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이 비었다고 하더니
안철수 위원장을 비롯해 새 정부 인수위 관계자들은 지난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 곳간이 텅 비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덕수 총리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문재인 정부가 나랏빚을 과도하게 늘려서 재정상황이 나쁘고 이제 빈 곳간을 채우기 위해 재정건전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1년 안에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며 나랏빚 증가를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해 50조원 규모의 재정지출을 약속한 바 있다. 실제 정부는 지난 12일 소상공인 370만명에게 최소 600만원씩 지급하는 예산 약 26조원과 초과세수의 지방이전지출 23조원을 포함한 총 59조4천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
나라 곳간이 비었다면서 빚을 내지 않으면 그 돈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그 답은 역시 초과세수였다. 기재부는 2022년 초과세수가 예상보다 53조3천억원 더 걷힐 것이라는 전망 아래, 44조3천억원을 사용해 국채발행 없이 추경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기재부 계획대로라면, 2022년에는 추경에도 불구하고 초과세수 덕분에 국채 9조원을 상환해, 국가채무비율은 본예산 편성 때보다 줄어든 국내총생산(GDP) 대비 49.6%를 기록할 전망이다. 텅 빈 곳간을 물려받았다더니, 실제로는 세수풍년 덕분에 대규모 추경을 편성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 세수가 많이 걷히지 않을 수 있다는 반박, 예상된 초과세수를 사용하는 것은 꼼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2017년과 2021년에 비슷한 방식으로 추경을 편성했다. 2018년에는 경기가 하강하는 가운데 대규모 초과세수가 예측됐는데도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미니추경에 그쳐, 거시경제 관리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잦은 그리고 엄청난 세수추계 오류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해 초과세수는 본예산 대비 61조4천억원, 2차 추경 대비해도 29조8천억원이나 됐다. 그런데 2022년에도 초과세수가 본예산 대비 약 16%나 될 전망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예산은 미리 짜는 것이라지만, 2021년 결산에서 국세수입이 344조1천억원이었는데 2022년 본예산 예상세수를 그보다 적은 343조4천억원으로 편성했다. 또 올해 2월 1회 추경 때도 초과세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예산을 짤 때 세수를 과소 추계하면 재정지출을 억제해 긴축 편향이 나타나고, 중기적인 재정전망도 틀리게 된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앞으로 한국의 국가채무비율 상승 속도가 매우 빠를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2021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을 인용해,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2021년 약 51%에서 2026년 67%로 빠르게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세수추계의 오류를 반영해 국제통화기금은 이미 지난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2021년 정부부채비율 전망치는 50%, 2026년 전망치는 58%로 크게 낮췄다.
돌이켜보면 기재부는 지난 정부 때도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에 대해, 나랏빚의 급속한 증가와 재정상황을 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엄청난 초과세수와 방역 부담을 짊어진 자영업자들의 고통이었다. 이제 정부가 바뀌자마자 초과세수를 사용해 대규모 추경을 하겠다는 기재부의 행태를 두고 비판이 제기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손실보상을 위한 추경은 필요한 일이며, 시민의 삶을 지원하는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팬데믹 경제위기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 재정확장이 필요하다. 또한 기후변화와 산업전환 대응, 그리고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적극적인 공공투자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하면 새 정부의 재정건전성 강조가 성장기반 마련과 복지 확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채무비율 상승을 용인하되, 중장기적으로는 복지 확대에 발맞춰 증세에 나서는 게 바람직한 재정정책 방향일 것이다. 기초연금 인상 등 새 정부의 공약 이행을 위해서도 약 209조원이 들 것이라는데, 과연 나랏빚을 내지 않고 이를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새 정부는 백성들이 힘들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곳간 문을 걸어 잠그는 게 능사인지 자문해봐야 한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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