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국정화 ‘조연’들의 역사 . 지하의 행운, 지상의 재앙

道雨 2015. 10. 14. 10:11

 

 

 

국정화 ‘조연’들의 역사

 

 

 

박근혜 대통령이 사랑하는 아이(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공부를 좀 잘했어야 했다. 8종 가운데 중간만 갔어도 괜찮았을 텐데, 8등이 뭐냐. 족집게 과외를 시켜도 안 되고, 어지간히 틀린 건 다 봐줘도 계속 꼴등이었다.

‘정상 국가’라면 재수를 시키든 삼수를 시키든 잘할 때까지 가르쳐서 상위권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아이 상태를 보니 경쟁해서 살아남기엔 싹수가 노랬다. 열 받은 대통령은 1등부터 7등까지 아예 시험 자격을 박탈해버렸다.

지난해 꼴등 한 아이를 데려다 슬쩍 이름만 바꿔서, 1종 중 1등을 만들겠다는 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다.

 

타임머신을 타고 1973년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고, 무려 2015년에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 발표’ 기자회견 현장에 있게 될 줄이야.

이 글을 쓰고 있는 ‘2015년 10월12일 오늘’ 나는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 마티(마이클 제이 폭스)처럼 정말 “백 투 더 퓨처”를 몇번이고 외쳤다.

그래 봐야 현실은 국정화. 미래에라도 누군가 찾아 읽으리란 기대로 ‘국정화 조연’들의 역사를 여기에 남긴다.

 

12일 오후 2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재춘 교육부 차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으로 결연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5할은 의아함, 3할은 분노, 2할은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뒤섞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정화의 ‘국’ 자만 나와도 한없이 쪼그라들던 그분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모습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은 ‘국정화 주연급’인데, 기껏 세종시까지 내려와 질문 하나 못 받고 돌아간 터라 오늘은 기록할 말이 없다.

 

김정배 위원장은 유신 시절에도 ‘국정화 반대’를 외친 사학자다. 그러던 이가 지난달 10일 교육부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국정화 ‘앞잡이’ 정도로 질타를 당했으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나 보다.

김 위원장은 이튿날 국편 공청회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국편이 국정으로 결정하는 기관인 것처럼 (중략)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있다”며, 국편은 권한이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12일, 한달 만에 돌변해 “어떻게 이루어진 민주화를 위한, 자유를 향한 역사 연구가 이렇게 이념의 투쟁에 휘말리게 되었는가”라고 강변했다.

군사독재 때도 국정은 안 된다던 학자가, 이제 와 이념 편향성 탓에 국정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자기부정’을 한 셈이다.

 

김재춘 차관이 6년 전 영남대 교수 시절 국정화에 반대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김 차관이 연구책임자였던 보고서는 “국정 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짚었다.

그는 청와대 교육비서관에서 교육부 차관으로 들어온 지 10개월 만에 ‘임파서블 미션’을 완수한 에단 헌트(톰 크루즈)의 ‘표정’으로 “이념 편향” 운운했다.

 

국정화를 망설이다 결국 총대를 멘 황우여 부총리와 관련한 기록은 넘쳐날 테니 더 보탤 건 없다. 다만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황 부총리의 고백은 꼭 남겨야겠다.

“이 모든 것은 저를 비롯한 교육부의 책임인데, 제가 혹시 (부총리) 자리를 뜨더라도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저 자신이 그런 각오를 많이 했어요. 어디 가더라도 교과서 문제와 저는 떨어질 수 없구나.”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쿠데타’는 길게야 못 가겠지만 일단 성공한 모양새다. 주연 혼자 영화를 끌고 나가기 힘들듯 조연들의 활약이 컸다. 세 사람이 왜 갑자기 국정화의 당위성을 ‘확신’하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역사의 현장’에서 세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 있던 그 자리가 ‘가문의 수치’가 될 날은 머지않은 미래에 확실히 온다.  

 

전정윤 사회정책부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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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행운, 지상의 재앙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가를 연구하라.”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유명한 말이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어물전 좌판에 놓인 생선이 아니라, 대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어떤 바다에서 어떤 도구로 물고기를 잡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역사가가 결정할 문제다.”

역사가가 지닌 입장과 관점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역사 연구 내용을 충분히 이해·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먼저 역사가의 정치적 입장부터 연구하라”는 말이 더 유효할지 모른다. 조선시대에는 당쟁이 본격화하면서, 실록의 내용을 둘러싸고 ‘집권파에 유리하고 반대파에 불리하게 기술됐다’는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광해군 시절 북인 출신인 기자헌, 이이첨 등이 주축이 돼 <선조실록>을 편찬했으나, 공정성 시비가 이어지다가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한 뒤 재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효종 때 마무리된 게 <선조수정실록>이다. <현종개수실록> <경종수정실록> 등이 편찬된 것도 같은 이유다.

5·16 군사쿠데타 이전까지는 역사교과서에서 ‘무신난’ 정도로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갔던 고려사의 한 시기가, 박정희 정권 아래서 ‘무인정권시대’로 명명되고 분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군사정권의 동류의식’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대통령부터 연구하라”는 말을 해야 할 형편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아버지 시대의 치부를 가리고 미화하려는 뜻이 있음은 천하가 아는 일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후세 역사가가 나를 정당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유감스럽게도 후세 역사가들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그런데 그는 ‘역사가들을 움직여 엉터리 역사책을 만드는 잘난 딸’을 두었다.

지하에 있는 고인에게는 행운일지 모르지만 이 시대 한국인,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크나큰 재앙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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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도 논리도 없는 대통령의 ‘국정화 궤변’

 

 

 

온 나라를 갈등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진원지’인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13일 미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에 소집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그 발언은 온통 적반하장, 자가당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다수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집착과 아집 때문임을 세상이 아는데도, 박 대통령은 모든 것이 교육부의 결정인 양 딴청을 부렸다.

 

박 대통령 발언의 핵심 단어들은 하나같이 박 대통령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려줘야 할 내용들이었다.

우선 박 대통령은 국정화 문제로 “불필요한 국론분열”이 일어나서는 안 되며 “국민통합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지풍파를 일으켜 국론을 갈기갈기 찢고 나라를 분열과 혼란으로 밀어넣은 사람은 바로 박 대통령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지금 나라와 국민경제가 어렵다”며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한 대목에서는 더욱 말문이 막힌다. 정권의 무능으로 민생이 파탄 난 상태에서,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엉뚱한 일에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장본인은 박 대통령이다.

정국의 극한대치 상황을 스스로 자초해놓고, 화합이니 협조니 하는 말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대한민국에 확고한 역사관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노력” 운운하는 발언도 실소를 자아낸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자긍심을 느끼기는커녕, 대한민국이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독재·후진국가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에 심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서”라는 강변도 마찬가지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개방적·다원적인 가치관을 심어주고, 과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배우게 하는 것이지, 국가가 정해준 틀에 억지로 밀어넣는 일이 결코 아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중 “(국정화를 하지 않으면)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은 너무나 뚱딴지같은 말이어서 아예 비판할 기력조차 없다.

 

권력자가 독단과 아집에 사로잡혀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역사가 생생히 말해준다.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인간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고 말했는데, 박 대통령의 아둔한 모습을 보며 이런 냉소적인 경구가 새삼 가슴을 친다.

 

 

 

[ 2015. 10. 1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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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출생 100주년에 국정교과서 바치겠다고?"

장휘국-김승환 교육감 "현 정권이 평지풍파 일으키고 있어"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14일 박근혜 정부가 교육과정을 1년 앞당겨, 2017년에 국정 국사교과서를 배포하려는 배경과 관련, "제 생각에는 2017년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출생 100주년인데, 거기에 맞춰서 무리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 아니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국정화가 오히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우상화하지 않을까라는 염려도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정고시한 것에 의하면 2018년에 새 교과서를 적용하게 되어 있는데, 왜 그것보다 1년 먼저 당겨서 2017년에 내놓겠다고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25년간 일선현장에서 역사교육을 담당하기도 했던 장 교육감은 국정화 반대 이유에 대해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그 국정화, 이것이 오히려 정치적 편향이나 정권에 입맛에 맞는 역사의 왜곡으로 갈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며 "과거에 다 경험했지 않았나? 유신독재 시절의 교과서나, 2년전에 특정 출판사(교학사)의 교과서를 보고 온 국민이 참 분노하고 이럴 수 있느냐, 그런 예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교과서에 역사학자들이 참여할지에 대해선 "양심있는 역사학자들은 참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학자들은 다 자기 소신에 따라서 살지 않습니까? 자기의 연구 결과에 생명처럼 존중하고 이러는 분들인데, 그 분들이 왜곡할 것이 뻔히 보이는 그런 집필진 속에 들어가리가 없다고 본다"며, "이렇게 되면 2년전 특정 출판사의 교과서처럼 특정한 계열의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참여해서 집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자신이 국정화 강행시 '인정도서'를 만들어 사용하겠다고 하자, 교육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한 데 대해선 "저희는 그것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예컨대 역사와 철학, 또는 역사와 인문학이라는 교과목을 개설해서 다른 역사관의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눈을 넓혀주는 그런 교과 인정 도서는 저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정부가 국정화 강행시 '보조자료'를 만들어 대응하겠다고 밝힌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국정교과서를 현 정권이 의도하는 대로 학생들 앞에 갖다놓을 때는 우리 학생들이 역사의식을 형성하는데 굉장히 심각한 장애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교육감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건데, 그 권한은 일정한 교과서가 있으면 그 교과서를 보조할 수 있는 그런 자료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참고로 말씀드리면 지금 전라북도의 경우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자체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오고 있다. 예를 든다면 동학농민혁명 교과서,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것은 전라북도의 인물, 이런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부장관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인정도서를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전혀 그렇지 않다. 교과서라는 이름의 자료를 쓸 수 없다 그런 뜻"이라며, "프린트물은 물론이고 보충 교재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각 학급에서 교사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보조자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교육부가 법적 조치를 경고한 데 대해서도 "죄형법정주의에 따라서 처벌하는 건데, 지금 형사법 어디에도 이걸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 그것은 교육감들을 겁박을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지금 우리 헌법 31조 4항을 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지켜줘야 되느냐. 정치권이 정권 담당 세력이 이걸 지켜줘야 된다. 조용한 학교 현장을 이런 식으로 이념투쟁의 장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현 정권 담당세력"이라며 "평지풍파를 정권이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고 질타했다.

 
 
박태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