿐 아니라 많은 기자들도 황당해했다고 한다. 왜 곧바로 철수할 것이면서 기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일까.

이 대표는 지난 2일과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자들을 보낼 때만 해도 계속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며 “철수결정은 그 이후에 한 것”이라고 밝혔다.


2. 해경정의 충돌…“생명의 위해를 느껴 철수한 것” vs “실수였다”

 

그렇다면, 기자들을 내보낸 이후 갑작스런 상황 변화가 생긴 것은 무엇이었는지, 혹시라도 그 전에 말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인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이 대표는 “더 있었다가는 나와 직원, 선원, 다이버들의 위험이 가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철수했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다이빙벨 작업 과정에서의 해경정이 충돌한 것을 들었다. 실제로 당시 국민TV 등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당일 새벽 5시경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을 태우러 온 해경 P-62정이 접안하는 과정에서 해경정 뒷부분이 알파팀 바지선에 부딪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는 목소리도 일부 들리기도 했다.

이 대표는 1일 해경정 접안 당시 촬영된 팩트TV 영상에서 “아니 왜 그러지, 왜 배를 갖다 박지. 옆에 칠라고 그러는거 아냐”라고 말한 장면이 나온다. 이 대표는 “(잠수부들에게) 미안해요. 올라와서 앉아 있어요 잠수 안할 동안에라도”라고 말했다. 이후 이 대표는 인터뷰에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때는 서운했고 두렵기도 했다”며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안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주변에서 많이 걱정을 했다. 조금 아까도 이거 지금 배를 운영한다는 거는 해경 전체에서 알고있을 텐데. 다이빙벨도 딴 친구들이 하고 있고. 근데 배를 갖다가 그 속도로 평상시에는 그 속도로 안 돼요. 그런데 벨 있는 쪽으로 꼭 일부러 하듯이..그럴 리는 없겠지만”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방송된 국민TV <뉴스K>

 

그는 “아니 그러고 다이빙 하는 데는 모든 배들이 서행하게 돼 있다”며 “꼭 붙여야 되면...접안시켜야 된다면 장소에서 좀 떨어진 데로. 그게 국제적인 룰이에요. 국제적인 룰인데, 배 엔진 걸고 고속으로 오는거 봤죠”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일 새벽 투입한 다이빙벨이 75분 잠수에, 30분 감압 및 상승 등 작업을 마치고 올라오던 중 갑자기 해경정이 다이빙벨 쪽으로 달려와 우리 바지선을 들이받았다”며 “다이빙벨 작업 현장 바로 옆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벨 투입이 성공한 것으로 보고 인천의 사무실과 기자들에게 이날 중 한 차례 더 투입해 구조 수색을 한다고 밝혔으나, 기자들이 모두 철수하고 나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이빙벨 잠수성공만 가지고도 기자들 앞에서도 그런 만행을 서슴치 않는 집단이라면, 작업을 계속해서 어떤 성과라도 나올 시라면 더 끔찍한 행동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살 수 있을때 빠져나가자는 생각을 굳혔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해경정이 작업하고 있는 곳을 지나쳐 접안한 것은 우리 다이버를 위협한 것”이라며 “일반인이 다이빙할 때도 멀리서 서행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 룰인데, 바지선에 부딪혀놓고도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없었다. 실종자 가족이 날 욕하고 탓할지 몰라도 해경이 저렇게 나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온갖 비난과 사회적 매장을 당하더라도 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표는 해군과 해경 간부가 철수 결정을 내릴 무렵 찾아와 ‘작업을 안할 것이면 배를 빼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기자들이 철수한 뒤 오전 10시경 해군소장(부장)과 이춘재 해경 국장이 숙소로 찾아와 ‘작업을 해야하니 작업 안할 거면 빨리 배를 빼라’해서 나는 ‘그런 얘기를 안하셔도 빼려 했다’고 했다고 한 뒤 11시에 철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알파 바지선에 접안한 P-62정을 기다리던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 사람의 희생자라도 더 찾고자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현장에 투입된 팀을 왜 방해하겠느냐”며 “그날 밤 파도가 높아 경비정이 계류차 접근하다 순간적으로 높은 파도에 밀린 것 뿐인데, 이를 고의로 밀어붙이면 뭐라 하겠느냐”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반박했다.

이 국장은 “지금 이 순간 현장에서 수색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모든 국민들의 여망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실에 파견된 박세화 해경 본청 총경도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P-62정이 당시 잠수작업을 마치고 지휘함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경비정장이 평소 하던대로 언딘바지선 우현 선미 쪽에 두차례 걸쳐 계류하려 했으나 파고가 높고, 조류가 강해 현장 계류에 실패해 조류 방향에 역행하는 방법으로 접안을 시도하기 위해 경비정을 알파선수 쪽으로 돌려 재차 계류를 시도하던 중 다이빙벨 작업 중인 알파바지선 불빛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쪽으로 접안하게 됐다”며 “(향후 다이빙벨 잠수사의 상태에) 특별한 이상증세도 없었다”고 밝혔다. 박 총경은 “경비정장은 실수였다고 한다”며 “생명에 위협을 느껴서 철수했다는 주장은 무리한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또한 해군소장과 이 국장의 ‘배를 빼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 박 총경은 “그런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라 구조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한 것도 없고 해서 우리측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향을 물어본 것이지, 작업 안할 것이면 빼라는 취지는 아니었다”며 “경비국장과 해군 부장이 ‘할 거냐, 말거냐’는 취지에서 얘기한 것”이라고 답했다.


3. 왜 실종자 가족에게나 기자회견 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이 대표의 말대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면 왜 실종자 가족들에게나 기자회견 때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이 대표는 “내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는 말이 가족들에게는 먹히지도 않는다”며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데 그런 것은 모두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1일 팽목항에서 했던 기자회견장에서 ‘해경과 해군 등 구조대원의 공을 가로채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이 대표의 말도 석연치 않다. 공을 따질 일이 아닌 문제인데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애초부터 민관군 합동 구조대의 늑장대응을 비판하지도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그 얘기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나도 안다”며 “그러나 당시 뭔가 기자회견에서 얘기해야 할 구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실종자 가족도 내가 구조를 못했으니 실패라고 하자, 그럼 앞으로 해경과 언딘의 구조 작업에 방해가 되거나 영향을 주는 인터뷰나 언급을 하지 말라고 했으며, 나 역시 알았다고 한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지난 1일 방송된 팩트TV 이종인 대표 동영상 캡처.

 

 

그러나 지난 1일 팩트TV가 촬영한 팽목항 기자회견의 뒷부분에 보면 ‘공 때문에 그러신 거면, 투입성공하기 전인 오늘(1일) 이전에도 빠질 수 있었는데, 진입하자마자 빠지기로 결정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 대표가 이렇게 답한 대목이 나온다.

“첫 번째 새벽에 시도를 하고, 두 번째 시도를 했을 때 있을 수 있는 상황 때문에, 그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종인 대표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철수했다는 설명에 진정성이 있다 해도 문제는 실종자 구조에 실패하고, 철수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4. “사업 얘기는 왜? 다이빙벨 홍보목적이었나” “목숨 구하러 왔는데 그게 말이 되는가”

 

또한 이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사업을 언급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저한테는 이 기회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도 그렇고, 뭘 입증하고 입증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정부에서도 보장을 했고 경제적으로…” 등으로 발언한 대목이 채널A YTN 등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다이빙벨을 홍보할 목적으로 투입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실종자가족을 비롯해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 가열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체 맥락을 무시하고 한 전형적인 짜깁기 보도”라며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해서 구조하겠다고 온 사람이 사업 때문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그것은 값어치도 없는 얘기일 뿐”이라며 “그렇게 하려면 내가 뭐하려고 거기에 갔겠느냐. 생명을 놓고, 그런 의미로 얘기를 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2일 인천 알파잠수기술공사로 복귀한 다이빙벨. 사진=조현호 기자.

 

 

당시 기자회견에서 나온 해당 질문과 답변은 아래와 같다.

 

-(질문) 선뜻 이해가 안되는게 공을 빼앗는 게 안 돼서 빠진다고 했는데 그러면 일찍 빠지거나 참여를 안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답변) 일찍이라는게, 그 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시도도 안 해봤고, 가능성도 못 봤고, 사람들이 기대도 했고, 그래서 꼭 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이 기회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도 그렇고, 뭘 입증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정부에서도 경제적으로 보장을 했고, 그러면 사람을 돈 주고 사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그거하고 다 맞바꾸는 거죠. 그리고 제가 질타를 받고 여러 가지, 앞으로 사업하는 데도 문제가 있을 거고.”


5. ‘강모 목사가 다이빙벨 투입에 1억원 요구’ 채널A 보도에 “터무니없는 얘기”

 

또한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투입하는 대가로 시신 한구당 1억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채널A 보도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채널A는 지난 2일자 뉴스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남성이 한 잠수 구조장비를 소개하며 거액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며 “채널A 취재 결과 이 남성은 전남의 한 교회 목사인 강 씨였고, 강 씨가 소개한 것은 다이빙 벨이었다”고 보도했다. 강씨는 “‘1억 원 요구’ 의혹을 부인한 것은 물론 다이빙 벨을 개발한 이 대표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말했다고 채널A는 전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는 “그건 사기”라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미국교포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어떤 목사까지도 십시일반해 비용에 도움을 주겠다, 성금을 모금해주겠다고 격려전화가 많이 왔으나, 나는 ‘그런 식으로는 안한다,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했다”며 “어디까지나 여기 온 것은 집사람이 대출 받은 1억 원을 갖고 온 것이며,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작업에 동참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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