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박정희가 비밀독립군? 역사가 소설이냐" . '박정희 친일 논란' 다시 수면위로

道雨 2015. 10. 27. 11:28

 

 

 

정청래 "박정희가 비밀독립군? 역사가 소설이냐"

"무소불위 조선시대 임금도 역사는 못고쳤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26일 새누리당이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독립군'설을 주장한 데 대해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육군본부가 발간한 <창군전사> 265쪽을 보면, 만주 장교 중 그만들의 비밀조직이 있었고, 광복군으로 가서 거사 직전 해방을 맞았다고 나오는데, 이건 어이없는 소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이건 <세계일보> 탐문 취재 결과 1967년 박영만 소설가가 쓴 소설 <광복군>의 내용이다. 사실과 관계없는 소설적 묘사가 창군전사에 인용된 것"이라면서 "이처럼 역사는 소설이 아니고, 쓰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써서 기재하는 본인의 일기장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날 국정화 TF팀이 적발된 데 대해선 "역사쿠데타의 비밀아지트를 발견한 것"이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조선의 임금이 모든 걸 다할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못한 것이 '사초'를 보는 일과 '사초'를 고치는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선시대 왕이었다면 역사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하겠나. 성군일까, 폭군일까. 박 대통령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힐난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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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박정희, 독립군 도운 군인이란 증언도 있다"

국정 국사교과서 강행에 '박정희 친일 논란' 다시 수면위로

 

 

 

새누리당은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선친의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 한다는 야당 비판에 대해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백강 조경환 선생님께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립군을 도운 군인으로 기억했다는 증언도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밀 독립군'으로 규정, 논란을 예고했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한나라당을 ‘친일’로 압박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출범시킨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위원회가 편찬한 보고서에도 박 전 대통령의 이름은 제외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고 그 업적을 깎아 내리기 위해 시작한 노무현 정부의 ‘친일청산’ 작업은 도리어 당시 열린우리당의 고위관계자, 소속의원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선친에 대한 친일, 탐관오리 행적 등을 구설수에 올렸을 뿐"이라며, "야당이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고수하기 위해 10여 년 전과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이 독립군을 도왔다는 증언은 이기청 의병정신선양회 사무총장(방송인)이 지난 2004년 7월23일자 <세계일보> 독자 투고란에 기고한 글에서 비롯된다.

이 총장은 투고글에서 "필자는 의병정신선양회 활동을 하며 마지막 임정요인이었던 백강 조경환 선생을 자주 뵈었다. 백강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함께 묻힌 국립묘지 애국자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유언을 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라며 "그 백강 선생이 하루는 내게 박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얼마 안돼서 한 젊은이가 면목동 집으로 찾아왔는데, 큰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동행한 사람이 '대통령이십니다' 하길래 보니 박정희였다"면서, "박 대통령은 '제가 만주에 있던 다카키 마사오입니다' 하는데, 조선인 병사들을 독립군으로 빼돌렸던 다카키의 이름을 익히 들었기 때문에 놀랍고도 반가웠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군을 보충해야 할 매우 어려운 상황이어서, 박 소좌의 도움은 컸다고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을 '비밀 독립군'으로 규정했다.

이 글은 지난 2012년 대선당시 박 전 대통령의 친일행각이 논란이 됐을 때도 박근혜 후보측의 반박자료로 사용된 바 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에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혈서 지원'을 미담으로 소개한 <만주신문>의 그해 3월 31일자 기사를 2009년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찾아내 그해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 박정희 항목에 이 내용을 수록했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는 게시 및 배포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박지만씨는 가처분 신청에서 “1. 박정희는 만주군이었지 일본군으로 복무한 것이 아니며, 2. 만주군의 주적은 마오쩌뚱의 팔로군이었으므로 박정희는 만주국의 용병이 되어 중국공산당과 싸운 셈이며, 3. 조선인 또는 독립군에게 위해를 가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박자료를 통해 “1. 만주국은 일제의 괴뢰국이며 만주군은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일본군 현역 장교가 직접 지휘하는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졸업한 엄연한 일본군 예비역 소위이며, 관동군에서 복무한 시기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2. 팔로군도 항일부대이며 중국 소련에 대한 적대행위는 당시로서는 연합군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특히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항일을 위해 팔로군에 복무하고 있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3. 당시의 위관급 장교는 지금과 달리 군이 절대적 우위에 있던 파시즘 국가의 고등관으로서 군수나 경찰서장도 쩔쩔맬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박정희가 군관을 거듭 지원했던 이유의 하나"라고 반박했다.

연구소는 결론적으로 "4. 엄밀히 말해서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장에서는 박정희가 적국의 장교이다"라면서 "5. 박정희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이었던 교직을 버리고 군관의 길을 선택하였으므로, 불가피한 상황으로 볼 수 없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부일협력으로 이해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소는 그러면서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찾아낸 문제의 <만주신문> 기사 원본을 공개했다.

<만주신문>은 기사를 통해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나라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를 깊이 감격시켰다"고 보도했다.

<만주신문>이 공개한 편지에 따르면, 박정희는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고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 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라고 만군 입대 허락를 호소했다.

박정희는 이어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라면서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고 적었다.

<만주신문>은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친일 논란과 관련, 2009년 당시 재판부는 “이유 없다”며 박지만씨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
심언기, 정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