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1000년 청와대 터, 유원지로 전락…‘창경원 판박이’ 되나

道雨 2022. 7. 15. 11:19

1000년 청와대 터, 유원지로 전락…‘창경원 판박이’ 되나

 

문체부, 공연장 등 문화공간 구상
문화재청 국가사적 지정 ‘급제동’
전문가 “고려부터 역사 담긴 공간”
개방위주 위락공간화 정책 비판

 

* 5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 문화유산인 오운정을 둘러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결국 ‘창경원의 판박이’가 될 것인가?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시절 경관이 망가진 채 유원지로 격하됐던 근대 창경원의 악몽이 지금 문화재계를 떠돈다. 조선왕조의 정궁 경복궁의 정식 후원이었고, 지난 83년간 나라 안 최고 권력자의 거처였던 서울 세종로 청와대 영역의 장래를 놓고 난기류가 일고 있다.

 
 

지난 5월10일 청와대 권역이 개방된 지 두달이 지난 현재 입장객수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대중의 관심은 뜨겁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두 달이 지나도록 장래 공간 활용에 대해 어떤 방침도 공표하지 않아, 전시시설 경내 문화유산과 시설 훼손 등 무분별한 관람 행태가 거듭되고 있고, 임시관리처인 문화재청과 상위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활용 방안에 대해 뚜렷한 견해차를 보이면서 갈등을 빚는 중이다.

 

       *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춘추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가 문체부와 문화재청을 취재한 결과, 문화재청은 지난 5월23일 대통령실에 의해 임시관리 주체로 지정된 뒤, 청와대 영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밝히기 위해 주요 경내 문화유산의 일제 조사와 국가사적 지정 등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문체부가 미술관과 공연장, 도서관 등 시민 위락문화시설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구상을 내세워 사적 지정 추진에 반대하는 등,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더 나아가 청와대 구역의 관리 및 재활용을 부처 산하 국장급 관리단이 총괄하고, 문화재청의 역할은 문화유산 구역 보존관리와 천연기념물·등록문화재 지정 등의 현안만 협의하는 쪽으로 축소하는 안을 준비 중이며, 이를 20일 윤석열 대통령에 업무 보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 쪽의 관계자는 “터의 시설 건립과 활용이 크게 제약받는 국가사적 지정을 문체부는 극력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5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 문화유산인 침류각을 둘러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와 관련해 문체부 고위 관계자들은 박보균 장관이 취임한 지난 5월 중순 이래 지속적으로 문화재청 국실장 간부들과 업무 협의를 내세워 접촉하면서, 청와대 구역의 총괄 관리권 등을 문체부와 긴밀하게 협의하라고 요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박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문화재청 쪽에 문체부가 주도하는 청와대 복합문화공간화 구상을 전달하면서 협조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 쪽은 “계속 협의를 진행 중이어서 확정된 부분이 없다”며 공식 언급을 아꼈다. 하지만, 일부 문화재청 실무자들과 문화재위원 등의 전문가들은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문체부가 독립 외청인 문화재청을 제쳐놓고 사실상 청와대 권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무시하는 위락공간화 구상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이다.

 

* 5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 문화유산인 오운정을 둘러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실제로 문화재청 산하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은 원래 지난 4일 ‘청와대의 지속가능한 보존을 위한 관리 및 연구조사 추진’이란 제목으로, 청와대 문화유산·자연유산의 상시관리 강화, 기초 조사 연구, 문화재 지정 등록 등 본격 추진을 뼈대로 하는 보도자료를 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박보균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 문화복합공간화 구상을 언급하자, 배포를 무기 연기시켰다. 장관의 언급은 청과는 사전 조율이 없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청 대변인실은 자료 보완 등의 이유로 연기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청의 관리 방침과 결이 다른 장관의 언급이 나오자, 조율하기 위해 배포를 미룬 것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문화재위원회의 현장 답사가 개방된 지 한달이 훨씬 지난 6월 중순 이뤄진 것도 문체부의 압박성 기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5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경내 문화유산인 석조여래좌상의 모습. 공동취재사진

 

문화계에서는 실제 청와대 땅의 소유권자인 대통령실이 개방 두 달이 지나도록 터의 유산적 가치와 보존 방침에 대해 함구한 채, 개방만 채근하는 상황이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건축사가인 이강근 서울시립대교수는 “청와대 권역은 고려시대 남경 별궁부터 조선시대 정궁 후원을 거쳐, 21세기 대통령 권부까지 1000년 가깝게 권력의 핵심을 유지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공간이다. 역사성을 찾고 회복시키는 과정이 전제되지 않은 개방 위주의 위락공간화 정책은, 문화재계는 물론 문화계의 저항과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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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창경원처럼 유원지 돼선 안돼…보존·활용 균형 필요"

 

대한건축학회, 16일 '청와대 개방 이후' 심포지엄

 

청와대 본관 너머로 보이는 서울 시내 풍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이었고, 근현대에는 최고 권력자가 사용한 정치 공간인 청와대가, 일제강점기 만들어진 위락시설 창경원처럼 단순한 유희의 장소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건축학계에서 나왔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대한건축학회가 '청와대 개방 이후; 경복궁 후원에서 청와대까지' 심포지엄 개최에 앞서 13일 미리 배포한 발표문에서 "청와대 지역의 성격을 해치는 활용을 경계해야 한다"며, 궁궐의 정체성을 허물어뜨린 창경원을 언급했다.

심포지엄은 1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대한건축학회 건축센터에서 진행된다.

 

 

최 전 소장은 "청와대는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청와대를 먼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해 성급한 활용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가들도 들어가지 못했던 청와대 조사를 면밀히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존과 활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전 소장은 "보존을 등한시한 활용이 돼서도, 활용이 전제되지 않은 보존이 돼서도 안 될 것"이라며, 보존과 균형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청와대에 관람객이 몰리면서 주변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른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종헌 배재대 교수도 창경원 사례를 소개하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개방된 청와대가 휴식과 여흥 공간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김 교수는 "문화유산 이용에서는 원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복궁 후원 영역에 세워진 청와대는 역사의 켜가 쌓인 대통령 집무공간이었던 만큼, 고종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통치자의 결정이 국민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거주했던 유적 '마운트 버넌'을 참고해, 대통령이 생활한 관저는 그대로 두고, 본관과 여민관 등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청와대 본관 내부 둘러보는 관람객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경복궁 후원 영역 넓이를 추산한 논문을 발표했던 김성도 국립문화재연구원 안전방재연구실장은,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인 경복궁과 연계해 청와대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회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은 "적어도 2년간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유산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조선시대 건물 일부는 복원하고, 가치 있는 현대 건축물 등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혜원 이음건축사사무소 이사는 경복궁 후원의 범위와 역사적 맥락에 대해 발표하고, 이강근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출입 기록을 바탕으로 후원 통치 기능을 고찰한다.

이현경 한국외대 연구교수는 해외 사례를 통해 청와대의 지속가능한 활용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청와대가 공공성을 지닌 유산임을 잊어서는 안 되며, 수용 인원 제한과 관람로 설정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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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尹·일제 빗대며 폭탄발언 “靑을 공원으로 만들어 70년 韓 역사 모욕”

 

청와대 개방으로 인해 내부 훼손 문제 지적하며 尹 ‘맹폭격’
더불어민주당도 전날 서면브리핑 통해 ‘靑 졸속 개방’ 비판 논평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청와대를 시민들에게 개방한 것을 두고, "일제가 창경궁을 놀이공원 창경원으로 만들어 500년 조선을 능욕했듯이, 청와대를 대책 없이 공원으로 만들어 70년 대한민국 역사를 모욕하는 윤석열 정권"이라고 폭탄발언을 쏟아냈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진애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 개방 한 달 후유증 심각…넘치는 관람객에 훼손 '시간문제''라는 제하의 기사 링크와 함께 "역사의식, 문화 의식 젬병"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청와대 개방으로 인해 내부가 훼손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윤 대통령을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게시물을 접한 네티즌들은 "청와대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상징인데 에라이", "이렇게 쉽게 개방 할 일은 아닌데 참…", "도저히 좋아요를 누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구경하는 것을 너무 즐기는 거 같습니다. 전에 청와대 한 번 갈 기회가 있어서 다녀왔지만, 그렇게 떼로 몰려서 관광버스 타고 올 정도로 근사하게 보이지 않았어요. 제발 정신 좀 차립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역사의식이 없지요. 친일들은", "네. 무식한 일본 앞잡이 같이 행동을 하는군요", "개방한 목적이 뭘까요? 청와대 개방하면 그게 청와대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입니까", "제 심정과 생각이 딱 이겁니다", "대통령이라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꾸 예능으로 국민들의 이목을 끌려고 하고 있음", "친일매국노 정권을 세운 자들은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겁니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김 전 의원의 발언에 동조하는 듯한 반응을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사·연구가 선행되지 않은 채 청와대가 졸속 개방된 따른 후유증과 관련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신현영 대변인은 전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청와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며 "관람객을 맞을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된 무리한 개방이 부른 결과"라고 비판했다. 신 대변인은 "그런 청와대가 훼손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으니, 망가지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고 밝혔다.

이어 "졸속 추진으로 지적받는 대통령실 이전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를 흔적마저 지우려는 것이냐"면서 "문화재청은 청와대를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해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통령 관저로서 역사적 소임은 마쳤지만, 역사적 가치마저 상실한 것은 아니다"라며 "역사성을 고려해 보존해야 하며, 연구할 가치도 높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한편,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으로, 지난 3월 당선 후부터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청와대이전TF'를 통해 추진됐다.

두 달 후인 5월 10일 정문이 개방됐고, 5월 22일 본관 앞 대정원에서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는 '열린음악회' 녹화가 진행됐다. 5월 23일부로 대통령실이 문화재청에 관리 권한을 위임했다.

본관과 관저, 영빈관, 춘추관 등 주요 건물은 추가 결정이 당일이나 전날 공지될 정도로 급박하게 진행됐다. 5월 23일부터 영빈관과 춘추관 내부 관람이 시작됐고, 5월 26일부터는 본관 내부와 관저도 공개됐다.

청와대는 하루 3만 9000명 관람객을 수용하다 6월 2일부터 1만명 늘려 4만 9000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6월 22일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권준영기자 kjykj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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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단순한 ‘유희 공간’으로 삼아선 안 돼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 ‘사적’ 지정 필요
보존·활용 계획 후 재개방해도 늦지 않아

 

5월10일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면서 청와대가 전격적으로 일반인에 개방되었다. 그 전날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집무하던 곳이니 가히 파격적이다. 혁명에 의해 정부가 바뀐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마당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다. 마치 새 정부가 전투에서 승리한 후 획득한 전리품을 자랑하는 것 같다. 청와대 개방이 ‘소프트랜딩’으로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의 역사성을 상고해 보면, 절대로 가볍게 다룰 곳이 아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도읍지 한양의 기원이었다. 조선의 설계자들은 북악산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온 등선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계획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울이 탄생했다. 종묘와 사직, 시장과 육조거리가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청와대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임금이 사용하던 공간이었으니, 경복궁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이는 마치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이 창덕궁인 것과 매한가지다.

또한 청와대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최고 권력기관이 위치했던 곳이라,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해답이 나온다. 역사적인 장소, 즉 ‘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적으로 지정하면 성급한 개발의 압력으로부터 제도적으로 청와대를 보호할 수 있다.

 

6월22일 청와대 관람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엄중한 금단의 장소였던 청와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를 통해 청와대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읽을 수 있겠다. 이 현상이 일시적일지 지속 가능할 것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다. 우선 사람들의 호기심을 수용해서 무엇을 보여 줄 것인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의 호기심과 이로 인한 문화유산 관광은 문화유산 보존의 엔진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바뀌고 만다. 관광 위주의 무리한 관람은 문화재 훼손과 환경오염은 물론, 주민과 관람객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청와대는 그동안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엄중한 최고의 국가보안시설이었다. 그러니 현황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를 관리하고 이용하려면 현상이 어떠한지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의 조사가 시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보존과 활용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5월10일부터 이루어진 청와대 개방은 기간을 한정해 일시적 개방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모든 조사가 이루어지고 보존과 활용 계획이 마련된 다음에 다시 개방해도 늦지 않다. 급할 것이 없다. 한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흔적이다.

청와대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보존·활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보존을 등한시한 활용이 되어서도, 활용이 전제되지 않은 보존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인 장소와 건축물을 보존하는 목적은 그 장소와 건축물이 그곳을 찾는 사람에게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시키고 곱씹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존만이 능사가 되면 안 된다. 역사적인 장소와 건축물을 바라만 봐야 하기에, 비경제적일 뿐 아니라 방문객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바라만 보는 것보다 만지고 이용할 수 있을 때 만족감이 높다.

우리는 궁궐 활용의 나쁜 선례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구태를 청산한다’며 경복궁의 전각을 공매 처분하고, 그 자리에 각종 박람회를 열어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업적을 선전했다. 또한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조선의 상징이자 신성공간을 창경원으로 격하했다.

이러한 선례를 보면, 청와대가 단순한 유희의 장소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조선이 망한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우리의 감정에는 궁궐이 가지는 상징성과 이로 인한 경외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먼 과거는 인류 공동의 역사이지만, 가까운 과거는 그 역사와 맞닿아 있는 사람의 감정’이라고 한 말이 지금 이 시점에 가슴에 와닿는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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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갈라놓은 창경궁과 종묘, 90년 만에 다시 만나다

 

일제때 단절됐던 조선 궁궐

 

일제(日帝)가 종묘 관통 도로(현 율곡로)를 내며 갈라놓았던 창덕궁·창경궁과 종묘가 다시 만났다. 1932년 도로 개통 이후 90년 만이다. 율곡로를 지하에 넣고 그 위에 흙을 덮으면서 두 궁궐과 종묘를 하나의 숲으로 연결하는 녹지(8124㎡)가 들어섰다. 녹지는 서울 상암동 축구 경기장(7140㎡)보다 크다. 그 위로 옛 종묘 담장도 복원되며, 두 궁궐과 종묘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었던 일제 강점기 이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돈화문 앞에서 창경궁 경내를 지나 원남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담장 산책로가 새로 조성됐다. 길이 320m인 담장 산책로는 덕수궁 돌담길 못지않은 서울의 걷기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터널이 된 율곡로는 6차로로 확장돼 시원하게 뚫렸다. 2010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창경궁~종묘 연결 복원 사업’ 첫 삽을 뜨고 12년 만의 결실이다. 복원된 녹지와 종묘 담장, 담장 산책로는 오는 21일 일반에 개방된다. 장마가 잠시 멈춘 4일 오후, 막바지 시민맞이 준비로 바쁜 종묘 돌담길을 미리 가봤다.

창경궁과 종묘, 90년 만에 다시 만나다

 

 

 

◇총독부 “종묘 관통 도로 놓겠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원래 하나의 궁궐이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다 해서 동궐(東闕)로도 불렸다. 동궐은 북악산 응봉에서 뻗어나온 숲을 따라 종묘와도 연결됐다. 하지만 동궐과 종묘는 일제의 조선 병탄 이후 쪼개졌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11월 서울 도심에 바둑판 형태의 현대식 도로 29개를 놓는 경성시구개수안(案)을 발표했다. 그중 돈화문 앞에서 지금의 서울대병원까지 잇는 6호선은 동궐과 종묘 사이를 횡으로 통과하는 ‘종묘 관통선’이었다. 일제는 “경성을 서구식으로 문명화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옛 왕조의 여러 궁궐을 훼손했다. 종묘 관통선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열성조를 모신 종묘 훼손은 안 된다”는 순종의 반대에 막혀 진척되지 못했다. 1926년 4월 순종이 승하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왕조가 무너진 뒤 15년여가 흘렀고, 종묘 동쪽(현 동숭동)에 제국대학과 병원이 들어서며 교통량도 늘었다. 이런 변화에 맞춰 관통 도로를 개설하라는 목소리가 컸다.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도로를 뚫기 위해 종묘를 이전하거나 공원화하자고까지 했다.

 

◇종묘, 섬이 되다

1931년 5월, 창경궁 쪽으로 조금 수정된 노선으로 도로가 착공되며 결국 종묘 담장이 헐렸다. 조선일보는 그해 8월 2일 자 ‘헐려진 종묘 담터’ 기사에서 총독부의 종묘 담장 훼손 소식을 비감한 어조로 전했다.

‘(종묘의) 뒷담이 여지없이 헐려 넓으나넓은 길이 뚫리게 되어 자동차 구루마가 거침없이 앞으로 뒤로 횡행 관통하게 되었고(중략) 오랜 터의 없어지는 것을 모조리 보는 우리가 어찌 상심루(淚)가 없을 수 있으랴!’

폭 22m 신작로가 이듬해 4월 완공됐다. 현재의 율곡로다. 종묘는 동궐에서 분리돼 섬처럼 떨어져 나갔다. 총독부는 조선 왕실의 반발과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 도로 위에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육교를 놓았다.

 

◇황톳길 산책로 걸으며 꽃과 나무 감상

서울시는 일제가 훼손한 동궐을 이전 모습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2010년 10월 시작했다. 이를 위한 율곡로 터널화 공사가 지난해 9월 완료됐다. 그사이 터널 위에선 궁궐 녹지와 담장 복원, 산책길 조성 공사가 진행됐다. 4일 오후 돈화문 옆 순라길을 걸어 산책로에 올라보니 탁 트인 전망대가 반긴다. 돈화문과 현대 계동 사옥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대 맞은편으로 복원된 담장과 운치 있게 뻗어 있는 돌담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책로 초입 오른쪽엔 이곳이 유서 깊은 조선의 유적임을 알려주는 돌무더기가 눈길을 끈다. 2011년 궁궐 복원을 위한 문화재 시굴 조사 중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옛 담장 기초석이었다.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궁궐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담장은 조선 궁궐 담장에 쓰던 사괴석으로 쌓아 올렸고, 폭 3m인 산책로는 시멘트 대신 황토 원료의 흙콘크리트를 깔았다.

 

산책로 옆으로 동궐과 종묘의 주된 수종인 소나무 250여 그루, 가을에 낙엽을 즐길 수 있는 단풍나무 팥배나무 등 낙엽 활엽수 500여 그루가 줄지어 늘어섰다. 나무들 사이로 설치된 가로등은 성인 허벅지 높이로 일반 가로등보다 작았다. 동행한 문화재청 측은 “고궁의 예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며 산책하는 시민의 시선을 고려한 높이”라고 설명했다. 봄에 피는 철쭉·진달래·옥매화, 여름에 꽃 피는 고광나무·황매화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도 있다. 종묘 담장 산책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여름철 기준) 통행할 수 있고 입장료는 없다.

 

◇육교 허물고 왕이 드나들던 北神門도 복원

산책로를 따라 200m쯤 가면 복원된 북신문(北神門)에 다다른다. 이 문을 통과해 창경궁과 종묘를 넘나들 수 있다. 동궐과 종묘가 도로에 의해 갈라지기 전엔 조선의 왕들이 이 문을 이용했다. 일제가 도로를 만들며 설치했던 육교는 철거됐다. 다만, 북신문을 통과해 창경궁과 종묘를 오가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북신문 매표소가 설치됐지만, 자유 관람인 창경궁과 예약을 통한 시간제 관람인 종묘의 매표 시스템이 아직 통합되지 않았다. 창경궁과 창덕궁은 이미 함양문으로 연결돼 있으니, 북신문만 개방되면 동궐과 종묘의 연계 관람이 가능해진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복원 취지에 맞게 향후 북신문 개방에 필요한 조치를 협의하기로 했다.

 

◇일제의 조선 왕궁 훼손

일제는 덴노(天皇)의 궁궐 보존에 정성을 다했다.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교토의 옛 궁궐인 어소(御所)가 폭격당하는 화를 피하려고 주요 전각을 해체해 보관했을 정도다. 총독부의 조선 궁궐 대우는 달랐다. 경복궁을 식민지 근대화의 선전장으로 동원하며 크게 망가뜨렸다. 온갖 박람회와 전시회를 열었고, 그때마다 궁궐을 훼손했다. 1915년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 때는 전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던 흥례문을 헐었고, 자선당과 비현각을 매각했다. 세자와 세자빈 숙소인 자선당은 일본인에게 팔려 도쿄에서 호텔로 쓰이다가 관동대지진 때 불탔다. 타고 남은 기단과 주춧돌만 해방 후 돌아왔다. 총독부는 1929년 조선박람회를 개최할 때도 도로를 확장한다며 경복궁 궁장(궁궐 담장)을 훼손했다. 이때 궁장과 연결된 동십자각이 궁에서 분리돼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게 됐다. 서십자각은 전차 통행에 방해된다며 아예 허물었다. 고종 시절 500여 동이던 각종 건축물이 해방 당시엔 36동밖에 남지 않았다.

덕수궁의 선원전 일대엔 여러 학교가 들어섰고 돈덕전은 철거됐다가 최근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조선 궁궐을 공원화할 계획도 세웠다. 총독부가 발간한 ‘경성도시계획 공원표’엔 경복원 창덕원 덕수원 공원화 계획이 실려 있다.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격하해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으로 활용했다. 옛 전각을 허문 자리에 일본식 건물도 세웠다. 경희궁엔 일제의 조선 병탄 직후인 1910년 11월 통감부중학교가 들어섰다. 정문인 흥화문의 운명은 더욱 기구했다. 장충단으로 옮겨져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당의 정문으로 쓰였다. 해방 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에야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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