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나는 돈은 알아도 드는 돈은 모른다"

道雨 2022. 3. 14. 10:59

부동산 계급투표?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은 당대 시대상을 잘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엔 기존 체제의 폐허 위에 자본주의가 세워지고 있었다는 것도 포함된다. 두 체제가 교차하는 시기에 등장한 오스틴의 소설이 자본주의 특유의 인간상,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을 기막히게 잡아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교’의 관점을 쉽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는 공기와 같다. 평소 우리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산다. <오만과 편견>이나 <맨스필드 파크> 같이 200년 넘은 작품이 오늘날에도 현실성을 갖고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주는 것은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경제학자로서는 매우 드물게 이런 점에 천착해, 자신의 세계적 히트작 <21세기 자본>에서 오스틴이나 발자크 같은 이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논변을 펼치기도 했다.

오스틴이나 발자크의 소설이 전하는 자본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산의 의의가 변한다는 것이다. 과거 재산은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이젠 아니다. 어디에 어떤 땅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땅에서 한 해에 얼마의 소득이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소설 속 인물의 묘사나 사교모임 여성들의 귓속 대화에서 ‘소득’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아무리 멋진 고택을 가지고 있어도, 거기서 소득이 안 나오면 무용지물이다.

재산보다 소득이 중요하므로, 그 소득이 꼭 땅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공장을 돌리든 돈놀이를 하든, 여하튼 현금이 나에게 정기적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나 소셜미디어를 보면, 자신이 어떤 체제에서 살고 있는지를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이번 대통령선거 결과를 둘러싼 해석들을 봐도 그렇다. 특히 서울에서 현 정권 기간에 집값이 크게 오른 동네에서 보수 후보의 지지세가 강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화제였다. 실제로 ‘강남 3구’야 말할 것도 없고 목동부터 마포와 용산을 거쳐 성수에 이르는 한강 벨트 전체가 대체로 그랬다.

이를 ‘계급 투표’의 결과라면서, 그 원인을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뜻 보면 그럴싸한 얘기지만, 여기엔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첫째, 부동산정책 실패 여부를 떠나, 정부 정책으로 집값이 많이 올랐다면, 그 소유자는 정부에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왜 그 반대편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는 건가?

둘째, 어떤 이들은 위에서 거론한 지역에서 세입자 비율이 높음을 들어, 위 결과를 부동산정책 실패로 전·월세 주거비가 오른 데 대한 반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말은 더 되지만, 주거비가 치솟는데도 굳이 강남 등에 사는 사람은 어떤 이들일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는 상식선에서만 생각해도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왜 저 강남 사람들은 자신의 집값을 올려준 정부에 저토록 반기를 드는 것인가?

어차피 집값이라는 건 원칙상 평가액일 뿐이고, 중요한 건 오스틴이 알려줬듯 소득이다.

이번 정부는 의도치 않게 강남 부자들의 집값은 올려줬을지언정 소득세와 법인세도 올렸고, 부동산 보유세와 금융 관련 세제 또한 강화했다. 고소득 전문직,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종사자가 대부분일 강남의 세입자들도 결국 이런 정책의 ‘피해자’다. 종부세 등이 시행과정에서 ‘누더기’가 되었을지언정, ‘진보’ 정권의 지속은 저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할 일일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에서 계급성은 재산이 아니라 소득의 크기와 성격과 더 관련이 깊다. 이른바 ‘계급투표’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도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정부의 출범 이후 내내 부동산은 가장 뜨거운 경제 이슈였지만, 그것은 분에 넘치는 주목을 받았다.

 

한편, 언론이 아무리 부동산 노래를 불러도, 정부 정책이 자신의 소득을 옥죈다는 것은 부자들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오직 부자들만이 자신의 계급성을 자각한 것은 그 결과다.

 

나는 돈은 알아도 드는 돈은 모르는 게 사람인 걸까? 부자의 소득을 통제하는 정책은 고스란히 서민에겐 이득이지만, 이것이 집단적인 자각이 이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한 서민의 계급성을 일깨워 계급성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향후 우리 사회가 전진하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일 것이다. 여기서도 재산보다는 소득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