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8·15집회 허용결정 꼼꼼히 읽기

道雨 2020. 9. 3. 10:02

8·15집회 허용결정 꼼꼼히 읽기

 

 

8월15일 광화문 인근에서 개최할 것으로 신고된 집회 중 2개 집회를 가능하게 해준 서울행정법원 결정에 대해 비난이 거세다. 판사 개인에 대한 신상털기식 공격은 지양해야겠지만, 사법부 판단 역시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된 분석이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공동체 위기 상황은 그동안 누렸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문제는 위기가 공포로 이어지고, 그 공포 속에서 ‘기본권에 대한 제약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와 같은 논의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행정법원 결정은 이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다.

 

행정법원이 집회를 가능하게 한 이유는 크게 네가지였다.

①집회 신고대로라면 100명, 1000명 정도로 제한된 참가자들 간의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의 준수가 가능하고,

②옥외집회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사례가 존재하지 않으며,

③확산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준을 넘는다고 볼 수 없다.

④서울시는 2020년 2월26일부터 무기한으로 도심 집회 금지를 하였는데, 이는 기본권 제한 원칙인 ‘필요최소한도’의 제한이 아니다.

 

현재까지 행정법원 결정에 대한 비판은 첫번째 이유에 대한 것이 다수지만, 나머지 역시 중요한 분석 지점이 있다. 먼저 두번째, 세번째 이유는 ‘과학적 증거’가 기본권 침해 판단에서 핵심적 판단 기준이 된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생 바이러스 대유행이 이제 막 반년이 넘은 시점에서 과학적 증거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옥외집회는 안전’이라고 믿었고, 서울시 송무담당자들도 재판부의 확신을 깰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재판부가 심문 과정에서 즉시 중앙방역대책본부 관계자나 감염병 전문가를 출석시켰다면 어땠을까? 금지 주체도, 판단자도 정확한 과학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오판이 시작되었다.

 

세번째 이유는 더욱 심각하다. ‘기본권 수인한도’를 과학적 증거 없이 추상적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본권 수인한도를 쉽게 정리하면, 누군가의 기본권 행사를 타인과 사회가 일정하게 참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회·시위에서 발생하는 소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표현이라도 어느 정도는 견뎌야 모두의 기본권 보장이 가능하다는 것. 재판부는 확산이 얼마쯤 이루어져도 “의료역량 또는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근거라는 것은 “경험칙에 따라 짐작”된다는 것이 전부였다. 확산세와 치사율 모두 높은 신생 바이러스 대유행에 ‘경험칙’이 확립되어 있을 리 없다. 8·15 집회 이후 확산세는 급증했고, 중증환자를 위한 병상 부족이 눈앞의 현실이다. 결국 서울행정법원 결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학적 증거 없이 과학적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10일 헤센주가 3월17일부터 한달 동안 대면종교활동을 포함하여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한 것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 공공보건기관인 로베르트코흐 연구소의 분석을 구체적인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치러야 할 공동체의 대가는 ‘의료시스템의 과부하’이며, 이는 책임 없는 자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행정법원 결정의 판단 이유 중 네번째, ‘필요최소한의 금지가 아니다’는 무거운 지적이었다. 서울시는 2월26일부터 무기한으로 도심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유사한 밀접도를 가진 유흥·공연시설 등에는 바이러스 확산 상황에 따라 탄력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차별이겠지만, 집회·시위라는 핵심적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역시 이동제한이 한달에 한정되었기에 합헌이며, 팬데믹의 진행 경과에 따라 제한적 완화를 검토해야 함을 명확히 했다.

코로나19로 부당한 해고를 당한 이들에게, 바로 지금 그 회사 정문에서 부당해고를 알리는 시위를 하는 것은 유보할 수 없는 권리이다. 실제 금호아시아나 계열사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아시아나 본사 앞에 세운 농성 천막이 집회·시위 제한 고시를 이유로 철거되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방역수칙 준수와 공존할 수 있는 집회·시위의 권리 보장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임재성 ㅣ 변호사·사회학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0460.html?_fr=mt0#csidxdfae66038632970b309f079c7b545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