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道雨 2022. 3. 14. 09:55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지정학적 단층선 위에 놓여 있다. 양 세력의 이익권이 겹치는 지정학적 중간 지대에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무력 충돌이 언제나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구조의 압력 속에서도 행위자의 냉철한 대응과 관련국 간의 제도적 대비로 충돌을 회피할 수 있다.

패권국인 미국 입장에서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와 동아시아의 대만은 ‘패권 도전국’인 러시아·중국의 세력 팽창을 막기 위한 교두보이자 주요 전략 수단이다. 반면에 도전국의 입장에서는 현상을 수정하기 위한 돌파구이다.

중간국이 이러한 강대국들의 논리에 휩쓸리게 되면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중간국이 완충지대로서 ‘피스메이커’ 역할을 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국내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작동하는 정체성의 정치를 경계하고, 분열과 타자에 대한 혐오의 동학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국내 정치적으로 친서구 세력과 친러 세력이 경쟁해왔고, 정권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잦은 대외전략의 변동과 불안정성을 노출했다. 정체성의 정치가 고착화되면 상대는 자기 입맛에 맞는 상대와만 협상을 시도한다.

대만의 경우 국민당 정권과 긴밀한 교류 협력을 촉진했던 중국이, 민진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중국이 대만 사회를 갈라 치려는 것에 근본적 문제가 있지만, 민진당 세력이 이념으로 안보 문제를 다루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비대칭성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위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위협이 높아지는 흐름에 몸을 내맡길 것인지, 적극적으로 평화 협상을 진행할 것인지는 선택과 전략의 문제이다. 전략이란 가치와 정서에 위배되더라도 공동체의 안전과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이성적 계산하에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둘째, 여론 지형이 한쪽으로 경도되진 않았는지 성찰하고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발생한 후 대만의 공론장에선 압도적으로 미국 언론의 견해와 관점만이 유통되고 있다. 푸틴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지정학적 관점에서 러시아가 직면하고 있는 안보 위협에 대해선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는 어떠한 지리적 장벽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등에 칼이 겨눠진 형세가 된다. 푸틴은 나토가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1990년대의 약속을 어기고 5차례 확장을 거듭해왔다고 비난했다. 우리가 받는 위협만 강조하고 타자가 받는 위협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면, 대화와 협상은 요원해지고 전쟁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또 이번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비도덕적 군사행동의 공모자인 것으로만 인식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여론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미국의 군사 개입에 58%의 미국인이 반대했다. 반면 작년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대만을 방어해야 한다는 미국인이 52%를 기록했다. 한편, 대만 여론조사에서는 대만인의 60%가 중국의 무력 침공이 있을 경우 미군이 군사적 지원을 할 것으로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대만에 방어 무기를 제공하고 대만 유사시 군사적으로 지원할 법적 근거인 대만관계법의 약속을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중국의 침공 시 미군 출병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다. 패권국의 힘이 빠지면 안보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패권전이 이론에선, 도전국의 국력이 패권국 국력 총량의 80~120%에 이를 때 가장 위험하다고 본다. 중국은 현재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경제 총량이 미국의 70%에 육박했다. 미-중 관계가 이미 위험한 시기에 진입했다.

패권 경쟁의 시대에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강대국의 논리에 함몰되지 않고, 정체성의 정치를 거부하며, 국민의 생명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장영희 |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