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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3법’ 반대론자, 박근혜에게 물어보라

道雨 2020. 10. 16. 11:14

‘공정3법’ 반대론자, 박근혜에게 물어보라

 

“소액주주 등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다중대표소송제 단계적 도입,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집단소송제·징벌적손배제 전면 확대와 판박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재계가 정부안에 반대하자,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지지 성명까지 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한겨레>와 인터뷰 때 “우리 당 상당수 의원이 법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증도 안 해보고 반대한다”고 지적한 게 정확하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굴러온 돌’(김종인)이 ‘박힌 돌’(반대 의원들)을 빼낸다고 불만이지만, 자기 역사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다.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법무부 검토를 거쳐 2007년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재계의 반대를 이유로 자동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하며 15년을 낭비했다.

집단소송제도 비슷하다. 2005년 수년간의 논의 끝에 증권분야에 처음 도입됐다.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 적용 분야를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제동이 걸렸다.

징벌적손배제도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불공정하도급 분야에 처음 도입된 이후 확대 요구가 계속 제기됐다.

 

이들 대부분이 기업의 반대로 20년 가까이 미뤄온 오랜 숙제다. 재계의 반대는 공부는 안하고 놀면서, 시험을 계속 피하는 불성실한 학생과 흡사하다. 이런 실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업 옥죄기” “반시장적”이라고 동조하는 보수언론에게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특수관계인 포함) 3% 제한이 논란이다. 이는 경영진을 감시·견제할 책임이 있는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한 현실에서, 감사위원만이라도 독립적인 인사로 뽑기 위한 조처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재벌 계열사 감사위의 원안 가결률은 99.4%에 달한다. 다른 나라가 알까봐 부끄러울 정도다.

 

삼성사태는 법개정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사건으로 다시 기소됐다. 경영 승계를 위해 합병비율을 자신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짜맞춘 혐의다. 삼성물산 이사회는 회사 가치가 부당하게 낮게 평가됐는데도 합병에 찬성한 공범이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형사처벌이나 소액주주의 피해구제가 어렵다.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중 단 한명이라도 독립적인 인사가 선출돼 합병에 반대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정경제 3법은 반칙을 일삼으며 주주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줘온 기업들이 자초한 일이다. ‘코로나 위기’라는 특수성을 내세우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코로나 이전에도 “외국 투기세력의 경영권 침해”, “경영권 방어 부담으로 인한 투자·고용 위축”, “소송 남발” 등과 같은 근거없는 주장을 십수년 동안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다.

이런 주장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며 공정경제 3법 처리를 미뤄온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14일 민주당의 공정경제 티에프와 경제단체의 정책간담회에서는 정부와 재계의 찬반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하지만 상의와 경총의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병든 닭을 잡으려고 투망을 던지면 모든 닭이 다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입법 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보완을 요청하는 모습이다. 반면 경총은 “기업에 부담된다”는 이유로 모두 반대하는 막무가내식이었다.

 

경제단체가 회원 기업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가경제와 국민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최소한의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 기업의 기득권만 대변하는 경총의 행보는, 국정농단사태로 추락한 과거 전경련의 모습과 판박이다.

대한상의가 박용만 회장 취임 이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산업용 전력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경총과 거리를 둔 이유다.

 

경총의 무리한 행보에는 ‘재계 수장’ 자리를 원하는 손경식 경총회장의 ‘노욕’이 작용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공정경제 3법을 더 늦추는 것은 명분이 없지만, 정부안 중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에 주저할 필요는 없다. 외국펀드에 대한 우려는 한 예다. 실제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2019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8조원이 넘는 배당을 요구하며,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추천한 바 있다. 대주주 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주주도 특수관계인까지 포함해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게 형평성에 맞다.

 

소모적 논란을 계속하기보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엄격한 사후 규제가 도입되는 것에 맞춰서, 과도한 사전 규제를 과감히 없애는 ‘규제 빅딜’을 시도해보자. 재계는 역대정부가 말로만 규제개혁을 외치고 실제로는 핵심 규제를 움켜쥐고 있다고 불만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기업의 반칙을 억제할 수있는 엄격한 사후 규제가 미비했던 요인도 크다. 이번 법개정으로 공정경제의 기반이 구축된다면, 획기적인 규제개혁의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곽정수 ㅣ 논설위원

jskwa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5914.html#csidxee41259ca1691479033ac937e139e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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