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내 통신자료를 쓱 가져갔다, 왜?

道雨 2016. 3. 25. 12:24

 

 

 

내 통신자료를 쓱 가져갔다, 왜?

 

 

 

시민들의 통신자료가 하도 많이 털린다기에 나도 에스케이텔레콤에 확인해봤다.

설마 했는데, 일주일 뒤 받아본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에는, 검찰이 지난해 5월 내 주민번호와 이동전화번호, 주소 등을 가져갔다고 적혀 있다.

 

 

누군가 내 방 창문을 슬쩍 열고 쓱 훑어보고 간 느낌이다. 그냥 하는 비유가 아니다.

생활의 거의 모든 흔적이 사이버상에 새겨지는 이 시대에, 이동통신사·포털·메신저업체 등은 내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보다 나에 관한 정보를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는 곳이다.

 

혹자는 엄청난 사생활이 노출된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민감하게 구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되묻는다.

누군가 내 방을 몰래 훑어봤는데, 나는 방에 없었고 일기장도 펼쳐져 있지 않았고, 그래서 중대한 사생활을 엿보지는 못했다. 책상 위에 있던 주민등록증 정도만 봤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엿보는 행위를 참아야 하나? 더구나 주민번호는 또다른 개인정보를 캐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범죄 수사나 국가 안보에 필요하다면 내 방을 수색할 수도 있다. 다만 법원이 내준 영장을 제시하거나 내 동의를 받아야 한다.

통신자료 조회는 그런 절차가 필요없으니, 말 그대로 창문을 슬쩍 열고 쓱 훑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후에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내가 아직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걸 보면 나 자신이 수사 대상은 아니었던 듯하고, 이런 경우 수사 대상인 ‘누군가’와 내가 통화를 했기 때문에 조회가 이뤄진 것이라고 수사기관은 설명한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내 통신자료를 얻으려면 수사·정보기관은 요청 사유, 즉 수사 중인 ‘누군가’의 혐의, 나와의 연관성 등을 기재한 요청서를 이동통신사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통신사도 수사기관도 이 요청서를 공개하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아는 누가 어떤 혐의를 받는다는 건지 답답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다. 그러니 의심이 들밖에.

내가 통화한 ‘누군가’는 정말 범죄 혐의자일까? 그가 사찰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요청서에 적힌 내용은 진짜일까? 사유가 기재되지 않은 요청서도 있다던데….

 

다른 사례들은 또 어떤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비서진 3명이 지난해 잇따라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이유는 뭘까?

유기홍 더민주 의원이 ‘국정교과서 비밀 티에프팀’을 덮친 다음날 국정원이 그의 통신자료를 가져간 것은 우연일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통신자료는 왜 뒤졌을까? 그들도 ‘누군가’와 통화했기 때문일까?

그 ‘누군가’들은 왜 하필 야당·시민단체·언론 쪽과 열심히 통화를 할까?

 

더 무시무시한 일은 지금부터다.

테러방지법 통과로 국정원은 테러위험인물에 대해 건강, 성생활, 유전정보 등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가져갈 수 있게 됐다.

통신자료보다 훨씬 손쉽다. 요청서도 필요없고 사유를 밝힐 필요도 없다. 그러니 사유가 존재하지 않은들 어찌 따질 것인가.

 

이명박 정권 시절 민간인 사찰 대상에 올랐던 암울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뒤로 늘 감춰진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이게 신독(愼獨)이야.’ 농담으로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시를 의식해 자기 언행을 검열한다면 그건 신독이 아니라 수용소의 삶일 뿐임을 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사생활의 익명화’와 ‘권력의 투명화’를 지향한다.”(이진우, <프라이버시의 철학>)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 해 1000만명의 통신자료가 털리는데, 어떤 여과 장치도 없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비서실장한테 보고받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권력의 공적 활동은

 

장막에 가려졌고, 시민들은 창문이 잠기지 않는 방에서 오늘도 잠을 청해야 한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