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검경을 심판대 올린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

道雨 2019. 3. 19. 10:13




검경을 심판대 올린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



역대급 ‘막장드라마’에 보는 이가 어지러울 정도다.

정상급 아이돌 등 인기 연예인들의 마약·성·뇌물 스캔들, 그 뒤를 봐줬다는 ‘경찰총장’ 또는 ‘총경’. 법무장관 후보까지 올랐던 한때 실세 법무차관의 성폭행 논란, 배후에 의문의 ‘정권 서열 1·2위’. 자살한 여배우에게 접대받은 유력 ‘언론인 3명’과 국회의원, 이들을 비켜 간 검경의 면죄부 수사 등등.

대중적 호기심과 분노를 자극하는 요소까지 두루 갖춰 관심도 폭발적이다. 버닝썬 사건은 경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며 인력을 총동원해 수사 중이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검찰과거사위원회 산하 조사단이 막바지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경의 낯뜨거운 행각과 비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참으로 절묘한 시점에 사건이 터졌다. 하필 국회에서 여야가 검경의 수사권을 조정 중이고, 여야 역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

유권자가 직접 뽑은 의원뿐 아니라 ‘정의·인권의 수호자’라는 검찰, ‘민중의 지팡이’ 경찰도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봉급도 국민 세금에서 받는다.

이제 최고심판관인 주권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검경과 여야 모두 스스로의 ‘자정 의지’와 ‘실력’을 보여야 한다.


버닝썬 사건에 총경급 이상의 ‘경찰총장’은 없는지, 경찰이 ‘유착 경찰’의 구조적 비리까지 뿌리 뽑을지, 언론 이상으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건 검찰일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사건 의뢰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직접 뛰어들지 않은 데는, 대어를 낚지 못하면 자칫 경찰에 면죄부만 줄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검찰에 더 부담스러운 건 시한을 앞두고 의혹이 커진 과거사위 사건들이다.

‘김학의 사건’은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난 영상자료에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까지 있었는데도 검찰이 무혐의 처리했다. 처음엔 피해 여성이 특정되지 않는다고, 나중엔 피해 여성들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며 사건을 뭉갰다.

6년 전에 잘못했으면 재조사라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막판까지 협조조차 미적댔다.

‘박근혜 청와대’ 작동 방식에 따르면, 민정수석실과 법무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이 ‘몰랐다’고 넘어가기엔 정황과 증거가 너무 뚜렷하다.


‘장자연 사건’도 마찬가지다. 장씨가 마지막 남긴 글에서 성접대를 강요받은 사실을 증언하면서, ‘조선일보 방 사장’이란 표현을 콕 집어 명시했는데도, 검경 모두 ‘방 사장’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 피해자는 성접대를 강요받은 사실을 폭로하며 목숨을 끊었는데, 엉뚱하게 가해자는 제쳐두고 ‘방 사장’ 규명을 요구한 국회의원과 매니저 등만 기소했다. 두말할 것 없는 적반하장의 ‘왜곡 수사’다.

리스트에 오른 ‘언론인 3명’과 ‘이상한 이름의 국회의원’까지 나왔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62만명을 넘었다. 성접대 강요 못지않게 왜곡 수사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검찰과거사위 조사 대상에는 검찰이 청와대에 무릎 꿇은, 조직 차원의 치명적 사건들은 처음부터 쏙 빠졌다.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을 은폐하려 하고, 정윤회 문건 사건을 기밀유출 사건으로 왜곡하는 등 수사의 본질을 훼손한 치욕의 과거사들은 제쳐놓았다.

전직 대통령 둘과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한 검찰도, 자기 조직의 수뇌부에 칼을 들이대는 일에는 몸을 사린 셈이다. 왜 상설특검이나 공수처가 필요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론 권력’에 약한 건 검경이 오십보백보다. 장자연 사건에 이어 ‘방용훈 주거침입 사건’에서도 현장 영상이 있는데도 봐주더니, 사법농단 사건에선 <조선일보> 대목을 쏙 뺐다. 비슷한 일이 세번 이상 이어지면 실수가 아니라 고의다.


여야 4당이 선거법과 함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는 법안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들이 포함돼 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1년 가까이 헛돌다, 올해 초부터 검경소위의 수사권 조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애초 정부안보다 검찰 권한을 좀 더 줄이는 쪽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미묘한 시점에 ‘환경부 리스트’ 사건이 서울동부지검에 배당되고,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가 강화되자, 수사 지휘부의 ‘박근혜 청와대’ 파견 전력 등 ‘성향’ 논란이 적잖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논란 자체에서 검찰의 노회한 한 수가 읽힌다.


국회에선 정치개혁특별위원회뿐 아니라 사법개혁특위에서도 자유한국당의 시간 끌기 작전이 ‘침대축구’ 저리 가랄 정도다. 그래놓고 패스트트랙이 가시화하자 이제야 당 차원의 대안을 제출하겠다고 나섰다.

주인들이 나서 이 나태한 심부름꾼들을 여론으로 압박하고 표로 심판하는 길밖에 없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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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6383.html?_fr=mt0#csidxbc6119a7c24bdfc91499a6d39d7136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