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가짜(조작,오보)뉴스

‘곽상도·나경원’ 주장처럼 김지태는 친일파였나?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드는 격

道雨 2019. 8. 6. 10:39







‘곽상도·나경원’ 주장처럼 김지태는 친일파였나?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드는 격
임병도 | 2019-08-06 09:31:0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고(故) 김지태씨의 유족들이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과 나경원 원내대표, 민경욱 대변인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씨 유족들은 8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 곽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정쟁을 위해 근거 없이 김씨를 친일 인사로 매도하고 있다”며 “민·형사상 책임을 함께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곽상도, 나경원 의원은 김지태씨를 가리켜 친일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김씨 유족의 상속세 소송을 맡아 승소한 것을 가리켜 친일파를 변호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김지태가 친일파였는지, 팩트체크를 해보겠습니다.





① 김지태는 친일파였나?


이번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김지태가 친일파였는지입니다. 곽상도 의원은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씨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으로 입사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지태는 1927년 만 19세의 나이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시점에 입사합니다. 그는 재직 5년 만에 폐결핵으로 퇴사하면서, 울산농장의 땅 2만평을 10년 분할상환조건으로 불하받습니다. 김씨는 1934년 부산진직물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동척이 조선인을 착취한 기구이고, 김지태가 동척에 근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급 직원으로 근무했던 김씨를 무조건 친일파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김지태가 동척에서 땅은 불하받았지만, 재직 중에 부를 축적했다는 개연성이나 증거는 없습니다.


② 노무현, 문재인이 김지태를 친일 명단에서 빼줬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개인의 직접적인 행위와 지위, 직무 등을 고려했습니다.

단순히 일제의 공출량을 채우기 위해 집집마다 창고를 뒤진 면서기와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고위 관료를 똑같은 친일파 범주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단, 예외는 있습니다. 지위는 없지만, 천황을 찬양하며 일제의 군국주의에 적극 협조했던 문인들이나 지식인들은 그들의 친일행위로 선정됐습니다.


김지태씨는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예 명단에 들어간 적이 없으니,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빼줬다는 사실은 거짓이 됩니다.


김지태는 친일파가 아닌데 왜 박정희는 친일파냐고요? 박정희는 ‘위관급 이상 장교로 재직한 자와 오장급 이상 헌병으로 활동한 자,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 군인’이라는 선정 기준에 들어갔기 때문에 포함됐습니다.


③ 문재인 대통령이 친일파 재산 환수 소송 변호사를 했다?


7월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 국가를 상대로 한 재산환수 소송 변호사도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했던 소송은 재산환수 소송이 아니라, 김지태 유가족이 제기한 상속세 부과 취소소송입니다. 만약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으려면, 김지태의 재산이 친일 부역으로 형성한 재산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동척에 근무하고 땅을 불하받은 것 이외에는 친일 재산이라 볼 수 없습니다.


1984년 문재인 대통령은 김지태의 유가족이 김씨가 대표로 있던 ㈜삼화와 조선견직을 상속받으며 부과된 50억원대 법인세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맡았습니다.

소송 당시 업체 직원들은 일본의 생사 산업 보호 명목의 수입 규제 때문에 임금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승소에 따른 성공 보수를 받기로 했으나 받지 않고, 오히려 변호사 수임료까지 보태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는데 썼습니다.


“나는 부일장학회를 운영한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 선생을 평생 존경했다. 그는 무려 25년 동안 부산상고 동창회장을 맡아 모교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했다. 나는 중학생 때 부일장학금을 받았고 부산상고에서도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다. 둘 다 김지태 선생이 만든 장학회였으니 그분이 내 인생에 디딤돌을 놓아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김지태는 동척에 근무할 때부터 ‘부산정표학교’라는 야학을 세워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1958년에는 ‘부일장학회’를 설립해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부일장학회’는 박정희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총 1만 2364명에게 17억 7천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로 바뀐 뒤 평균 700여 명 30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학생에게 수십억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장물 정수장학회를 알면 박근혜가 보인다.)


이승만은 부산에서 재선을 위해 김지태에게 정치자금 3억 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를 구속하고 해당행위자로 출당시킵니다. 김지태는 굴하지 않고 부산일보 사장실에서 마이크를 설치하고, 3.15 부정선거 총격 사건을 보도합니다.

박정희는 김지태의 부산일보와 MBC 지분은 물론이고, 그의 재산까지도 빼앗아 박근혜에게 물려줬습니다.

피해자였던 김지태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뜻의 ‘적반하장’과도 같습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