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크라이나 위기 :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방안은?

道雨 2022. 2. 10. 10:37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열강 앞에 줄서기

 

우크라이나가 경제위기에 휘청이던 지난 2013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경제 지원을 받으려고 유럽연합(EU)과 러시아를 자극했다. 그는 과감히 유럽연합과 협상해 가입을 합의했다. 곧 러시아로부터 구체적이고 관대한 경제 원조가 제안되자, 그는 합의를 포기했다. 친러 성향이던 야누코비치에게는 애초부터 유럽연합 가입보다는 러시아로부터 도움을 끌어내려는 협상 전략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를 즉각 열전에 밀어넣는 뇌관이 됐다. 친서방 세력들이 항의시위를 벌였고, 경제위기에 지친 시민들도 가세해, 결국 야누코비치가 축출되는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유럽 담당 차관보가 제프리 파야트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에게 한 통화가 공개됐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서 서방 쪽으로 끌어당기고, 야당 지도자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미국의 노골적인 개입을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곧,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친러분리주의 세력들의 내전을 촉발시켰다.

 

지난해부터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근본은, 나토 확장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이견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직접적 뇌관은 우크라이나가 제공한 것은 아닌지도 물어야 한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낀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두 세력의 각축장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먼저, 지도자인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가 섣부르게 유럽연합과 가입 합의를 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 다음에는 반러친서방 세력들이 우크라이나를 서방 쪽으로 급격히 몰아갔다.

야누코비치 축출 뒤, 신정부는 20%의 러시아계 주민이 존재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공영어에서 제외했다. 러시아계 주민이 다수인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에 러시아가 손을 댄 직접적인 명분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민족적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 우크라이나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존재한다. 서부에는 반러민족주의 세력, 남부와 동부에는 친러 세력, 키에프 등 도시에는 과거에 사회주의 세력들이 우세했다. 근대 유럽의 본격적인 반유대주의 박해인 포그롬은 19세기 말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서부 지역, 특히 갈리시아 지역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나치에 부역하는 파시스트 무장세력으로 진화했다. 유로마이단 시위를 이끌고, 러시아어 공영어 폐지를 주도한 ‘범우크라이나자유연합’(자유당)과 극우무장조직 ’프라비 섹토르’는 2차 대전 때 나치 부역세력이 뿌리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04년에도 ‘오렌지 혁명’이라는 친서방·반러시아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당시 러시아는 개입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나토나 유럽연합 가입 논의가 없었고,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중립지대에 위치했다.

2008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정보 당국의 반대에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 회원국 후보로 수용했다. 미-러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먼저 유럽연합 가입에 합의하고, 이를 뒤집고, 다시 서방 쪽으로 질주하는 정권을 출범시킨 것이다.

 

우크라이나 위기의 고리를 풀 수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미국과 러시아의 싸움이 재앙임을 직시해야 한다. 나토에 현실적으로 가입할 가능성이 없고,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도 가입하고 싶지 않다면, 우크라이나는 두 진영의 안보기구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선언을 해야 한다.

 

미-러는 상대의 요구에 굴복하지 말라는 국내의 정치적 압력에 처하면 타협의 재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의 위기는 우크라이나가 미-러에 타협의 명분을 제공하는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2차 대전 때 독일 편에 섰던 핀란드는, 전후에 나토나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 않은 중립국이 됐다. 소련의 위협에서 벗어났고, 서방의 자유와 풍요를 얻었다. 핀란드가 20세기 이후 몇차례나 소련과 전쟁을 한 성과다.

우크라이나도 소련 해체 이후 주권과 독립을 위한 벌인 투쟁을 바탕으로, ‘낀 나라’가 생존할 선택을 해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사드 추가 배치 주장 등으로 노골적으로 ‘반중친미’를 표방한다. 선제타격론을 강조하고 외국인 의료보험 혜택 문제로 ‘반중 혐오’ 정서를 자극한다.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당선되면 미-중-일-북 중 어떤 정상과 먼저 만날 것인지 밝히라는 등, 주변 열강에 대한 줄서기를 공개하라는 압박이 만연하다.

한국의 대선 풍경은 격화되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겹쳐 보인다.

 

 

정의길 |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