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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열광했을까

道雨 2022. 3. 7. 10:29

트럼프는 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열광했을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하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푸틴은 천재”라며 열광했다. 그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푸틴 대통령은 그 지역(우크라이나 동부)에 진입해 평화 유지 세력이 될 것”이라며 “똑똑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에 푸틴의 속전속결 전략이 수렁에 빠지고, 전세계적으로 푸틴의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시위가 확산되면서, 트럼프의 막말에 대한 분노도 커졌다. 불리해졌다고 판단한 트럼프는 바로 말을 바꿨다. “이것은 학살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전체주의를 연구해온 역사학자인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략과 트럼프의 당선은 긴밀하게 연결된 공작이었다고 말한다.

2014년 푸틴이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러시아 군대를 들여보냈을 때, 세계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는 푸틴이 자신을 ‘위대한 지도자’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해 동원한 ‘유라시아주의’라는 파시즘의 귀결이었다.

푸틴은 자신과 소수 재벌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 부활’을 내세운 파시즘을 만들어냈고, 서구의 부패와 유대인의 음모에 맞서 러시아를 지켜야 한다는 유라시아주의를 실현하려면 필연적으로 우크라이나로 영향력을 확장해야 했다.

푸틴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를 내전으로 몰아가면서, 러시아의 폭력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오히려 ‘나치’라고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 “우크라이나는 국가가 아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크림반도 병합에서 가짜뉴스를 이용한 사이버전쟁의 효과를 분명하게 확인한 푸틴은, 가장 극적인 작전에 나섰다.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서, 러시아가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러시아인들은 우선 파산한 부동산 개발업자 트럼프에게 자본을 제공했다. 다음으로, 트럼프는 미국 텔레비전에 출연해 성공한 사업가 연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성공한 사업가 트럼프’라는 가공의 인물을 지지하기 위해 개입했다.”

불평등으로 취약해진 미국 사회의 약점을 파고 들어, 러시아가 SNS를 통해 퍼트린 방대한 규모의 가짜뉴스로 여론을 조작해 트럼프를 당선시킨 것이다.

“미국인 1억3700만명이 투표를 했는데, 1억2600만명이 페이스북에서 러시아 콘텐츠를 보았다.”

푸틴은 왜 바이든 행정부가 등장하고 나서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에 나섰을까. 제시카 피사노 하버드대 교수는 <폴리티코> 기고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을 때 푸틴은 침공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트럼프가 미국의 리더십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다.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계속 약화시켰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당선되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했다. 바이든이 미국의 동맹을 재건하고 나토를 강화하자, 푸틴은 움직였다.

푸틴의 이번 침공에서 러시아는 전세계 여론전에서 패배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즉각 러시아 국영매체를 차단했다. 국제해커조직 어나니머스가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절박한 호소에 전세계인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

푸틴의 가짜뉴스가 힘을 잃고, 트럼프가 난처해진 이유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