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道雨 2022. 3. 11. 09:26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했다. 한국갤럽 정기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임기 막바지에도 40% 안팎에 이르러 역대 대통령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지만, ‘정권교체’ 여론은 그보다 더 강했다. 집값 안정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과 부동산 세금 인상 등 경제 운용에 대한 불만과 집권 세력의 도덕성 신뢰 손상이 5년 만의 정권교체를 부른 핵심 변수였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 결과는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의 승리라기보다 민주당 정권과 이재명 후보의 패배 성격이 좀 더 짙은 것 같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자가 겨우 0.73%포인트의 득표율 차이로 이긴 것은 조금 뜻밖이다.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작은 약 25만표 차이에 그쳤다. 정권교체 여론의 강도에 견줘 지지도가 상당히 약했던 것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면서도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을 대안으로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선거운동 과정을 돌아보면,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윤석열 후보의 언어에서는 따뜻함, 논리, 품격보다 차가운 분노와 혐오가 도드라졌다. 지난날을 극복할 대안의 제시보다 반대와 증오를 모으는 일에 매진하다시피 했다. 선거전의 성격을 다음 정권이 펼칠 정치와 정책을 따지는 ‘전망 투표’가 아니라, 이전 정권의 공과를 평가하는 ‘회고 투표’로 끌고 가려는 전략이었겠지만, ‘수권 능력의 한계’를 노출시켰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몇표 차이로 이겼든, 대통령의 권한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권력의 행사에는 그 무게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중국 한나라를 창건한 고조 유방의 참모 육고(육가라고도 한다)의 옛이야기를 윤석열 당선자가 지금 꼭 떠올리고,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황제에 자리에 오른 뒤, 육고는 황제 앞에 나아갈 때마다 백성의 삶과 정서가 담긴 시(시경)와 역사서(서경)의 구절을 인용해 말했다.

이에 황제가 “나는 말 등에 올라타 천하를 얻었다”며 싫어하자, 육고가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말을 타고 천하를 얻을 수는 있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사마천 <사기> 육고열전)

 

권력을 획득할 때 필요한 능력과 정치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다르다는 말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평생을 검사로 일했다. 권력에 굴하지 않는 수사로 이름을 얻었고, 검찰총장에 오른 데 이어 대통령 선거에서까지 이겼다. 선거 때 한 말들을 거론하며 ‘형법전 하나로도 나라를 충분히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닐까,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 지나친 기우이기를 바란다.

일본 제국주의의 오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을 겪고 폐허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를 일구어 선진국에 진입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온 길이다. 여야의 수권 경쟁은 그런 성장과 발전의 방법론을 둘러싼 것일 뿐, 방향을 바꾸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경쟁자들이 대통령의 실패를 바라는 것과 달리, 국민은 늘 새 대통령의 성공을 바란다.

민생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대선을 통해 특히 도드라진 정치의 과제는 주택·부동산 문제와 젊은이들에게 턱없이 부족한 좋은 일자리 기회다. 이 가운데 주택·부동산 문제가 훨씬 풀기 어렵다. 사람마다 바라는 바가 다르고, 적잖이 상반되기도 한 까닭이다.

한때의 불만을 모아 정치적 힘으로 만들기는 쉽지만, 막상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한 보따리 안에 있던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다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이 역사에 책임지는 정치를 하려 한다면, ‘나도 집·부동산으로 큰돈을 벌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잠시 몇몇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뿐, 집값이 오른 만큼 집 없는 이들과 이 나라 경제에 짐이 된다. 국민의 주거비 부담을 낮춰 안정시키고,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뜨리는 것을 정책의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것에 성공해야, 비로소 이 나라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정권의 성패는 거의 늘 ‘경세제민’에 달렸다.

 

 

정남구 | 논설위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