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참을 수 없는 민정수석의 가벼움

道雨 2020. 8. 11. 10:32

 

참을 수 없는 민정수석의 가벼움

박근혜 정권 몰락의 공범으로 최순실씨 다음으로 거론되는 이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가 대통령 주변 인물들을 제대로 관리했다면, 박 전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하고 감옥에 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의 발호를 막는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의 핵심 업무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집권 4년차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고, 처리도 제대로 못 했다.

 

그가 처음부터 무능한 민정수석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후견인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천거로 민정비서관에서 바로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인사평가가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 전 비서실장의 눈에 들 정도로 업무 장악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을 장악하는 데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친정인 검찰은 물론 경찰과 국가정보원까지 ‘우병우 사단’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의 활약으로 ‘박근혜 청와대’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직사회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권이 최대 위기를 맞았을 때 무기력했다. 아니, 스스로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처가 재산을 둘러싼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 미숙한 대응으로 여론을 악화시켰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미쳤다. 2016년 7월에 터진 ‘넥슨-진경준-우병우 삼각거래’ 의혹이 시발점이었다. 너무 비싸서 잘 안 팔리던 처가 소유의 강남역 근처 땅을 넥슨이 사들였는데, 이 거래를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친구인 진경준 전 검사장이 주선했고, 대신 우 전 수석은 넥슨 주식을 공짜로 받은 진 전 검사장을 검사장 승진 때 눈감아줬다는 그럴듯한 의혹이었다.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앞서 진 전 검사장이 넥슨 공짜 주식으로 120억원의 차익을 거둔 사실이 드러나 특히 개미 투자자들의 공분을 자아낸 사건과 맞물려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를 계기로 언론들이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를 집중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가족회사 ‘정강’을 통한 횡령·탈세 의혹과 아들의 운전병 보직 외압 의혹, 처가 소유 골프장의 탈세 의혹 등이 매일 주요 뉴스로 보도됐다. 이런 의혹들은 나중에 대부분 무혐의(무죄)로 결론 났지만, 우 전 수석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하면 할수록 언론에는 뻔뻔한 이미지만 부각됐다. 비리 의혹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우병우 블랙홀’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래도 박 전 대통령은 우 전 수석을 끼고돌았다. 그 결과 대통령 지지율은 그해 여름부터 곤두박질쳤다. 2016년 8월23~25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0%, 부정평가는 57%였다. 갤럽은 그 원인을 “다른 이슈보다 우 수석을 둘러싼 논란 등이 기존 지지층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4년 전 여름 ‘우병우 의혹’을 취재한 기자에겐, 지난 7일 청와대 핵심 참모들의 줄사표를 불러온 ‘김조원 파동’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대통령 주변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민정수석이 오히려 사고를 친 구도가 매우 비슷하다.

오히려 민심 이반은 4년 전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서울 집값에 분노한 민심에 김조원 전 민정수석이 강남 아파트로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대통령을 걱정해야 할 민정수석이 부동산앱만 쳐다보고 있었던 걸까. 정말 민정수석과 강남 아파트를 저울질했을까. ‘추미애-윤석열 갈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검찰개혁 등 현안이 산적한데도 말이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참모 가운데 가장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직사회가 청와대의 권위를 인정한다. 공직사회가 청와대를 무서워해야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정책에 잘 반영된다. 청와대가 우습게 보이면 공직사회가 먼저 동요한다.

 

그런 청와대는 권력기관의 좋은 먹잇감이다. 박근혜 정권 말기가 대표적이다. 지금 청와대는 불과 4년 전 일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민정이 흔들리면 정권이 불안해진다. 그 피해는 국민 몫이다.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춘재 ㅣ 사회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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