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조세정의에 역행하는 ‘부자감세 시즌2’

道雨 2022. 7. 29. 09:38

정말 화끈한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 시즌2’

 

 

 

 

조세정책은 정치적으로 폭발력이 매우 강하다. 어느 계층이 세금을 덜 내고 더 내는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세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여론이 들끓고 정부는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노무현 정부는 ‘세금 폭탄’, 이명박 정부는 ‘부자 감세’, 박근혜 정부는 ‘서민 증세’, 문재인 정부는 ‘부자 증세’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경우는 정책을 중도 포기했고, 어떤 경우는 정권을 내주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세제개편안은 법인세·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을 인하하거나 공제를 확대하는 포괄적인 감세안을 담고 있다. 특히, 법인세 인하,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 폐지, 가업승계 시 상속세 완화, 상장주식 대주주 양도세 완화 등 주로 대기업과 부동산·주식 부자, 기업 오너들에 대한 혜택이 대거 담겼다. ‘부자감세 시즌2’다.

 

언론들은 소득세 과세표준 조정에 따른 감세 혜택을 집중 조명했는데, 사실 소득세 감세는 18만~54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부자들이 받는 혜택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다.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폐지부터 보자. 대부분의 다주택자는 수백만~수천만원, 일부는 억대까지 세금을 덜 내게 된다. 서울 마포와 강남, 대전 유성에 전용 84㎡ 아파트를 보유한 3주택자가 부담하는 종부세는 약 1억3천만원에서 2100만원으로 1억 이상 감소한다.

 

주식 부자 감세도 이에 못지않다. 지금은 종목당 10억원 이상어치의 상장주식을 보유한 대주주의 자본차익에 20~25% 세율을 부과하는데, 기준을 종목당 100억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10억~100억 사이의 주식 부자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예컨대, 1억이나 5억 차익을 남겼다면 지금은 각각 2천만원, 1억2500만원을 양도세로 내야 하지만, 한푼도 내지 않게 된다.

반면에, 모든 투자자가 내는 증권거래세는 내년부터 코스피는 0.08%에서 0%로, 코스닥은 0.23%에서 0.15%로 내릴 예정이었는데, 이번에 금융투자소득세를 2년 유예하면서 코스피는 0.05%, 코스닥은 0.20%로만 내린다. 개미에겐 오히려 증세다.

 

재벌과 중견기업 오너들의 혜택은 0이 한개 또는 두개가 더 붙는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완화로 재벌 총수 일가 100여명의 증여세 부담은 1천억 이상 줄어든다. 1인당 평균 약 10억이다.

가업승계 시 상속세는 과세 대상이 매출액 4천억에서 1조로 대폭 완화되고, 공제한도는 500억에서 1천억으로 확대된다. 상속재산가액이 600억인 경우를 보자. 요건을 맞췄을 경우 지금은 500억 공제받고 100억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해 상속세로 약 43억원을 물게 된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1천억까지 공제되므로 상속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계속 유지하면 대대손손 납부유예까지 해준다. 정말 화끈하다.

 

정부는 비정상적 과세제도의 합리화와 경제 활성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는 집값 폭등기에 투기세력이 활개치는 걸 막으려는 매우 합리적인 목적에서 나온 과세였다. 최대 6% 세율이 ‘징벌적’이라면, 세율을 조금 조정하면 되지 아예 폐지할 일은 아니다. 또다시 부동산 투기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거래로 차익을 보면 세금을 부과하고, 손실을 보면 부과하지 않는 지극히 합리적인 제도로, 주요국 대부분이 시행 중이다. 그런데 오히려 주식양도세 부과 기준을 20여년 전으로 후퇴시켜 버렸다.

 

부동산·주식 거래에서 발생한 자본차익에 대한 과세는, 지금도 유리알처럼 투명한 근로소득 과세에 견줘 매우 미약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정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자본소득 과세를 강화해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가업승계 시 상속세 완화는 소득 재분배와 기회의 평등을 도모하려는 상속세의 근본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일감 몰아주기 과세 완화는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을 조장한다.

 

우리나라 조세정책은 보수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보수 진영은 ‘감세=경제 활성화’라는 프레임에 거의 중독돼 있다시피 하다. 감세정책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감세의 경제적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우리나라에선 딴판이다.

 

감세 중독증에다 정권 지지층에 대한 보은 성격이 강한 ‘부자감세 시즌2’를 철회하고,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박현ㅣ논설위원